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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r 20. 2020

하 “연” 우 아니고요. 국 “가” 스텐도 아닙니다.

국카스텐의 데뷔 앨범

안녕하세요. 여러분.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계신가요? 한 명 한 명이 모여 방역망을 구성하는 만큼 외출 자제는 필수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풀 수 없는 답답함이 쌓여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참 안타깝습니다. 이런 갑갑함을 풀기 위해서 사람들은 계란과 커피를 수백 번씩 저어 보기도 하고, 동전 같은 것을 하염없이 쌓기도 하죠. 내일은 바이러스가 좀 잠잠해지려나 싶어도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유례 없는 기나긴 칩거 생활을 강요하고만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갑갑한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줄 앨범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국카스텐의 데뷔 앨범 <Guckkasten> 입니다.   

  

1집 앨범 커버는 하품을 하는 걸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여러분은 국카스텐?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음악대장 하현우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시겠지요. 맞습니다. 바로 그 하현우가 보컬을 맡고 있는 밴드입니다. 이 밴드는 하현우 외 3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외 3명으로 생략된 멤버도 충분히 주목받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이스의 김기범, 기타의 전규호, 드럼의 이정길은 각 파트에서 한국 최정상급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실력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 상황은 국카스텐 특유의 음악성 때문에 생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카스텐은 사이키델릭 록을 기반으로 하는 밴드입니다. 장르의 특성상 대중적이지 않고, 또 국카스텐의 음악이 난해한 가사와 함께 실험적인 이펙터 운용을 보여주면서 대중과는 더 멀어지게 되었지요. 심지어는 일부 대중에게 커버 곡은 참 좋은데, 오리지널 곡은 듣기 싫은 밴드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커버 곡에 잘 참여하는 보컬 하현우가 점점 알려지고, 악기 파트 멤버는 점점 묻히게 된 것이죠.      



여느 밴드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데뷔 초창기에는 무명 밴드였습니다. 뛰어난 가창력, 연주력, 퍼포먼스 등으로 무장했지만 인지도는 낮았죠. 그런 사정 때문인지, 국카스텐의 데뷔 앨범에는 한 가지 비화가 숨어 있는데요. 바로 이들의 데뷔 앨범은 <Guckkasten>이지만 이것이 그들의 첫번째 앨범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들의 첫 앨범은 <Before Regular Album>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고 하니. 무명이었던 국카스텐은 밴드 재정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이들이 첫 앨범을 녹음해야 했을 때, 장비와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죠. 이에 국카스텐은 특단의 결정을 내립니다. 다음 해인 2010년, 기존 앨범을 조금 더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녹음된 <Guckkasten>으로 모두 무상 교환해준 것이죠. 더 나은 음악을 팬에게 제공하고자 적자를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중적이지도 않고, 한 명만 유명하고, 적자까지 감수해가며 완성도를 추구하는 외골수의 음악을 들어볼까요?     



자 첫 곡입니다. 바로 <붉은 밭 - Acoustic live version>인데요. 왜 앨범 소개에서 음원 버전이 아닌 라이브를 들어달라고 하냐고요? 국카스텐은 자타가 공인하는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은 밴드거든요. 음원에서는 물론 완벽하게 세팅된 환경에서 조화로운 세션을 정확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원에 앞서는 보컬의 발성, 연주의 열정 그리고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서 실수 하나 만들지 않는 완벽함까지. 라이브를 듣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 원본이 아닌 어쿠스틱 버전을 추천하는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이 이유는 뒤에서 들어보시지요. 그럼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어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0R4Ok6d2XCA


