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방법은 재미없는 부분을 모두 잘라내면 돼요.
유튜버 <주부아빠>는 이런 말을 했다. 썩은 감자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썩은 부분을 모두 도려내면 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좋지 않은 부분을 모두 오려내면 된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다."라는 말로 고쳐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는 200번이나 고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송나라 때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는 글을 쓰면 벽에 붙여놓고, 시간 날 때마다 글을 고쳐 썼다. 어떤 글은 완성되었을 때 초고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1)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는 글 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고가 완성되면 발제 정도가 끝난 것이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이다. 고치는 것은 마감 시한도 없다. 연설하는 그 시각이 마감 시각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고친다."2)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은 사람이 글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나눴다. 생계 때문이 아니라면 사람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글을 써서 돋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 약간의 거드름을 피우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은 순수한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이유는 '미학적 열정'이다. 너무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면 어떨까? 누군가는 그림으로 그리고 싶고, 노래로 표출하고 싶고, 글로 표현하고 싶어 진다. 아름다움에 홀려서 뭔가를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세 번째 이유는 '역사적 충동'이다. 일제 강점기에 누군가는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서 글을 썼다. 후세를 위해 역사를 보존하는 욕망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네 번째 이유는 '정치적 목적'이다. 글을 통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살 만한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글쓰기다.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이 글쓰기 원동력이 된다.3)
글쓴이는 네 가지 동기 외에 사람이 글 쓰는 또 다른 동기가 있다고 본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인간은 학습 10분이 지나면 망각이 시작돼서, 20분만 지나도 48%를 잊어버린다. 하루가 지나면 70% 이상을 망각한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복습을 해야 한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은 '직접 경험'에 따른 학습은 '회고'에 의해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학습으로 얻은 경험을 결합하고, 요약하고, 이해하려는 의식적 노력과 함께 할 때 효과적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회고로부터 배운다.4) 조지 오웰이 정의한 글 쓰는 네 가지 동기에 한 가지를 덧 붙인다면 '배움'이다.
글쓴이가 글 쓰는 이유는 배움, 정치적 목적, 순전한 이기심이다. '배움'과 '정치적 목적'은 글을 쓰는 내적 동기고, '순전한 이기심'은 글을 쓰는 외적 동기다. 글을 쓰면 '필자'와 '독자'로 나눠진다. 글 작성을 끝내면, 그 글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글을 읽는 독자의 것이다. 어떤 목적에 의해 글을 작성한들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 독자가 읽어야지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독자를 위한 글일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발음이 어눌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답답하다. 반면 아나운서나 배우의 발음은 귀에 꽂힌다. 연기력의 기본은 딕션이다. 어려운 대사를 또박또박 발음하며 TV 넘어 정확한 대사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말하기 기본이 '딕션'이라면, 글쓰기 기본은 '단어'와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생각 정리가 되지 않으면 횡설수설 말이 길어진다. 주요 논점에서 벗어난다. 글 쓸 때 엿가락 마냥 길게 늘여 쓰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문장은 흐리멍텅해지고 내용 파악이 어렵다. 긴 문장을 짧게 끊어 쓰면 생명력이 살아난다. 긴장감이 느껴지고 핵심 주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김동식 교수는 "생각의 길이와 글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말이 부족하면 글이 모호해지고, 생각 없이 말만 길게 늘어지면 지루해진다."고 지적했다.5)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쓰자.
나는 반짝이며 유혹하는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라고 사료된다. 금으로 둘러 쌓인 지구를 상상해보면, 지구가 흙이 아닌 금으로 되어있었다면 휘황찬란한 황무지가 되어있을 것을 것이다. 하늘에 태양이 있다면 땅에는 자양분이 녹아 있는 흙이 있고, 생명의 보금자리인 토양이 있고, 피조물을 잉태하는 토지가 있고,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흙이 있다.
이 글은 최근 글쓴이가 쓴 <아버지의 유산> 첫 문단이다. 눈으로 읽으면 어떤 의미를 담고 싶어 했는지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깔끔하지 않고 담백하지 않다. 같은 단어가 중복되어 있고 문장은 삼복더위 개처럼 축 늘어져 있다. 퇴고를 거쳐 아래와 같은 문단으로 탄생했다.
