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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Feb 21. 2020

그리스인 조르바가 꿈꾸는 정치인

- 4‧15 총선거를 앞두고 -

4월 15일 총선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선거활동은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매 총선마다 열기가 뜨거웠지만 이번 총선은 특히 국민의 기대가 뜨거운데요. 새 선거법이 적용되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고, 만 18세 이상이 투표가 가능해지는 첫 선거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선거법의 변화가 한국 국민이 염증을 내던 국회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것이라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촛불 혁명으로 불법적인 정권을 몰아낸 이후 세워진 합법 정권의 숙제 달성율을 점검하는 선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박근혜 정권에서의 전횡을 바로잡을 정권으로 문재인 정권에 시민이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이번 정권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숙제와 기대를 업은 정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켰을지 이번 총선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많은 국민이 기대에 차있지만, 모든 국민이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옛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염세적 태도를 가진 국민도 적지 않죠. 어차피 정치인이 다 거기서 거기고, 다 세금 도둑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입니다. 이 국민들이 정치인에 대해 가지는 기대는 단지 ‘저 놈들이 또 자기네 밥그릇 다툼이나 하겠구나.’하는 정도 입니다. 결국 민생은 또 무시될 것이고, 꼭 필요한 법안은 통과되지 않으며, 이상한 법안을 통과시켜 자기네 정쟁에 써먹겠구나. 변화에 대한 기대는 접은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정치권의 변화는 필수적으로 보입니다. 나날이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 IMF 이후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어버린 노동 불안정. 이런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나날이 발전하고 새로 등장하는 위협적인 범죄. 그런 범죄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위협받게 되는 사회적 단절. 이 단절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여러 갈등. 빈곤과 피로에 시달려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에게 표출하게 되는 차별과 혐오. 그리고 이런 사회 문제를 설명하고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의 등장과 이에 반하는 이들의 신 이념 갈등까지. 대충 생각나는 것만 나열했고, 분명히 여기에 빠진 것들이 존재하지만,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고, 한숨만 나옵니다.     



이런 변화의 기로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 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실제로 만났던 요르기오스 조르바스라는 인물을 모델로 쓴 소설인데요. 이 소설에서 나오는 조르바라는 캐릭터는 그 특유의 자유로움과 인간적인 면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죠. 이 인물은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고뇌하는 모습도 매력적입니다. 조르바는 젊었을 시절 마케도니아 투쟁에 참여하여 조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민간인과 군인들의 생명이 덧없이 스러져 가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부대에서 벗어나게 되죠. 또 자기가 겪어왔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 노동과 우정 그리고 예술에 대한 고뇌를 풀어놓습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모습이 조르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겠죠.     


이런 조르바와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은 조르바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업을 하러 크레타에 들른 것이었던 주인공은 이제 사업은 그냥 조르바와 이야기를 나눌 핑계에 불과하게 되었죠. 조르바는 주인공을 가르치려하지 않지만, 가르치게 됩니다.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 삶에 몸을 던져 넣는 법을 가르치죠. 조르바가 유일하게 가르치려 열정이 있던 것은 춤이었지만 춤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하기 때문일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왜 총선을 앞둔 지금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구요?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삶을 살펴보고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아실겁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크레타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젊을 적 아테네 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유학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요. 이 사람은 여행과 글을 남기며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배움을 바탕으로 1919년 그리스 복지부 수석국장에 임명되었고 그리스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큰 임무를 해냈습니다. 또 2차 대전 이후에는 나치 만행 진상 규명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중간중간 저술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구요. 삶을 치열하게 살아갔던 한 명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카잔자키스의 정치적인 행보나 철학적인 행보를 알게 되면 조르바가 다시 읽히기 시작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빼어난 인간이 바로 조르바였고, 마르크스가 말했던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바로 조르바였습니다. 단순히 낙천적인 인간이 아니라, 변화와 삶에 아주 능동적이고 정열적인 인간인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커다란 무기력에 빠져있습니다. 착취와 억압에 피로한 사람들이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는 관성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관성을 거스르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할 만큼 어렵습니다. 한번 레일에서 탈락하면 다시 오를 기회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거든요. 이런 사회에서는 총대를 매어줄 인물이 필요합니다. 단 한 명의 열정적인 사람이요. 피로와 무기력을 분노와 활력으로 바꿔줄 인물이 필요합니다. 격동의 시절에 그랬듯 그런 인물에 반응하여 민중이 일어나야겠죠.     


4.15 총선에서 조르바가 바라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며.

당신의 한 표를 소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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