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은 나의 전쟁터다
탈코르셋 탈코르셋 하니까 그게 뭔가 싶고 한철 유행이겠다 싶고 그러시다고요?
저는 탈코르셋 했습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저는 이 상태가 만족스럽지만 편하지 않습니다. 나는 매일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과 싸웁니다. 근데, 그래서요?
나는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호르몬의 영향과 불규칙한 식습관, 그리고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얼굴에 여드름이 나거나 뾰루지가 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사회적으로 깨끗하다고 통용되지 않는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위에 아무것도 덮어씌우지 않습니다. 피부과에 가서 이것들에 무슨 짓을 한다거나, 팩을 한다거나,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컨실러까지 덮어씌우는 그 짓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여러 환경에 노출되고 대부분의 환경은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달라집니다. 피부는 적응을 한다거나,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나름의 표시를 내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얼굴을 내가 싫어하기도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거울 보는 시간을 줄이고, 아무렇지 않아지니까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이 귀찮고 시간 낭비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내 글과 말로 이 감정을 전달하는 시간도 낸 것이지요.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습니다. 가슴은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들의 성기와 같은 원리지요. 무거운 것은 처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력 덕분에 지구에 붙어 살고 있는 겁니다. 내 가슴은 내 몸에서 무거운 덩어리에 속하며, 그렇기 때문에 처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갈비뼈를 조이고 폐를 얽메는 와이어와 고무줄을 거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가슴에 가해지는 성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처지는 것을 일부러 끌어올려 놓아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가슴이 처지는 것은 타인이 내 신체에 가지는 성적 완벽도를 깎아내릴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에도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나요?
내 머리카락은 짧습니다. 사실 나는 한번도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길어야 여성성이 부각된다고 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르다가, 그 답답합을 못 이겨 몇 번이고 짧게 잘랐습니다. 내가 투블럭을 하고, 뒷머리가 까슬까슬한 것은 내 여성성의 그 무엇도 훼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치렁치렁하지 않은 머리카락 덕분에 공부할 때 고개를 숙여도 내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머리카락을 감고 말릴 때 드는 시간이 길지도 않습니다. 스타일링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리를 손질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거나 아침을 먹는 것, 당신은 이 행동이 당신의 하루에 불어넣는 효율성에 대해 겪어 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더불어 샴푸도 적게 들지요. 하하.)
나는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국한된 옷을 입지 않습니다. 드레스나 치마의 편의성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기 쪽으로 통풍이 잘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애초에 스키니진과 치마 둘을 비교해 보았을 때만 그렇다는 겁니다. 나는 이제 스키니진을 입지도, 치마를 입지도 않습니다. 매일 슬랙스를 입고, 헐렁하고 느슨한 청바지를 입습니다. 그리고 남성용 드로즈를 입습니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여성의 팬티를 한번이라도 본 적 있다면 알 것입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작고, 좁으며, 끼일 수밖에 없는지를요. 겉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는 성기라면 통풍이 더 중요합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작고 불편한 속옷을 입고 다녀야 했을까요?
나는 살을 빼고 몸매가 좋아야 한다는 말을 거부합니다. 내 엄마는 어릴 때 내게 그렇게 펑퍼짐한 옷을 입으면 살이 찐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체를 옥죄지 않으면 헤이해진다는 것이지요. 애초에 나는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요? 여성은 어째서 자신의 신체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야 하나요? 인간의 신체는 작아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칼로리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내가 뛰고 싶을 때 뛰고, 내가 침대에 눕고 싶을 때 눕습니다.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강요한 것은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작고 왜소한,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입니다. 나는 튼튼한 신체가 갖고 싶습니다. 내 허벅지가 두껍다고, 이것이 내 여성성을 죽여 버리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선언하고 외치는 동안, 내가 받는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머리가 짧은 여성을 길에서 봤을 때, 다시 한번 뒤로 돌아봤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여성에게 '
멋있다'거나, '저 사람은 얼굴형이 저렇게 생겨서 잘 어울리는 거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라고 합니다. 아무나가 아니면 수많은 코멘트의 주인공이 되어도 아무 문제 없나요?
탈코르셋은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사회 운동의 목적이 없냐고요. 음, 그거 아닙니다. 저는 사회 운동과 개인 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탈코르셋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개인이 세상을 사는 방식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한 코멘트는 거절합니다. 정중히 거절할 생각은 없고요, 내 불편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말이 나오는 입을 닫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도 탈코르셋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십니까? 그럼 찾고, 듣고, 보세요. 입을 닫고, 눈을 여십시오. 모르셨겠지만, 탈코르셋 중인 사람들은 할 말이 많아서 어디서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