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육을 실내에서 받으며, 웬만해선 햇빛 볼 일 없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햇빛을 보며 사는 삶! 매우 희망찬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이는 오히려 절망적인 삶이다. 때는 5월 말, 여름의 초입에서 조금씩 뜨거워지는 햇볕과 올라가는 기온을 첨단 과학(에어컨)의 보호 없이 견뎌야 한다는 소리였다. 고마운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날에는 점호와 체력단련을 실시하는 이른 아침마저 더웠다. 날씨뿐 아니라 앞으로 받게 될 교육의 난이도 역시 상황을 절망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한몫했다. 중요도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해온 교육과 앞으로 받아야 할 교육에 차등을 둘 수는 없겠지만 훈련병 및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은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터였다. 사격, 수류탄, 각개전투, 행군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과목들이 남은 3주간에 몰려있었다.
미리 할 수 있는 것이나 미리 하면 좋을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훈련들은 몸으로 부딪혀 배우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것들이었다. 따라서 굳이 걱정에 정신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군생활에서 기원한 말 중에 ‘짬’이라는 말이 있다. 군에서 먹는 밥을 속어로 ‘짬’이라고 하는데 ‘짬 좀 먹었다.’ , ‘짬이 찼다.’ 같은 식으로 응용하여 사용한다. 짬 좀 먹었다는 건 그만큼 군 생활을 길게 했다는 뜻이라 이 표현은 ‘요령이 생겼다.’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 고작 10일, 그것도 훈련소 생활이라지만 짬을 좀 먹어서인지 처음에 들던 괜한 불안감이나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머릿속에서 정확히 나누고, 할 수 없는 것은 일단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자는 태도가 생겼다. 결론은 남은 실내 교육 시간이나 즐기자 였다.
오늘은 정훈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정훈교육은 이념 또는 사상교육의 일환이다. 대한민국 군인의 적이 누구인지를 규정하고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의만 놓고 보면 여러모로 조심할 주제가 많아 보이는 교육이다. 그러나 최신 트렌드가 그런 것인지, 교육하러 온 교육대장의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은 상당히 일반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진행되었다. 교육이라기보다는 사기진작과 동기부여를 위한 자리 같았다. 국가로부터 주어지는 보호와 여러 기회들이 있는 만큼 군 복무를 통해 국가에 기여할 의무도 있다. 군대가 시간을 뺏는 것은 사실이지만 허락하는 자유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군생활을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기회로 삼아라. 이왕 온 것 국가를 위해, 자신을 위해 열심히 복무하자. 대충 이런 내용을 골자로 교육이 이뤄졌다.
교육 내용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실 나의 사기진작과 동기부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교육 전후로 틀어준 대중가요였다. 교육을 시작하기 전 자리를 정돈하는 동안 강의실에는 장범준의 노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가 나오고 있었다. 너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그리워한다는 가사가 이곳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남자들만 가득한 이곳에 연애감정을 건드리는 감성적인 가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자고로 남자들은 쑥쓰럼을 많이 타서 연애 얘기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이런 노래를 좋아하지만 노래방에서나 부를 줄 알지 남자들끼리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쿨하고 딱딱하다. 본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는 더하다. 연애가 주제라면 어떻게 만났고 뭐하는 사람이고 몇 년 사귀었는지 말하면 대충 얘기가 끝난다. 노래 가사처럼 그 사이에 숨은 더 중요한 내용들은 각자 짐작해야 하는 영역이 된다. 술 한잔 했을 때면 모를까 쉽게 꺼내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 자연스레 적응하던 차에 오랜만에 감성적인 노래를 들으니 사회에 있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이런 것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싶었다.
교육이 끝난 후에는 여자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두 개 틀어주었다. 아이돌 문화나 춤에 워낙에 무지해서 사회에 있을 때는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보는 여자 아이돌은 갖는 지위가 사회와 전혀 달랐다. 독립적인 자아를 강조하는 노래, 그룹 ITZY의 <WANNABE>와 지금 이 순간이 축제의 순간이니 즐기라는 노래, 그룹 IZONE의 <FIESTA> 뮤직비디오를 입대 후 가장 높은 집중력으로 시청했다. 10일 만에 처음 듣는 상큼한 이성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외양이 나의 집중력의 원인이었다고 한계 짓지 말아 달라.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 바넘이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던 말처럼, 이런 게 예술이라는 감격에 휩싸여 나는 온 감각을 눈과 귀에 집중했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임을, 대화 사이에 삶 사이에 숨겨진 솔직한 마음들을 듣고 표현하기를 즐기는 사람임을 떠올렸다. 나는 노래하고 글 쓰는 것은 물론, 가장 약한 부분을 꺼내어 대화하기도 즐기는 사람이다. 아, 하마터만 잊을 뻔했다.
이런 자각은 원래 대단한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김행숙 시인의 <노랫말처럼>(『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문학과 지성사, 2000)이라는 시는 아래와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말에 음악을 입혔네, 음악에 말을 입혔지
노랫말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설명이다. 이렇게 당연한 말로 시는 시작한다. 시의 화자는 자신의 상황이 자기의 본질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랫말이 끊기고 꿈이 멈추는 곳에서 화자는 슬퍼한다. 그곳이 자기가 버려진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화자는 깃털을 잃어버린 새와 그 깃털로 만든 부채의 바람을 느끼며 흘러가고 돌아오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현재의 자신은 그 버려진 깃털이 일으킨 바람 같은 것이고,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다른 곳에서 흘러왔다고 생각해
그런데 노랫말은 말에서 온 걸까, 음악에서 온 걸까? 말과 음악이 서로를 입으며 자기가 주인이라 주장하지만, 노랫말은 둘 중 무엇으로부터가 아니라 둘의 합으로 새로이 생겨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시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생각에는 주인이 없지 문을 다 열어놓고 있었지
주인이 없는 생각이 온통 열어놓은 문을 통해 들어오고 다시 나가듯, 잠깐 이것이기도 하고 잠깐 저것이기도 하며 만들어지는 게 ‘나’다. 흘러 온 것도 다른 곳에 있는 것도 모두 ‘나’라서 우리 삶은 이어지고 합쳐진 노랫말 같다. 그리고 이런 자각은 시 <노랫말처럼>이 당연해 보이는 말로 시작하듯이, 노래 가사가 집중하지 않는 동안에도 두 귀로 흘러 들어오듯이 찾아온다. 시의 내용과 형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나에게 스며왔다.
깨달음은 열린 생각의 문을 통해 노랫말처럼 흘러들어온다. 오늘 나에게는 비유가 아닌 정말 노랫말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꾸준히 기억하며 이곳에 있을 때 오히려 나는 건강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맞지 않아 깎아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더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을 때 존재의 성숙도 이뤄질 것이다.
누구나 나의 현재가 거대한 '나'의 흐름이 깜빡 흘려놓고 간 조각처럼 느껴져 슬플 때가 있다. 흘려진 장소에 맞추어 조각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했던 순간들. 내가 꿈꾸던 모습은 저 멀리에 있고 나는 계속 중간에 머무르는 듯한 날들이 있다. 그러나 먼저 저 멀리에다다른 ‘나’와 지금 흘려진 ‘나’ 사이에 여전한 연결을 기억할 때둘은 마법처럼 하나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말과 음악이 하나 되는 꿈같은 순간처럼
오늘 교육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교육대장쯤 되어 대장 명찰을 달면 뭐가 필요한지를 정확히 아는구먼. 어디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사장 말투에 빙의하여 마음속으로 교육대장을 칭찬했다.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