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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놔둘까 버릴까

하루 종일 책을 꺼내고 책장을 닦는 일

by 김필영





하루 종일 책을 꺼내고, 책장을 닦았다. 반복되는 행동에 마음이 고요해졌고,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 책은 놔둘까. 그냥 버릴까. (물론 모두 버리는 건 아니고, 나눔과 알라딘 중고서점에 판매를 하겠지만) 우리 집에는 놔두지 않을 책들이 한 곳에 쌓이고, 다시 책장으로 들어가는 책들이 쌓인다. 닦고 고민하고 넣고. 반복하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쉬었다가, 아이들이 오고도 청소는 계속되었다. 버릴까. 말까. 버릴까. 말까. 10권 중 3권을 버리고, 5권을 버리고 하다 보니 사실 남아있는 책들 역시 바라보니, 아니 뭐 이런 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새로운 책들로 책들은 채워질 텐데. 마치 매달리는(?) 구남친처럼 그 책들은 어쩐지 오늘따라 다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더 이상 매력적인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밤 10시가 되자 깔깔거리던 아이들은 잠들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남편이 오기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고민했다. 청소를 좀 더 할까. 그러다가 그래, 남은 1시간은 그래도 글을 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7년 정도가 된 듯하다. 첫 책이 나온 지는 4년이 지났다. 4년 동안 책을 두권 냈고, 2년 정도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적지만 꾸준히 글을 썼다. 그리고 글쓰기 강의와 강연은 그보다 조금 더 열심히, 자주, 한 것 같기도 하다.

2026년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나는 자의와 타의가 나뉘긴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그만두었다. 그만두지 못하는 일들은 역할을 축소했다.


우선, 조선일보에서 2년간 연재했던 칼럼을 마무리를 지었다. 계절이 두 번씩 바뀌는 동안 신문에 대해 썼다. 나는 신문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2년 동안 내 방식으로 잘 표현을 했다고 믿는다.

두 번째로, 글로성장연구소에서 다시 부대표로 내려왔다.(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결정된 것, 직함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셋째, 외부강의를 조절해서 받는 중이다. 외부강의는 2026년에도 계속 진행하려고 하지만 2025년만큼은 아니다. 좀 더 많이 준비할 수 있을 때, 내가 에너지가 있을 때, 그리고 적절한 금액대의 강사료를 받거나, 취지가 마음을 흔들 때에만 하기로 했다.






2026년도에는 마음의 먼지를 닦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낮에는 청소나, 산책,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마음이 내킬 때 내키는 일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함께 책을 읽거나, 나 홀로 실내 자전거를 타거나. 그럼에도 아이가 부르면 언제라도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한다.



우선 오늘은 그 첫날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12월 5일에 몹시 부담이 가는 강의가 있었기에(웃음) 마음이 바빴다. 그 강의가 끝나고 맞이하는 첫 월요일. 호기롭게 끊어놓은 상가 내에 에스테틱샵에 갈까, 아파트 내에 있는 헬스장에 갈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하루 종일 책장에 먼지를 닦았다. 오후 1시에도 먼지를 닦고 있었는데 오후 3시에도 먼지를 닦고 있다. 그런 내가 좋았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좋았다. 내가 매일 앉아있는 컴퓨터에 앉아있는 먼지도 닦았다. 마이크도 닦고 프린터기에 있는 먼지도 닦았다. 온 천지에 먼지가 내려앉아있었다. 이렇게 먼지가 많았구나 하는 반성보다는 어쩐지 그것을 없애는 과정이 평화롭고 즐거웠다. 그러다가 죽은 듯이 누워있기를 반복.





누워있으며 생각해 보니, 책을 모두 버려도, 책장에 텅텅 비어도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버릴까 진심으로 고민도 해본다. 그리고,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의 짐만 남겨두고 사는 것이 어떨까. 모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어떨까. 아마 책장은 텅텅 비어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책으로 가득 찰 것이고, 모든 일을 그만두더라도, 나라는 인간, 또 일을 만들어서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 비운 것에서 딱 반을 더 비우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책장이 하나는 채워져 있고, 하나는 텅텅 빈 채로 존재할 수 있게.





그 생각을 하자, 내가 친정집에서 살 때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모아 왔었던 책들과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다락방 같은 곳을 책으로 채우던 나. 책 욕심이 그렇게 많아서, 아주 아주 오래된 책부터 몸집을 키우기 위해 (책 권수) 모아 온 책들. 그 책들을 보면서 나는 뿌듯했는데, 그 뿌듯함은 정말 나 스스로의 것만이었을까. 타인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까.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생각. 텅텅 빈 곳에서 내가 훨훨 날 수 있는 곳에서 하나씩 원하는 일만 해봐야지.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책장에 책이 몇 권이 있든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들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것. 정확하게는 이때 아이들이 추는 춤과 웃음.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잠들고 쓰는 내 마음이 담긴 글. 애초에 나라는 인간이 담는 것들은 이렇게 소소하고, 작은 몸집이니까. 작은 반짝임을 찾아봐야지.


일상에서 기록을 계속 유지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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