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호 Feb 24. 2021

옛날 영화도 재미있다! 근데 왜? <만춘> 리뷰

[영화의 단상] 영화 <만춘>(오즈 야스지로, 1949) 리뷰

<만춘>(오즈 야스지로, 1949) 재미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논할 때면 절제된 형식미와 다다미쇼트의 안정감,  가족에 집약된 세대분화 이야기들이 더러 나온다. 하지만 부인할  없는 인상이자 내가 우선 말하고 싶은 바는 <만춘>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재미"라는 표현은 추상적이다. "재미있다" 칭찬이 포용할  있는 매력의 범위는 장대하다. 어떤 이는 최근 공개된 <승리호>(조성희, 2019) 수준 높은 CG 재미있다고 평하고 어떤 이는 <포드 V 페라리>(제임스 맨골드, 2019) 둔탁한 배기음 효과를 재미의 요소로 논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진득하고 노쇠한 움직임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높게  여름구름을 연상케 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춘> 어떻게 재미있는가? <만춘>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자체의 힘이 탄탄하다. 적당한 여지를 남기고 다음 (혹은 다음 시퀀스)에서 궁금증을 수습하며 다시 여지 남기기를 반복한다. 어드벤처물에서 꺾인 나뭇가지를 따라가기만 해도 최종 목적지가 궁금하듯이 영화에서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도식은 어쩌면 단순하지만 관객의 흡인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 이러한 기법을 훌륭히 활용한 좋은 사례다. 하지만 많은 영화들이  과정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혹은 설계를 게을리한 탓에 관객의 집중을 붙잡는데 실패한다.

이미지 출처: MoMA

다시 질문을 던진다. <만춘> 어떻게 재미있는가? <만춘> 가족드라마 장르 안에서 위의 모델을 간명하게 구현한다.  영화를 보며 우리가 궁금한 것은 주인공 노리코(하라 세츠코) 진심이다. 알듯말듯, 잡힐듯 도통 잡히지 않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 노리코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주변으로부터 결혼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노리코는 그런 주변의 관심에 가볍게 웃어넘긴다. 본인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때 노리코의 웃음은 자신의 마음속을 꽁꽁 감추는 두꺼운 포장지와 같다.


 영화에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첫번째 진심은 아버지의 조수 핫토리(우사미 ) 향한 마음이다. 영화 초반 노리코가 핫토리와 자전거를 탄다.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 언덕에 올라 나란히 앉은  사람, 영화는 굳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앞에  대의 자전거를 보여주며  커플의 결합 가능성을 점친다. 그날 저녁, 아버지 슈키치와  노리코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슈키치가 노리코에게 묻는다. "핫토리 어떤 사람이니?" 노리코, "좋은 사람이죠." 슈키치가 재차 묻는다. "핫토리 남편감으로는 어떠니?" 아무리 "달이  예쁘네요"라는 말로 사랑 표현을 대신한다는 일본인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인공이 직접 진심을 말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하필 앞선 질문에 노리코가 대답하는 대목에서 카메라는 노리코의 뒷모습을 비춘다. 비언어적 표현(표정) 소거된 정보만을 습득했기에 우리는 순간 대답의 진심을   없다. 카메라의 얄궂은 장난은 관객을 더욱 안달 나게 만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리코는 핫토리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밝히고 관객은 노리코가 핫토리에게 감정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하나의 질문이 해결되니 <만춘> 새로운 질문을 던지다. '그렇다면 노리코는  결혼하기 싫어하지?'(영화의 배경인 1940년대 일본에서 비혼은 당연한 선택지가 아닌 듯하다) <만춘> 이같이 궁금증을 부풀리고 일부를 수납하여 뒤로 미루다 그것이 해결되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반복하며 관객의 집중력을 붙잡는다.


하지만 단순한 도식만으로 108 내내 관객을 붙잡기는 어렵다. <만춘> 위의 방식에 부녀간 서정을 고루  바른다. 영화는 아버지 슈키치를 축으로 자전하던 노리코가 스르르 이탈하는 모습을 감상적으로 빚어낸다. (슈키치)  닿을듯 가깝던 노리코의 궤도는 점차 긴반지름이 늘어나더니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전축에서 완전히 이탈하고야 만다. 오프닝신 바로 직후 , 슈키치와 핫토리가 집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노리코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 내러 카메라 밖으로 다시 사라지려는 노리코를 슈키치는 자리에 앉아 부른다. 노리코는  호명에 그의 곁이자 화면프레임 중심으로 다가간다. 이것이 <만춘> 전반부 부녀의 관계다. 슈키치는 가만히 있고 노리코는 그의 주변을 오간다. 슈키치가 부르면 노리코가 온다.


영화 중반부, 슈키치의 재혼 소식을 접한 노리코는 아버지에게 실망이 일기 시작한다. 슈키치와 노리코가 연극을 보는 동안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부녀가 같이 집에 가는 동안 노리코는 심란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혼자 집에 보낸다. 노리코의 궤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리코는 충동적으로 친구 집에 가지만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에는 역시 슈키치가 있다. "슈키치는 가만히 있고 노리코는 그의 주변을 오가"는 관계가 전복되는 시점이 있다. 영화 후반부, 슈키치의 재혼 선언이다. 노리코가 "아버지와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을 안하겠다"고 그녀의 진심을 밝히자 슈키치는 "자신도 재혼할 테니 너도 결혼하라"고 말한다. (이 선언은 노리코를 시집보내기 위한 슈키치의 거짓말이었음이 결말에 드러난다.) 아버지의 재혼선언에 크게 낙담한 노리코가 슈키치가 있는 집 거실을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도망친다. 슈키치는 그런 딸을 위로하고자 그녀에게 찾아간다. '딸이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가던' 영화가 '아버지가 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영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언제까지 슈키치의 곁을 맴돌 수만 없음을 깨달은 노리코는 이후 물결선을 그리며 아버지에게서 차츰 멀어진다.


"오즈의 영화는 이해되어야 하고 연구되어야  중요한 비평 텍스트이지만  이전에 감상할 작품임을 잊어서는  된다" 홍성남 평론가의 말처럼 <만춘>   '배워야  고전 텍스트' 대하는  아니라 '풍성한 감성의 예술품' 보는 자세로 접근하길 권한다. 유명한 영화라고 교양을 적립하겠다는 생각보다 풍요로운 재미와 미감을 먼저 오롯이 누리기를 바란다. 분석은  후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만춘> 재미있는 영화다.




감독: 오즈 야스지로

출연: 류 치슈, 하라 세츠코 등

장르: 가족드라마

쿠키: 쿠키영상없음
 

작가의 이전글 환상통에 관한 유려한 설화 <운디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