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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Aug 09. 2021

라스트 댄스! 도쿄올림픽과 영화 <포드 v 페라리>

2020 도쿄올림픽과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의 감동

   '라스트 댄스'는 언제나 경이롭다. 이미 최고 궤도에 오른 베테랑이 진력을 다해 마지막에 임하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스포츠는 라스트 댄스가 특히나 돋보이는 분야다. 박지성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으로 출전한 2011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출중한 기량을 뽐내며 국가대표팀을 대회 3위로 견인했다. 기성용 선수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다소 냉담했던 국내 여론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에 힘을 쏟았다. 대표팀은 비록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기성용의 분전은 유럽의 다크호스 스웨덴(1차전)과 북중미 강호 멕시코(2차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두 선수의 모습은 국내 축구팬들에게 인상적인 여운을 남겼다.


   성마른 언어로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라스트 댄스의 감응은 영화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다. 꼭 구기종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 V 페라리>(제임스 맨골드, 2019)는 실화를 각색한 모터스포츠 드라마다. 영화는 고분고분치 못한 성격으로 후원사들 눈밖에 난 카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와 그를 세계 정상으로 올리려는 자동차 엔지니어 캐롤 셸비(맷 데이먼)의 라스트 댄스를 다룬다. 포드로 표상되는 자본의 논리가 켄과 캐롤의 전문가성 짙은 도전의식을 짓누를 때마다 이들의 질주 욕망은 더욱 순결한 모습으로 몸을 부풀린다. <포드 V 페라리>는 전문가주의를 조명한 영화로 평가받고는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노장들의 순수한 분투를 그린 드라마투르기도 훌륭하다. 영화 초반 캐롤(캐롤은 레이서였으나 심장질환으로 은퇴했다)의 르망24시 레이싱에서 언뜻 보였던 차체와 레이서의 물아일체의 경지는 영화 후반부 켄이 마지막으로 도전한 르망24시에서 차체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며 가속 타이밍을 재는 모습으로 다시금 재현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경주의 박진감에만 몰두하는 기존 카체이싱무비와 달리 <포드 V 페라리>는 레이서의 고된 여정을 둔탁한 엔진음과 차량의 진동으로 치환하며 결국 '모든 스포츠가 드라마'임을 증명한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여자배구 종목에 출전한 김연경 선수의 라스트 댄스가 돋보였다. 김연경은 올림픽 개막전 인터뷰에서 "<라스트 댄스>(ESPN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스포츠 다큐멘터리 시리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불스 소속 시절 마지막을 다뤘다) 다큐멘터리를 좋게 봤다"며 국가대표로서 마지막으로 나서는 올림픽에 각오를 다졌다. 이후 김연경은 올림픽 무대에서 월드클래스 기량을 선보이는 한편 주장으로서 동료 선수들을 꾸준히 다독여 원팀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올림픽 전에 선수단이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굳건하게 팀의 중심을 세웠다. 올림픽에 출전한 상대국들 역시 강했지만 김연경을 주축으로 한 여자배구팀은 조별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누르고 8강에서 세계랭킹 4위 터키를 꺾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여자배구팀이 보여준 투지와 단합은 올림픽에서 보고 싶어하는 '스포츠 정신' 그 자체였고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는 도쿄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했다.


   최선을 다한 유종의 미는 항상 아름답기 마련이다. 라스트 댄스의 가치는 메달 색깔이나 순위에 달려있지 않다. <포드 V 페라리> 빚어내는 최고의 감동은 켄의 마지막 레이싱에서 파생하지 대회 결과 때문은 아니다. 국민들이 김연경에 열광한 이유도 배구 코트 위에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땀방울에 있었다. 김연경의 노력에 국민들은 올림픽 메달에 연연하지 않는 성숙한 의식으로 화답했다. '이만하면 됐어' 식의 나태함 섞인 만용을 경계하고 마지막까지 진력을 다하는 스포츠의 라스트 댄스는 어떤 각본보다도 놀랍다.




세르비아를 상대로 한 동메달 결정전 직후 인터뷰에서 김연경 선수는 "내 모든 것을 다 쏟았다고 생각하고 후회는 없다"는 심정을 밝혔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팀에 쏟아진 관심과 응원에 대해선 "관심 속에서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며 "끝까지 응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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