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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Mar 08. 2019

나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말에 대한 말 - 차별의 언어 (1)

제 지난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저는 한국에 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체득했지만, 지금은 한국에 살지 않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일까요?


바로 너는 한국인 같지가 않다, 혹은 정말 한국인 같다 입니다.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정체성은 사전적으로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말이라서 제 방식대로 다시 설명하자면, 저에게 정체성이란 모든 차별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차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떻게 될까요?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동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차별이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그 체감한 것을 표출할 때 발생하는 것이지요.


저는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수도 없이 한국인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가,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며 칭송받거나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정체성을 타인이 차별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언코 한번도 한국인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지 않고 있고요. 아니, 해야 하나요?


인간은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아주 고약하고 나쁜, 하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로 '무리를 짓는다'는 것이지요. 무리를 지으려면 상대방과 나의 비슷한 점을 찾아야 합니다. 최대한 마찰이나 분쟁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서 무리라고 일컫고 내 무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배척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바로 여기서 불행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각자의 비슷한 점을 찾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평생 동일점이 될 수 없고, 나와 당신은 절대로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은 꽤 어려워 보입니다. 왜 그런지는 약속에 대해 쓴 제 글에 설명되어 있듯이, 인간은 스스로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지요. 다른 점을 인정하려면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여러 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본인의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요. 그러면 세상에는 답이 하나만 존재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답은 하나가 될 수도, 백 개가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내 답이 올바르지 않을 때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범주 안에 들어갈 수도,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앞서 말한 범주는 곧 차별의 토대가 됩니다.


울타리를 만들어 놓으면 결국 그 울타리는 결계가 되며,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됩니다. 그 선을 넘어서면 우리 편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울타리는 사라져야 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다들 알고 있겠지요.) 울타리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바로잡혀야 합니다. 울타리는 울타리일 뿐이지요. 그것은 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잣대가 된다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타인의 행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그리고 타인과 나를 과도하게 비교하게 되면 생기는 일이지요.


내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국인이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외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이 아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울타리는 존재하지요. 한국의 역사/사회/문화/지리적 특성을 답습해 본토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고 나쁜 습관과 습성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누군가를 한국인이라고 하거나,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보고 전형적인 미국인이라고 하거나, 일본인이라고 하거나, 아랍에미리트인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차별의 언어입니다. 애초에 그 전형이라는 것은 아주 좁고 조악한 틀임에 분명한데 어째서 사람을 그 안에 끼워넣으려고 하나요?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차별을 알아차리고 미리 골라내서 더 나은 말을 하는 것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저도 알고 제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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