붉은 밭의 전주는 이정길의 파워풀한 드럼과 김기범의 현란한 베이스가 인상적입니다. 드럼의 이정길은 마치 말발굽 소리가 달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지요. 이런 느낌은 붉은 모래가 깔린 드넓은 사막 벌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어서 베이스 주자 김기범이 현란함을 더해 슬랩(slap : 엄지를 이용해 현을 때리거나, 현을 당겼다가 놓아 프랫과 부딪히게 하여 소리를 내는 베이스 주법)을 화려하게 펼칩니다. 이런 바탕에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가 들어가는데요. 여기에 제가 어쿠스틱 버전을 추천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매우 경쾌하여 미국 포크송의 느낌을 주고, 이는 앞에 깔린 붉은 사막 벌판의 이미지가 미국 서부의 한 사막으로까지 이미지를 구체화시킵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펼친 라이브에서는 탭댄서와 협연하여 이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으니 언젠가 들어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어쨌든 이렇게 드넓게 펼쳐진 벌판에서 지평선을 가르며 날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현우의 보컬입니다.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질주하는 이 목소리가 어마어마한 해방감과 열정을 느끼게 하지요. 갑갑하게 집에 갇혀있는 요즘, 미리 여름 태양의 뜨거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곡입니다.     



다음 곡은 <Vitriol>을 들어보실까요? 앞서 어쿠스틱 버전을 먼저 추천드린 것에 대해서 국카스텐의 골수팬분들은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국카스텐은 정교하게 조정한 이펙터를 사용한 몽환적인 사운드가 큰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을 고려해서 이 <Vitriol>은 어쿠스틱 버전이 아닌 원본으로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들어보면서 마저 얘기를 해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315ZW0L2_PU


이 곡은 전주부터 이어지는 나른하며 전규호의 몽환적인 기타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무기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멜로디는 곡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데요. 이 곡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등장하는 ‘비트리올 중독’이라는 가상의 병에서 모티프를 얻어 쓰였습니다. 이 비트리올 증후군은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삶의 이유를 잃게 만들고 무기력증에 빠져 살게 만드는 병이죠. 멜로디와 함께 가사도 무기력하고 피폐해진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면에 시달려서 수면제를 털어 넣는 곡의 등장인물은 누가 봐도 망가진 모습이죠. 이런 무기력한 전반은 곧 흐느낌이 됩니다. 하현우의 가성은 흐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흐느낌은 후렴에서 절규로 폭발하게 되는데요. 감정이 폭발하면서 전반부의 무기력한 비애의 사슬이 끊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아주 슬픈 상황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는 감정이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번아웃 증후군을 겪게 된다면 이 노래를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소개할 마지막 곡은 바로 <Violet wand>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온 두 곡 모두 전주가 강렬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마지막 곡 역시 전주 얘기로 시작하려니 약간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나요. 이 곡도 전주가 참 강렬한 걸. 이쯤 되면 밴드의 정체성이 강렬한 전주라고 해도 될 정도가 아닌가 싶네요. <Violet wand>는 국카스텐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분들도 처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명곡이라는 건데요. 같이 들어보실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Szp2Kfa0oME


오픈 하이햇을 강력하게 때리는 단단한 이정길의 드럼 반주 위에서 앙칼진 기타와 능청스러운 베이스가 고무줄놀이를 넘습니다. 하현우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곡의 주제는 “불안정한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자신과 상대방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기며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찬찬히 가사를 들어보면, 웬걸? 가사가 무척이나 야하게 들립니다. 은유를 동원하여 퇴폐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노래한 것처럼 들립니다. 게다가 이런 가사를 자타가 공인한 섹시한 보이스의 하현우가 노래하니, 엉큼한 생각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습니다. 이런 감상과 곡의 주제를 결합해보면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는 사랑의 형태로 퇴폐적인 모습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랑의 형태는 결국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곡은 후반부로 진행하면서 강렬한 형태로 폭발합니다. 마치 한계까지 부푼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요.      


지금까지 <Guckkasten>에서 세 곡을 뽑아 여러분께 소개해드렸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끊임없이 음악을 추구해온 밴드가 낸 첫 앨범이라 그런지, 어려웠고 상처 받았던 모습이 앨범 전체에 녹아있는 것 같군요. 요새 같이 어렵고 힘든 환경이 지속되어 갑갑한 때에 들으면 조금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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