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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r 13. 2020

기억으로 죽음을 재구성하다

〈코코〉, 그리고 『뻬드로 빠라모』

"뉴욕, 파리, 런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입 밖에 내기 꺼림칙한 말이다. 그러나 멕시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음을 자주 이야기하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함께 잔치를 연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장 좋아하는 놀잇감이고 영원한 연인이다."

─Octavio Paz,
『El laberinto de la soledad』





   지나간 과거 되돌릴 수 없다. 소금자루에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일어난 사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조금 다르다. 공동체적 경험으로써의 과거는 현재의 실존적 행동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 친구 사이의 다툼이 절교라는 불쾌한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라면 단순한 해프닝 혹은 더욱 돈독한 우정의 계기로 남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죽음이 개입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죽음은 공동체를 영구히 손상시킨다.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과 화해할 수는 없다. 죽음은 과거를 불가역적으로 고정하고, 고정된 과거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심각하고 엄숙한 사건으로 여긴다. 많은 문화권에서 사후세계가 재판 혹은 심판의 강압적 이미지와 결부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리라.


La calaveras de Don Quijote from the portfolio 36 Grabados: José Guadalupe Posada


   그러나 멕시코의 사후관은 다르다. 옥타비오 파스가 말하듯 그들에게 죽음은 축제이자 놀이이고,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삶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살펴볼 작품은 두 가지다. 〈코코〉(2017)와 『뻬드로 빠라모』다.



〈코코〉(2017)


   〈코코〉는 죽은 자가 가족에게 돌아온다는 멕시코의 기념일 '망자의 날(Dia de Los Mertos)'를 모티브로 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음악을 꿈꾸나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는 소년 '미겔 리베라'가 망자의 날 기념제에서 우연히 저승으로 건너가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화려한 그래픽과 따뜻한 음악으로 그려냈다.


〈코코〉 속 묘사된 저승의 모습


   〈코코〉의 저승이 독특해 보이는 까닭은, 그곳이 무섭거나 슬프다기보다 오히려 아주 흥겹고 즐거운 곳으로 묘사된다는 데 있다. 영화 속 망자들은 총천연색의 휘황찬란한 도시에서 축제를 벌이거나, 잠시 이승으로 건너와 살아있는 가족들의 곁에서 시간을 보낸다.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에 걸맞게, 〈코코〉의 사후세계는 〈신과 함께〉등에서 묘사되는 상벌의 공간이 아니다. 망자들은 이승에서 살던 대로 저승에서도 산다. 그곳은 차라리 낙천적으로 되풀이되는 이승이다.


   다만 그러한 낙천적 되풀이는 산 자의 기억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산 자에게 기억되는 사람은 죽어서도 살고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죽는다. 기억의 여부가 일종의 상벌 기준처럼 작용한다. 〈코코〉에서 죽은 이를 심판하는 것은 '염라'처럼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인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이다.


기억해 주는 이가 한 명도 없다면 망자들은 소멸한다


   '헥토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하는 건 그래서다. 그는 음악을 위해 아내와 아이를 떠난 인물로, 이에 남은 가족과 그 후손들은 헥토르를 가계에서 제외해 버렸다. '리베라 가문'에서 헥토르는 이름 모를 할아버지이자 기억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비록 헥토르가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오려 했다고는 하나, 그의 안타까운 객사는 헥토르와 리베라 가문의 과거를 고정시켜 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헥토르를 소생시키는 것 또한 산 자의 기억이다. 미겔의 'Remember Me'를 들은 헥토르의 딸 '코코'가 아버지와의 기억을 다른 가족들과 공유할 때, 공동체적 과거는 고정된 지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의미로 덧칠된다. 





『뻬드로 빠라모』


   『뻬드로 빠라모』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만나러 '꼬말라'로 향한 '후안 쁘레시아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후안 룰포의 장편 소설이다.〈코코〉가 '기억됨'과 '기억함'을 작중 인물들의 몫으로 설정했다면, 『뻬드로 빠라모』는 기억의 두 항중 '기억함'을 독자의 몫으로 전이시켜 놓는다.


   『뻬드로 빠라모』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소설의 서술자처럼 등장했던 '후안 쁘레시아도'는 유령 마을 꼬말라에서 헤매다가, 이내 죽어버린다. 이를 전후하여 수많은 서술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후안 쁘레시아도, 뻬드로 빠라모, 수산나, 렌떼리아 신부, 도로떼아 등 수십 명의 죽거나 죽지 않은 인물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꼬말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컨대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특정한 과거를 묘사하고 있으나, 그것이 통일된 관점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작위의 목소리들이 시공을 넘어 중구난방으로 메아리치는 형국이다.


Juan Rulfo(1917~1986)


   『뻬드로 빠라모』는 이러한 혼돈을 정리해 주지 않고, 도리어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안나 카레니나』 같은 근대적 리얼리즘이 '분절된 세계(리얼)'를 독자의 앞에 모아다 둠으로써 궁극적으로 다시 한번 뉴턴적 세계관을 되풀이했다면, 『뻬드로 빠라모』는 독자를 '세계의 분절' 앞으로 끌어당긴다. 이로써 독자는 유구한 서사적 전통으로부터 이탈하여 날것 같은 기억들과 마주한다. 이제 독자는 조각난 사건을 자의적으로 엮어내야 한다.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아테네 학당〉을 그려주었다면 후안 룰포는 〈우는 여인〉을 조각낸 퍼즐을 던져 준 셈이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의 기억은 누군가가 실제로 경험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은 아니다. 이는 작가에 의해 창작된 허구적 재현이자 알레고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은 그러한 허구적 재현이 마땅히 기반하고 있어야 할 통일적이고 완결된 허구적 세계로서의 '배경'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뻬드로 빠라모』의 세계는 필요 이상으로 모호하다.


Film 〈Pedro Paramo〉 in 1967


   이때 자연히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독자의 기억이다. 소설에서 사건의 진행은 마구잡이로 묘사되어 있거나 혹은 묘사되어 있지 않은데, 그 빈칸은 독자가 실제로 경험한 혹은 전승된 기억을 실과 바늘 삼아 메워진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회적인 기억일 수도 있다. 소설이 출간된 1950~60년대의 멕시코 구성원들은 바로 전 세대에 일어난 혁명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이해한다. 한편 그것은 개인적인 기억일 수도 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지나간 사랑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이해한다.


   즉 독자는 불친절하게 흩어진 허구적 사건들을 개인의 기억에 의해 모으고 배열한다. 이로써 글자 더미에 불과했던 허구적 사건들은 실재했던 경험과 단단하게 결부된다. 물론 이는 다시 말해 기억이 달라지면 소설도 달라짐을 의미한다. 1950~60년대의 멕시코 구성원들이 기억하는 멕시코 혁명과 지금의 멕시코 구성원들이 기억하는 멕시코 혁명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설 또한 그때와 지금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뻬드로 빠라모』는 슈뢰딩거가 말한 고양이의 생과 사처럼 허구와 진실이 혼재된 채로 날마다 새롭게 덧칠된다. 




   멕시코에서 망자의 날은 실제로도 아주 즐거운 행사다.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래하고 기뻐한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 동력은 기억이다.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는 것. 이로써 불가역적 과거는 다른 방식으로 재전유될 가능성을 얻는다.


   그렇다면 이 글의 서두를 조금 고쳐야 할 성싶다. 죽음은 과거를 고정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공동체적 경험은 기억을 통해 다시 한번 생동한다.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에 되살아나는 망자들처럼.


http://lucindahutson.com/day-of-the-dead-altars-feasts-and-a-celebration-of-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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