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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r 06. 2020

한국, 베트남, 그리고 〈미스 사이공〉

한국인의 동남아관을 투영하며

Xin chào! 안녕하십니까. 이 채널의 글쓴이 중 하나인 저 'K'는 지금 베트남에 와 있습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며 한국인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최근 베트남 내 대(對)한국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지요. 베트남 현지에 있는 저는 그 영향을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말하면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나, 손님 없이 텅 빈 하노이 미딩의 한인타운을 보면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을 듯합니다.


시작은 다낭에서 벌어진 '한국인 관광객 격리 사건'이었죠. 지난 24일 대구발 비행기로 다낭에 도착한 20명의 한국인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강제로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사전 예고 없이 이루어진 조치여서 한국인과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충격을 받은 건 베트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격리되었던 한국인의 인터뷰가 전파를 타면서였죠. 격리되었던 시설의 열악함, 식사의 부족, 갑작스러운 격리조치에 대한 당황스러움 등 고충을 토로한 인터뷰가 번역을 거치면서 훨씬 부정적인 뉘앙스로 베트남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마치 왕 대접을 바라는 안하무인한 사람들처럼 알려진 것이죠. 한·베 관계는 금방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한국 여론은 "한국을 완벽히 무시하는 처사다", "한국은 베트남에게 무시 당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역시 공산국가라 그렇다" 등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베트남 여론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격리 안 하면 다 죽으라는 거냐", "격리를 5성급 호텔에 해 줘야 만족하는 거냐"라는 반응을 보였죠. 양국 모두 실질적인 손해를 파악하고 수습하기보다는 자국이 '무시 당했다'며 분노를 쏟아내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갈등과 분노는 예견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 암암리에 퍼져 있는 동남아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은 동남아 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똥남아' 같은 멸칭으로 대표되는 국내의 인식 말입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2000년대 후반 삼성 등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며 다수의 한국인이 유입된 후, 한국인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베트남 사람들은 곧 한국인의 안 좋은 점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요컨대 지금의 한·베 갈등은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비로소 가시화된 문제라는 겁니다.


베트남 현지의 유흥업소. 한국어 간판을 달아 두었다.


물론 이런 시선이 한국 고유의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편견과 혐오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미스 사이공〉은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뮤지컬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과 사랑에 빠졌던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1989년 영국 런던 드루어리레인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웨스트우드를 재패한 후 1991년 미국에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뮤지컬의 시간적 배경은 1975년 4월 입니다. 한창 베트남 전쟁이 진행되던 시점이었죠. 공간적으로는 현재의 호찌민, 당시의 사이공이 배경입니다. 이때 참전 미군 '크리스'는 사이공의 한 술집에 가게 됩니다. 주인공의 친구가 크리스에게 술집에서 접대부를 불러주게 되는데요. 그 접대부가 바로 '킴'입니다. 이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킴을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던 '투이'라는 베트남 남성이 이에 앙심을 품게 되지요.


1978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미군은 베트남에서 급하게 철수하게 됩니다. 킴과 크리스는 같이 미국에 돌아가려 하지만, 무려 헬리콥터(!)를 놓쳐서 킴은 베트남에 혼자 남겨지게 되 었습니다. 크리스와 킴의 아들인 '탐'을 홀로 기르게 된 킴은 설상가상으로 반역자로 몰리게 됩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투이를 살해하려는 킴


이때, 투이가 등장하는데요. 베트남 정부에서 관료가 된 투이는 자신에게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호소합니다. 킴은 크리스의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음을 밝히며 거절하는데요. 그러나 투이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킴은 투이를 총으로 쏘아 자신과 아들을 지키고 방콕으로 도피행에 오릅니다. 그리고 크리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미국으로 가기 위해 애씁니다.


한편 크리스는 미국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크리스의 전우였던 '존'이 방콕에서 킴의 행방을 알게되어 크리스에게 전하죠. 크리스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방콕의 킴을 찾아갑니다. 크리스와 그 부인을 본 킴은 크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탐이라도 미국에서 자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지요.


아들과 헤어지기 전 작별 인사를 하는 킴


이 뮤지컬은 1898년 발표된 소설을 바탕으로 구성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영감을 얻어 쓰였습니다. 〈나비부인〉은 서양 남성들의 동양 여성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치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인형인 것처럼 동양 여성을 그려놓고 있지요. 그리고 약소국 여성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미스 사이공〉에서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나마 '킴'의 자살에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가 붙고, 전후 미군 사생아에 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요.

지고지순한 동양 여성에 관한 오리엔탈리즘적 편견


이런 편견과 더불어 〈미스 사이공〉에는 비판받을 만한 지점이 여럿 있습니다. 베트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과, 베트남 남성을 그저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포주들로만 그리고 있는 시선이 그렇죠. 또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휘두른 폭력은 축소하고 선량한 모습으로만 묘사하기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극중에서 베트남은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모습으로만 그려집니다. 이런 동양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은 대항해시대 식민지 개척시기부터 서양에 널리 퍼졌고, 지금까지도 만연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소리인데? 싶지 않으신가요.


대부분의 한국인이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했던 역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해외에 나가 용감하게 싸워 외화를 벌어온 역사로 기억하고 있지요. 파월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일으켰던 끔찍한 문제는 축소하거나 숨기면서 말이죠. 최근에 크게 늘어난 베트남 및 동남아 신부 매매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및 성 착취 구조가 '부부 문제'라는 개인사의 이름 아래 가려집니다. 베트남 남성에 대한 시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르고 못사는 나라 사람, 난폭하고 위험한 존재 정도로 보고 있죠. 그리고 한류 열풍에 휩싸여 박항서의 나라 한국을 무작정 동경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나요.



우리나라도 오리엔탈리즘의 피해국입니다. 서양에서 수많은 인종차별 사례를 겪었구요.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 또한 더 약소한 국가에게 편견과 혐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피해를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가해자였던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상황이 안 좋아지니, 피해자였던 베트남이 우리나라에게 혐오를 돌려주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역할 바꾸기 놀이인 것처럼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면을 번갈아 쓰고 있는 겁니다.


무시 당할 만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을 '무시 당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우리가 편견을 거부하는 것처럼, 우리의 편견 또한 거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갈등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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