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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Jan 26. 2021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뭐냐구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일단 진정하세요

인생의 의미가 뭔가요?


단순한 조합이지만 난해함이 떡하니 서있는 이 질문이 들이닥친다면, 퍽 잔인한 대답이 될 수도 있는 게 이 책이 아닐까 싶다. 바로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이다. 책은 인문학 서적을 몇 번 뒤적였다면 마주쳤을 법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를 성찰할 것만 같다. 허나 그는 위 질문을 더 미궁에 빠뜨리는 감초 역할만 할 뿐이다. 저자가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택시기사가 러셀에게 인생이 뭐냐는 뜬금포 질문을 던지자, 그가 우물쭈물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적 석학도 일순 답하지 못한 물음. 누구든 선택지에 한 마디씩은 얹어 놓을 수 있는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기에 부담감이 엄청났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인생의 의미하면 자주 언급되는 선택지들을 논리로써 하나하나 지워버린다.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영역임을 증명해낸다. 어쩌다 탄 택시에서 러셀이 느꼈을 부담감을 한층 덜어준 것이다. 한 번쯤 살아가는 이유라 생각했던 신실한 종교적 믿음, 입신양명, 이타주의 등등....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인생의 의미로 그것들을 주장할 이유는 부족하다.


행복을 예로 들어보자. 행복이라는 단어의 막연함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은 행복이 과연 인생의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어쩔 땐 너무 쉽고, 저쩔 땐 너무 어렵다. 목표로 삼을라 치면,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행복인 것인가, 타인을 조금 배려해서 얻는 만족감은 행복인 것인가. 혼란스럽다. 또한, 돌이켜 보면 행복하다고 느낀 건 순간일 뿐, 손에서 금세 흩어지고야 만다. 합격 목걸이가 쥐어질 때의 방방거림도 잠시, 그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쥐어잡을 수 있을 듯 쥐어지지 않는 행복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지 버나드 쇼의 유쾌한 말은 또 어떠한가. "평생 동안의 행복이라니! 아무도 그런 건 견딜 수 없다. 그것은 생지옥일 테니." 혹여나 영속적인 행복이 있다고 한들, 감정에 금방 익숙해지는 철부지 인간들이 계속해서 그걸 누릴 수 있을까.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행복은 인생의 의미로 삼기엔 불분명하다는 판결을 받는다.


이렇게 저자는 쟁쟁한 후보자들에게 차례차례 싸다구를 날린다. 순순이 무너지는 선택지들을 지켜보자면, 인생은 온통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저자는 무참히 친구들을 쓰러뜨린 후, 우리들에게 공허함을 느끼지 말라고 주문한다. 완벽한 증명을 통해 후보군에서 제외시킨 것이 아니라 정답이 되기에 애매한 지점을 짚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논지를 통해 파악한 인생의 취약성과 예측 불가능성, 우연성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한 건 어떠한 것도 인생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다이지 인생 그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결국 인생의 의미는 각자가 부지런히 고민하기 나름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좋지 않음'으로 통용되는 무의미함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 무언가에 기대었을 때 느꼈던 포근함에서 멀어졌기 때문일까. 자유는 형벌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인생의 의미는 ㅇㅇ이다"는 나름의 기준에서 해방된, 아슬아슬한 자유가 가져온 부작용인 듯싶다. 그러나 저자가 지워버린 그 무언가의 자리는 백지상태일 뿐이다. 공허와 허무로 채우려는 무기력은 인생의 의미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또 하나의 색깔. 이왕 종이를 받았다면 멋들어지게 꾸미는 게 낫지 않을까.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것을 넋 놓고 보내자니, 종이가 너무 심심해 보인다. 저자의 논리를 교훈 삼아, 그 의미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절제된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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