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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 몸 Mar 27. 2019

[전문] 3화. 배우 최희서, 감독 한가람의 몸

http://www.podbbang.com/ch/1769459


"이 순간에도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나에게 결단력과 의지력이라는 자질이 있어서 당신에게 승리의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실은 지금도 계속 그러한 결단력과 의지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몸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몸이 견뎌온 그 모든 것, 내 몸이 되어온 것 이상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그 다짐이라는 녀석은 나를 그리 멀리 데리고 가지 못한다."


최희서 "저는 이 단락이 록산 게이 작가가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쓴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저도 실제로 몸을 훈련했고, 몸이 많이 변했거든요. 정말 운동을 하는 양과 먹는 닭가슴살의 그램수에 따라서 몸이 변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몸은 정말 정직하게 변하고 정말로 제가 노력한 그만큼을 보여주는 데, 삶이 그렇게 저의 몸처럼 제가 원하는 방향과 제가 다짐하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요. 영화 <아워바디>의 내용도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이 몸을 넘어선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언제나 한계에서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저의 경험 혹은 <아워바디>라는 영화에서 자영이라는 캐릭터가 겪은 경험에 되게 맞는 구절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어요." 


한가람 "<아워바디>는 10년 가까이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자영이 고시도 거의 포기하고 삶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조깅을 하는 현주라는 친구를 만나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운동을 하면서 삶의 작은 변화들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고요. 


제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건 28살 정도였는데, 저는 원래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전에는 그냥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28살 때 친언니가 마라톤을 취미로 하면서 같이 달려보자고 엄청 설득을 하고 적극적으로 같이 뛰고 해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유가 제가 백수였거든요. 원래는 비정규직으로 일을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정말 나는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건가? 고민을 할 때, 일을 그만두고 방황하고 있을 때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일단 달리기라는 것 자체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고 사실 백수로 있으면 몸을 혹사시킬 일이 없는데, 달리기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까 숨도 차고 힘들고 뭔가 내가 극복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백수로 살고 있을 때는, 극복이 안 되니까 계속 백수인 거잖아요? 시험도 계속 떨어지고? 뭔가 내가 해내고 있는 게 전혀 없는데 달리기를 하면서 처음에 1킬로를 뛰고 2킬로를 뛰고 거리가 늘어나는 게 그래도 뭔가 내가 유일하게 이루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하루 종일 머리 아프게 앉아있다가도 밤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낮에 했던 고민들이 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고 그런 걸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희서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영이가 정말 기절할 정도로 숨이 차서 헉헉 대다가 울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에도 울컥하더라고요. 


그게 뭘까? 어떤 한 사람이 정말 숨찰 때까지 뭔가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이렇게 내 심장이 뛸 수도 있나?'라고. 제가 달리지도 않았는데 자영이 처음 느꼈을 감정 때문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울컥했어요. 뭔가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살아있음을 느낌'과 동시에 '근데 왜 이렇게 숨이 차고 힘든 거야? 극복하고 싶은데.' 더 이상 달리지 못해서 사실 멈추는 거잖아요 그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 같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열심히 뛰었어, 라는 어떤 오묘한 감정인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이 사실 달리기를 안 하면 그렇게 숨차오를 때까지 뛰어보지 않으면, 아마 겪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가람 "'아워바디'라는 제목은 제가 처음 시놉시스를 썼을 때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데요. 일단 제목에 '바디'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TV에서도 '바디'(라는 단어가) 들어간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여성의 운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쇼라든지. '바디'라는 단어가 뭔가 요즘 사회에서 약간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국어로 '몸'이라고 했을 때보다 영어로 '바디'라고 우리가 부를 때 가진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바디'라는 단어를 제목을 직접 썼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이렇게 사는 게 좋고 이렇게 사는 건 나쁘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살면 더 좋지 않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뚱뚱했던 사람이 날씬해져서 삶이 좋아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자영이가 애초에 뚱뚱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자영이는 사실 평범한 몸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거울을 보고 좋아진 몸을 보는 것도 몸에 쉽게 말해서 셰이프(형태)가 좋아지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영이가 운동을 하면서 몸을 사용하고 에너지를 쏟다 보니까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몸이 예뻐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보다는 건강한 몸?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그런 건강함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어낸 그런 몸이 갖고 있는 강한 아우라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자영이가 현주에게 뭔가 홀리듯 따라갔던 것도 현주가 예뻐서가 아니라 현주가 가진 그런 생명력 같은 것이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따라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 운동을 통해서 뭔가를 삶에서 풀리지 않는 걸 얻으려고 해도 사실은 인생은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그걸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희서 "저는 저의 개인적인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저는 언제나 도마 위에 올라있는 느낌이랄까요. 기사 사진 한두 개 나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저의 몸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듣죠. 그야말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언제나 누군가가 보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이 많은데, 사실은 저는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니까 당연하지, 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근데 배우인데, 나는 연기하는 사람인데, 내가 왜 내 몸을 완벽하게 마치 그림에 그린 몸처럼 왜 가꿔야 하지? 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왜 내가 언제나 비교당해야 하지? 왜 나의 개성만으로는 내가 배우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걸까? 제 20대 때는 키도 작은 편이고 20대 때는 지금보다도 심지어 더 통통했거든요. 굉장히 많은 여자 배우 분들께서 마르셨기 때문에 비교도 되게 많이 당했죠. 


