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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May 17. 2022

시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하다

우리는 100일 만에 결혼했어요

남편과 만난 지 100 일만에 결혼했다.


  "너, 기억나니?"

  "뭐?"

  "너, 결혼하고 한 달 만인가? 우리 회사 근처에서 점심 먹으면서 했던 말?"

  "아, 그거... "


  선주가 또 수경의 치기 어린 과거를 들춰댄다. 선주의 짓궂은 추억 소환에 수경은 새삼 스물다섯, 어리고 서툴렀던 시절의 그녀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네가 시원하게 냉면 국물을 들이켜고 나서 그랬잖아. 양가에서 결혼 반대만 안 했더라면, 너희 부부를 가만 뒀으면, 한 달쯤 더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졌을 거라고. 그때, 네 눈에 후회가 가득했었던 거 모르지? 너, 너무 결혼을 서둘렀어."


  정말 그랬다. 수경은 직장 선배의 갑작스러운 소개로 만난 남편과 결혼하기까지 꼭 100일이 걸렸다. 결혼 과정도 쉽지 않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시끌벅적 떠들썩하게 결혼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순둥이였던 수경은 남편과 똘똘 뭉쳐서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했다.  어쩌면 어른들이 말하는 인연이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고 수경은 자위한다. 그러니까 양가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직장까지 잃어가며 결혼을 강행한 거다. 더 황당했던 건, 누구라도 피해 간다는 시집살이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오 남매의 외아들인 수경의 남편은 지독한 효자였다. 게다가 시부모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효자인 남편은 부모를 모시겠다고 의무처럼 말했고, 순진한 수경은 남편을 선택했으니 그의 부모도 당연하게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경의 친정엄마는 뒷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어떻게 네가 시집살이를 하니? 너처럼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한다는 핑계로 손 하나 까딱 않고, 요리는 커녕 라면 하나 끓일 줄 모르던 수경이 시집살이를 자처하니, 친정엄마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라하셨다. 솔직히 그때 수경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일이 힘든지 몰랐다. 몰라서 용감하게 덤볐던 것 같다. 주변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으니 그 어려움을 알리 없었다. 더 억울한 건, 시집와서도 그녀 주변에 시부모를 모시는 여자가 없다는 거다. 시어머니는 물론 결혼한 시누이들도 모두 시부모를 모시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저런 반대 이유가 많았지만,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가장 결혼을 반대하셨던 친정엄마에게 그녀는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엄마, 다들 시부모님을 안 모신다고 하면... 엄마 외아들도 결혼 못 하지. 안 그래?"


  사실 그랬다. 그녀의 남동생도 남편처럼 오 남매 중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똑같은 처지의 남동생을 팔아가며, 그녀처럼 시부모를 모시겠다는 며느리가 있어야 외아들도 결혼할 수 있다는, 이상미묘한 역설을 펴가며 친정엄마의 반대에 맞섰다.


  시어머니도 수경을 며느리로 못마땅해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아들을 뒀다고 믿는 시어머니가 옛날부터 그려온 며느리상은 그녀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아들이 기왕이면 잘 사는 집 딸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키가 크고 노래도 잘하고, 이화여대를 나온 며느리를 원했던 시어머니는 수경이 아무리 이화여대보다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키가 작고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집에는 시부모님과 막내 시누이 그리고 수경 부부가 함께 살았다. 손위 시누이들은 다행히 출가한 상태였다. 사이가 좋지 않은 시부모님은 각방을 썼다. 안방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두 번째 방은 수경 부부가, 세 번째 방은 사업으로 재산을 날린 시아버지가 썼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일주일간 수경은 매일 아침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시부모를 공경하는 전통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며느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의식이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무서웠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다. 주말에도 이른 새벽부터 어서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라고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셨다. 당시에 건설사 대기업에 근무했던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쉴까 말까 주말에도 새벽같이 출근했었고, 그런 남편을 출근시키고 까무룩 다시 잠들었던 수경은 시어머니의 호통에 깜짝 놀라 방을 뛰어나와야 했었다.

  시어머니는 음식을 잘했다. 절대 손맛을 자랑하며 빼어난 요리 솜씨를 뽐내셨다. 하지만 수경은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전수받지 못했다. 차근차근 음식을 가르쳐 주시기보다 급한 성격대로 후다닥 음식을 해버리셨다. 센스가 있었다면 어깨너머로라도 배웠겠지만, 요리에 관심이 없던 그녀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허드레 일이나 하면서 살았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녀의 요리실력도 점점 늘기는 했다. 하여튼 숙련된 요리사 시어머니와 부엌일이라곤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했던 수경이 한 부엌에서 사는 일은 매일매일이 고군분투였다.

  집안일을 가르치는 시어머니의 훈련은 혹독했다. 명절을 앞두고는 그릇장의 그릇을 다 꺼내서 하나하나 닦으라고 시켰다. 집안 대청소도 오롯이 그녀 혼자 해야 했다. 직장 다니는 시누이 팬티까지 빨아야 했다. 속옷이라는 이유로 세탁기가 아닌 손빨래로. 콩쥐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팥쥐 엄마처럼 시어머니는 늘 그녀를 닦달했다. 매일매일 걸레질도 하루에 세 번씩 하라고 호령했다. 힘없는 을의 신세였던 수경은 갑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었지만,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다그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손이 빠른 시어머니는 완전 초보 며느리의 느림을 이해하기보다 닦달하고 야단만 쳤다. 


"아니, 너는 국민학교도 못 나왔니? 빨래 하나도 못 삶아?"


  툭하면 이런 불호령이 떨어졌다. 생선을 그릴에 구우라고 시키고 나서는 3분 간격으로 생선이 타지 않게 뒤적거리라며 그녀를 닦달했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시누이가 "그만 좀 하라"고 빽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서러웠다. 너무 서러워서 방에 들어가 펑펑 울고 나온 적도 있었다. 지금 그녀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머니의 부당한 요구를 지적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달라고 요구하겠지만, 그때 수경은 바보처럼 항의 한 번 못 그랬다. 시어머니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던 시절이었으니까.


  이렇게 그녀 입장에서 보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어머니도 사실은 애로사항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며느리를 상전으로 모시고 살 수 없던 세대의 시어머니는 어떻게든 며느리에게 일을 가르쳐서 편한 세상을 살고 싶었을 거니까. 그래도 그렇지. 딸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헌신적인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수경에게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호랑이라니.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는가? 더 화가 나는 건, 그때 수경은 이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는 거다. 시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이 싫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시어머니들은 원래 그렇다고 자포자기하며 살았던 것 같다. 


  수경이 시집살이에 지쳐갈 때, 그녀의 남편은 천하태평이었다. 그는 참 복도 많은 남자였다. 수경과 시어머니는 약속이나 한 듯 남편에게 고부간의 갈등과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하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딱히 할 말도 없을 듯하다. 하루 종일 갑질을 하며, 며느리를 볶아대면서 스트레스를 확확 날려버렸을 테니까.

  수경은 남편에게 시어머니와의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일말의 자존심이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야단맞고, 닦달을 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남편을 향한 배려였던 것도 같다. 어쨌든 그렇게 수경은, 25살 철부지였던 그녀는 용감하고 무모하게 시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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