나는 흙수저다. 반짝이며 유혹하는 금수저가 아니다. 금으로 둘러 쌓인 지구를 상상해 보라. 지구가 흙이 아닌 금으로 되어 있었다면 휘황찬란한 황무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늘에 태양이 있다면 땅에는 흙이 있다. 자양분이 녹아 있는 흙. 생명의 보금자리 흙. 피조물을 잉태하는 흙.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흙이다. 나는 흙수저다.
보기 편한 글을 써야 한다.
20세기 전, 글을 쓰는 사람은 특별한 대우와 존경을 받았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아무나 글을 유통할 수 없었다. 책으로 유통하면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인터넷이 발명되면서 '글 쓰는 자격'이 없어졌다. 글 쓰고 유통하는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블로그, 티스토리, 브런치, SNS를 통해 자기 생각을 쓸 수 있는 시대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다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글을 쓰는 사람은 컴퓨터로 쓰지만, 읽는 사람은 핸드폰으로 본다. 글을 이쁘게 꾸미기 위해 가운데 정렬로 '문장 쓰기'를 한다. 문장마다 줄을 바꾸며 읽기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큰 오산이다.
가운데 정렬로 '문장 쓰기'를 하면 컴퓨터에서는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다. 하지만 모바일로 보면 상당히 읽기 불편하게 보인다. 읽기 불편한 문장은 독자를 짜증 나게 한다. 이렇게 '문장 쓰기'를 하기보다 문장을 붙여 '문단 쓰기'를 하면 컴퓨터와 모바일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
한국말로 써야 한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한다고 착각한다. 한국말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글을 잘 사용한다고 착각한다. 이런 착각 때문에 어색한 한국말이 만들어지고 있다.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글을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글 쓰는 목적이 '순전한 이기심'에 침략당하면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럴듯한 글을 쓰기 위해 한자말을 남용한다. 유식하고 품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글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나' 또는 '필자'다. 1인칭으로 자신을 보고자 할 때는 '나'라고 쓸 것이고, 3인칭으로 바라볼 때는 '필자'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필자'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때 글쓴이도 '필자'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글을 계속 쓰면서 왠지 모를 불쾌한 감정을 느꼈고 대신 사용할 단어를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단어는 '글쓴이'이다. '필자'보다 훨씬 정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서 한자말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습비행 중 새떼와 조우, 몇 마리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엔진에 화제가 발생해서 추락했다.
이렇게 한자말을 많이 사용하면 한국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 너무 쉬운 말을 써서 자기가 무식해 보일 것을 염려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면 못난 글이 된다.6) 위에 글은 아래와 같이 바꾸면 읽기 편해진다.
연습비행 중 새떼를 만나, 몇 마리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엔진에 불이 나 추락했다.(떨어졌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말은 1900년대까지는 없던 말이었다. 광북 이후 중국과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았다.7) 19세기 말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 한자어가 들어왔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쓰던 문자는 완전한 한국어가 되었다. 그렇다고 굳이 모든 한자말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단어는 동의어가 없기 때문에 1 대 1로 치환할 수 없다. '피'와 '혈액'은 동의어가 아닌 유의어다.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100% 바꿔 쓸 수 없다. '피 끓는 젊음', '피를 나눈 사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는 말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혈액이 끊는 젊음', '혈액을 나눈 사이', '머리에 혈액도 안 마른 놈'은 틀린 한국어다.8) 언어는 사회적 약속임과 동시에 상대적이다. 언어 사용은 '절대'라는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즐겨 쓰면 그 말이 표준어가 된다. 한자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와 우리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옹호하는 태도는 현명하지 않다.9) 지식을 뽐내려 한자말을 남용하지 않는 자세와 사람들이 잘 모르는 토박이말을 마구 쓰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구양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해야 한다고 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고치기 위해서는 다시 읽고, 거듭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고쳐야 한다. 글쓰기는 기술이다. 고치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멋들어진 어휘, 휘양 찬란한 중국말, 화려한 문장은 기술이 아니다. 독자의 공감을 얻는 글, 마음을 움직이는 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쓰기 기술을 가져야 한다.
※ 참고문헌 ※
1) 홍승완 오병곤 저, <내 인생의 첫 책쓰기>, 위즈덤하우스, 2008
2) 강원국 저, <대통령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 2014, p.143
3)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p.15
4) 존 도어 저, 박세연 역, 이길상 감수, <OKR>, 세종서적, 2019, p.185
5) 강원국 저, <대통령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 2014, p.73
6) 이오덕 저, <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1>, 한길사, 2009, p. 43
7) 유시민 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길, 2015, p.182
8)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p.165
9) 유시민 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길, 2015,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