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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16. 2023

언제나 새벽




어릴 때부터 아침잠이 많았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어려운 이유는 잠이 쏟아지는 것도 있었지만 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야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릴 만큼 꿈에 취해 있어서 계속해서 눈을 감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깰 때까지 잠에 절여져 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일부러 늦은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기절하듯 잠들기도 했다. 그러면, 더 깊게 잘 수 있었으니까. 죽은 듯이 잠들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대부분 오전이 지난 오후에 깨어났다. 그런 삶을 길게 살아왔다. 정오에 깨었다가, 낮 두 시에 깨었다가 언젠가는 해가 질 때 깨어난 적도 있었다. 석양이 질 때 깨어나는 기분은 묘했다. 하루를 날려버렸다는 자책을 씹으면서도 또 밤을 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새벽을 사랑했다. 고요했다가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사람 기침 소리가 들리는 창문 너머의 새벽을 아주 잠시 관망하기 위해 길고 긴 밤을 버렸다. 밤을 버리고 나면 낮 또한 버려졌다. 한 시간 남짓한 새벽을 보기 위해 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잠에 취해 있었다. 아침잠이 많으면서도 푸르스름한 새벽을 사랑하는 모순적인 삶.  언제나 아침에 깨어나는 걸로 목표했고, 목표는 언제나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에 빗금을 그었다.



나는 축축하고 서늘한 한여름의 새벽을 좋아했다. 곧 있으면 열기로 가득 찰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서늘함이 온종일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언제나 몇 시간 뒤 내리쬐는 뜨거운 열기에 꺾였다. 나는 그런 당연한 일에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를 보면 이상한 아늑함에 빠져 기분이 살아났다. 그래, 나는 이런 것들로 기분이 꺾였다가 살아났다 할 만큼 하찮은 인간이야. 그러니까 사소한 아늑함만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커다란 욕망을 품어서, 내 삶은 언제나 하찮아졌다.



누군가는 말했다. 내게 새벽은 아주 짧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라고, 네가 새벽 내내 살아간다면 낮과 밤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정말 나는 새벽에 갇힌다면 새벽을 지루해 할까. 생각 끝에는 답이 없다. 답이 없으니까,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제나 새벽인 삶은 오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난 새벽을 그리워 할 것이다. 이 새벽이 끝나지 않길 원하던 순간들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눈을 끔뻑이고틈이 날 때마다 꺼내 보면서, 그때는 있고 이제는 없는 흐릿한 얼굴들을 문질러 보면서. 푸르스름한 새벽, 흐릿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태양 대신에 하늘을 채우는 얼굴들. 나의 새벽을 함께 보내었던, 이제는 각자의 새벽을 부유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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