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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Jun 28. 2023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그가 마운드에 올라와 공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팔을 뒤로 넘기면서 입술을 꽉 깨물고 공을 던졌다.

 프로 데뷔를 했을 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프로야구 1군 무대에 올라왔다. 2군에만 있던 그가 1군에 올랐을 때 다들 의심했다. 그냥저냥 던지는 투수겠지 했다. 하지만 무명의 선수였던 그는 1군 데뷔 직후 좋은 공을 던졌고 바로 다음 시즌부터 선발 자리를 꿰찼다. 그때까지도 그를 에이스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5명의 선발 중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정도에 나와 2~3점 정도로 막아주길 바라는 수준. 그의 기대치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시즌이 들어가자 그는 곧바로 에이스가 됐다. 팀의 1선발이 되었고, 모든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그의 필살기였다. 그가 던지는 구종은 아주 단순했지만 모든 타자를 타석에서 돌아서게끔 하게 만들었는데 그 공은 바로 포크볼이었다. 포크볼은 수평선을 그리며 날아오던 공이 타자 앞에서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변화구다. 그의 포크볼은 타자들의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마구 수준이었고, 타자들은 그가 포크볼을 던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헛스윙을 했다.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하는 팬이었다. 나는 그 시절 그가 전설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가장 잘 던지는 투수와 붙었던 어떤 경기. 그는 경기에서 딱 한 점을 실점했다. 그리고 상대 투수는 경기 마지막까지 무실점으로 끝냈다. 그는 경기 막바지까지 포크볼을 던졌고, 팔을 부여잡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팀은 0대1로 패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팔이 아팠기 때문인지 패배 때문에 분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포크볼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공이었다. 타자들을 속이기 쉬운 공이었지만, 그런 만큼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변화구였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자신의 팔을 갈아내는, 마구. 그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2년간 불타올랐고 사라졌다.


이후 그를 약 7 년간 마운드에서 볼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난 이후에도 통증은 계속되었고,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 몇 년동안은 사람들 모두 그가 돌아오길 기대했다. 오 년이 될 때쯤 그가 결국 이대로 은퇴할 것이라고 모두 말했다. 그에 대한 기사도 적어졌고, 소식도 드문드문 전해질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의 이름을 검색했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포크볼을 던지며 다시 팀의 에이스가 되길 바랐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기대를 나는 언제나 품었고 그게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믿었다. 사실 나도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길고 긴 재활 속에서 그가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를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재활 끝에 돌아온 선수는 드물었고, 돌아온다 해도 1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뒤 재활을 마친 그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마운드로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봤을 때 나는 눈만 끔뻑였다. 이게 진짜인가. 살면서 내가했던 예상은 대부분 빗나갔다. 나는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만큼 예상이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너의 예상은 또 보기 좋게 틀렸다고 비웃듯 팔을 뒤로 넘겼고 힘껏 공을 던졌다.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내가 틀렸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당신이 옳았다 해도 괜찮다고 아니 좋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가 첫 번째 공을 무엇으로 던질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떠난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추락한다. 그리고 웅크려있던 그는 마운드에서 일순 붕, 하고 떠오른다. 공과 그가 공중에서 교차하는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려 눈을 감지 않는다. 공이 추락하기 위해 그를 띄운다. 그가 떠오르기 위해 공이 추락한다. 추락과 비상의 인과가 분간되지 않는 둥그런 세계. 140KM로 날아가는 7년의 추락. 그는 둥근 공에다가 추락과 비상을 새긴다. 그리고 추락해왔던 자신의 도드라진 날개뼈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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