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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09. 2023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벗은 이유에 대해서




아빠는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나는 옆에 앉아 안주를 주워 먹으며 취해가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술에 취하면 아빠의 몸에선 혼탁한 술 냄새가 났다. 불콰하게 취한 아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아빠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식탁을 내리쬐는 낮은 조도의 불빛만이 집안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다. 거실과 안방은 어둑했다. 다른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불콰하게 취한 아빠는 나에게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 아빠는 침묵하고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어느 순간만큼은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면 아빠도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아빠가 어느 순간에 즐거울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생각은 가지를 뻗지 못했고 나는 그저 하루하루가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다.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의 종착지는 안도감이었고, 안도감은 조용히 잠들었다가 아무도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미래였다. 나에겐 아빠의 마음을 똑 똑, 두드려볼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웃는 아빠의 행동들. 그러니까, 웃고 즐기고 행복하길 바랐던 시간의 파편을 녹여 쪼르르 담아 마시는 그런 마음. 내가 그것을 생각해보기도 전에 소주 한 병은 빠르게 비워졌다.  

소주 한 병을 비운 아빠는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거실에 몸을 뉘었다. 갑자기 불빛 아래에서 느릿한 몸동작으로 소주병을 치우던 아빠가 내게 물었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갑옷을 벗고 전투를한 이유가 뭔지 아나.

웃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아빠는 웃었다. 비릿한 술 냄새가 날 것 같은 웃음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답을 묻지 않고 잠에 들었다. 아빠도 답을 말하지 않았다. 어렴풋한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이제 아빠가 왜 침묵하는 시간이 많았는지 알고 있다. 왜 아빠가 나에게만 그런 시답잖은 농담을 해왔는지 알고 있다. 아빠가 어느 순간에 즐거운지 알고 있다.  왜 아빠와 나만이 그 식탁에 앉아 있었는지 알고 있다. 왜 아빠가 비릿한 술 냄새를 풍기며 살아왔는지 알고 있다. 왜 내가 안도만을 바라는 불안한 시간을 보냈는지도 뚜렷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왜 아빠가 죽었는지도 알고 있다. 아빠가 죽어간 과정 또한 흐릿하게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갑옷을 벗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빠가 왜 나에게 그런 농담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답을 물어볼 아빠가 없었다. 나는 이제 아빠와 함께 한 시간보다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을 더 많이 살아왔다. 가끔은 이런 사실이 생소하게 다가와서, 기억을 붙잡고 싶어졌다. 내 삶을 채우는 시간 속에 아빠는 그저 아주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져서 옅어져가는 술 냄새를 기억하려고 코를 킁킁 댔다.

나는 영영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을 붙잡고 있다.

영영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은 완전히 틀렸기 때문에, 나를 계속해서 조도가 낮은 불빛이 내리쬐는 식탁으로 데려간다.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라는 듯이. 오롯이 나와 아빠만 마주하고 있는, 그곳으로.

나는 술 냄새를 풍기는 시답잖은 농담에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는다. 인생은 질문도 정답도 없다는 듯, 이 모든 게 다 농담일지도 모른다는 듯 웃는다. 깔깔깔. 크크큭. 키키킥. 하하하.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보며.

당신이 움켜쥐었던 파편 조각을 부여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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