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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Jan 22. 2021

모기를 죽여도 될까요...?

가엾은 모기도 지구를 구성하는 생명체 중 하나잖아요...

모기를 죽여도 될까요? 이 물음을 떠올리기도 전에, 모기가 나타나면 우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스냅 한 방에 그를 골로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납작하니 뭉그러진 모기는 적절한 예우 없이 휴지에 접혀 쓰레기통으로 보내진다. 모기가 아닌 생명체라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잔인한 대우인가! 누군가는 이 발칙한 상상이 유명 작가의 드라마 속 "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란 대사처럼 터무니없이 들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은 소중하다는 생명중심사상이 옳다고 여긴다면, 모기를 죽여도 괜찮다는 명제에 어떤 예외들을 덧붙일 수 있을까.


우리가 직관적으로 말하듯, "모기는 해롭잖아요"는 답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직관은 이성에 기초한 논리가 아니라 순간적인 느낌이나 감정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언제든지 반박의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을 설득하는 데 논리라는 중요한 무기를 잃게 만든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생명은 중요한 것이라 주장했을 때, 모기는요? 파리는요?라는 질문을 받는 상상을 해보자. 내 머리맡에 자리 잡은 모기가 죽어 마땅하다는 걸 합리적으로 나타내지 못하면 짓궂은 누군가에게 "왜요"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 이에 적절한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런 난관 속에서 생명중심사상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파할 수 있을까. 어쩌다 생명체에도 소중함에 있어선 우생학적 위계질서가 있다고 나도 모르게 믿게 되지 않을까.


위는 생명존중에 대해 가졌던 의문들 중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꽤나 오래도록 교육을 받으면서 생명은 소중한 거야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지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동물복지나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처럼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마음으로 이해했을 뿐 머리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 폴 W. 테일러의 책 <자연에 대한 존중>을 훑으며, 미뤄만 뒀던 그 이유를 미진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부터 생명은 왜 소중한지 그런데도 모기는 왜 죽일 수 있는지란 물음에서 비롯해, 테일러 형님의 생명중심사상을 비추는 난항을 펼쳐보겠다. 먼저, 생명중심사상을 알아야겠다. 생명중심사상에서는 생태계 속 모든 구성원이 지구 생명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이다. 이들은 자연이라는 공동시스템에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때,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선이 있다. 목적론적 삶의 일환으로, 식물이나 동물은 삶을 추구한다. 나비는 애벌레-번데기-나비라는 일련의 과정에 걸쳐 생존이란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에 고유의 선이 있다. 하지만, 돌과 같은 무생물은 그 안녕을 증진시킬 수 없기에 고유의 선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기계 역시 인간을 위해 탄생한 것이기에 그것만의 고유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a.k.a. 파생적 목적). 마지막으로 생명중심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여타 종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여느 종보다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우월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인간이 이성을 갖췄기에 우월하다고들 한다. 이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현재 지구 상에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동물이든지 간에 자신만의 생존능력이 있으며, 특정 환경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의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 하나인 인간의 기준으로 다른 생명체보다 인간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는 적절한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아기, 뇌 손상을 겪은 사람 등)도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사람이 지구 상 어떤 종보다 우월하다는 명제는 성립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리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와 닿진 않는다. 이제 한 발짝 더 내디뎌 보자. 오롯이 나비 한 마리 홀로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이 나비의 입장에선 흐드러진 꽃밭에서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게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아스팔트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보다 낫다. 즉, 각 생명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만의 고유의 선을 추구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 이를 "본래적 가치가 있다"라고 한다. 이제 인간 사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인간윤리 혹은 인간존중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써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존중이란 가치 아래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자연이라는 공동시스템 하에 모든 생명체는 동등하며, 고유의 선을 지향하고, 본래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폴 형을 위시한 생명중심사상은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하듯이, 여타 생명체들도 그렇게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려... 존중... 참 좋은 단어들이다. 이때 재미있는 친구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사자는 고기를 먹어야 사는데, 애네는 배려심이 참 없다고. 이를 다듬어서 말하면, 각 생명체의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명중심사상과 '생명을 죽이면 안 돼요'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생명체가 고유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바나의 사자가 용케 무리에서 떨궈낸 얼룩말 한 마리를 잡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연유로 생존을 위한 인간의 사냥 역시 합리화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중심사상이 경계하는 바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꾸미기 위해 아프리카 코끼리를 죽여 빛바랜 상아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는 '불필요하게' 한 생명체가 고유의 선을 추구하지 못하게 되고, 본래적 가치를 존중받지 못했으므로 옳지 않다. 또한, 덧붙이자면 배려는 인간만이 주체로써 행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그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리로 한여름 밤의 모기사냥도 언급할 수 있겠다. 인간은 우월하지 않다. 평등하다. 그러나 이것이 고유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으로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은 지켜야 한다. 모기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가 선을 추구하는 과정은 인간의 생존 지향과 충돌하곤 한다. 따라서, 오늘 밤 휴지 조각에 생을 마감한 모기 한 마리는 무분별한 살상이라기보다는 자연계의 일원이 고유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혹시나 모기를 있는 힘껏 내리친 뒤에 생명을 죽였다고 죄책감을 느꼈거나, 생명중심사상을 추구하는 인생에 있어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마음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인간에게 위협의 존재가 되지 않는, 어느 정글에서 호위호식하는 모기를 뜬금없이 죽여야 한다고 보는 관점은 생명중심사상에선 문제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모기를 죽여 말어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너무나 먼 길을 돌았다. 생명중심사상이란 이름만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 상들을 따라 책을 소화하면 순탄한 길이겠지 싶었는데 막상 그러진 않았다. 폴 형의 책은 도덕행위자/도덕주체라든지, 규범적인 윤리체계와 같이 조금 더 어려운 용어들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또한, 모기사냥과 같이 비교적 평이한 문제보다 복잡한 현안도 다룬다. 우리가 빌딩 하나 세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당하는 동식물이 있을 텐데,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폴 형은 무해의 원칙, 불간섭의 원칙, 보상의 원칙 등을 들어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답을 내리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아무튼 간에 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쉽게 쓰고자 어려운 개념과 논리를 생략했지만, 괜한 질문거리만 더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걱정이 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자면, 이 책은 ~해야 한다는 의무를 주장하지 않는다. 생명중심사상에서 핵심이기도 한 인간이 우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가 완전히 증명될 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또한, 세상살이에 있어 기냐 아니냐로 판가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부지기수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 생명중심사상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다만 저자는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사실 정보를 잘 알고 있으며 높은 수준의 현실 인식 능력이 있는 만큼, 그 믿음을 받아들일 것(p.110)"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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