지금은 그래도 저를 알아봐 주시고 저의 작품을 봐주시는 관객 분들이 많아졌지만 사실 그때 당시에는 오디션 보기도 힘들었던 무명 배우로서, '무명 배우인데 심지어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고 키가 크지도 않아',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도 있었고. 


'그러니까 너의 그러면 너의 한 방은 뭐냐?' 그러면 저는 '그냥 연기?' (웃음) 심사위원 분들이 되게 어이없이 보는 그런 경우가 되게 많았죠. 그래서 저는 20대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몸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었고 언제나 비교를 당했고 언제나 더 예뻐져야 하고 날씬해져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지금은 사실 제가 성장해서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생긴 대로 그야말로 타고난 제 몸 그대로 저의 체질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긴 해요. 여기에서 더 가꾸면야 보기 좋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보이는 잣대로 인해서 제가 더 얻는 병이 큰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한가람 "그런 고민과 생각을 당연히 했겠다는 공감은 많이 됐어요. 왜냐면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에게 많이 보이고 그리고 기사가 하나 공개됐을 때의 별생각 없이 의견을 쉽게 개진할 수 있다 보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당연히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거든요. 


사실 영화는 이미지로 보이는 거다 보니까 자영이가 거울을 보는 신에서 그 신이 어떻게 표현이 될 것인지, 달리기를 할 때나 거울을 볼 때, 아니면 엔딩신에서 신체의 어떤 부분이 나올 것이고 그게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고를 촬영적인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왜냐하면 이 영화가 외설적이거나 선정적으로 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몸이 나타나는 이미지가 우리가 다른 영화에서 여성의 몸을 보여줬을 때처럼 그냥 아름다운 느낌이라든지 뭔가 몸을 너무 탐미하는 느낌이라든지 그냥 쉽게 말해서 야해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도 되게 많았었어요. 


촬영 감독하고는 이것에 대해 되게 자세히 이야기를 했고 어떤 부위를 찍을 것이고 조명은 어떻게 할 것이고를 자세히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제가 배우 분에게도 먼저 찍기 전에 이야기를 했던 게 자영의 몸이 예쁜 게 아니라 강해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등근육 같은, 여성들이 쉽게 키우기 어려운 근육들이 자라 있는 게 세심하게 담겼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어요. 


실제로 피티를 열심히 받으셨고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그 자영이가 팔에 있는 근육을 본다던지 그런 장면이 좋거든요. 복근 같은 것도 일부러 근육에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찍은 것이고 그래서 이런 걸 알아보시는 분들은 자영이의 몸이 그 장면이 야하다거나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해를 해주시는데, 사실 저희가 되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저희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읽히는 것 같기도 해요."


최희서 "그런데 덧붙이자면 그 장면을 운동을 한 후에 자영의 몸의 모습을 자영이가 본인 자신이 거울을 보고 보는 건데 그 장면은 운동한 사람들은 공감되게 많이 할 것 같아요. 운동을 해서 운동을 진짜 열심히 해가지고 거울 샷을 찍어서 SNS에 올리거나 그런 분들 있잖아요. 


저는 처음에 '뭐 하는 거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복근이나 등근육 뒤에 핸드폰 해서 찍잖아요. 근데 이게 막상 내 몸에 이런 게 있으니까 저도 진짜 그렇게 정말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하고 막 '우와 나 기립근 생겼어' 이거 막 자랑하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야한 것보다는 더 관능적인 게 아니라 육체적인 이야기인데, 이걸 되게 관능적이라고 보는 건 오히려 여태까지 미디어가 만들어낸 색안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가람 "저는 <아워바디> 자체가 좀 자전적인 이야기다 보니까... 제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되게 우울했거든요. 진짜 너무 삶의 의욕이 없어서 근데 내가 죽고 싶지는 않고 왜냐하면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슬퍼할 테니까. 


현대인들에게 몸이라는 게 유일하게 내 뜻대로 조종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아라고 하더라고요. 멀쩡하게 해서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력한다는 걸 봤는데, 제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에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원하는 걸 찾으면 그게 제일인 것 같아요. 꼭 그렇게 사람들 기준을 맞추고 살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야 좀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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