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야외 훈련을 당장 다음 주로 앞둔 금요일이었다. 3일 뒤 월요일이면 그동안 배웠던 내용을 바탕으로 사격술 시험을 봐야 했다. 월요일에 사격술 시험을 통과하면 화요일에 정상적으로 영점사격을 하러 갈 수 있고, 영점사격을 바로 통과하는 훈련병들에게는 그다음 날인 수요일을 통째로 쉬는 파격적인 휴식이 약속되어 있었다. 실거리 표적 사격은 목, 금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영점사격과 마찬가지로 목요일에 합격하면 금요일을 쉴 수 있었다.
사격 자체는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아니었다. 재미도 있고 여러 번 쏠수록 눈에 띄게 실력이 늘기 때문에 성취감도 크다. 문제는 사격을 위해 단독군장을 하고 걷는 사격장까지의 길이었다. 군장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커다란 배낭을 진 모습을 완전군장이라고 한다. 이 완전군장에서 배낭을 뺀 것 즉, 탄띠와 탄띠에 결합하는 탄알집, 수통, 방탄헬멧, 총기 및 방독면까지만 몸에 휴대하는 군장을 단독군장이라고 한다. 완전군장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단독군장만 해도 몸에 매달린 것들의 무게가 15kg는 된다. 그 상태로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길을 한 시간 반 가량 걸어야 했다. 사격장에 도착한 후에도 문제는 있었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사격을 하러 가기 때문에 언제 자기 순번이 올지도 모른 채 무한 대기를 해야 했다. 20분 정도의 사격을 위해 사격장을 오가고 대기하며 총 다섯 시간 정도를 소모해야 하는 구조였다. 단계별로 제때 통과하지 못한다면 고생길이 훤했다. 당장 월요일에 있을 사격술 시험부터 온 힘을 다해 합격할 궁리를 해야 했다.
사격술 시험에 포함된 과목은 다양했다. 탄알집 교체, 총기 분해, PRI, 총기 기능 고장 시 대처법, 거리별 과녁 조준 법, 영점 조절법, 바둑알 올리고 방아쇠 당기기, 엎드려 총 쏘는 자세 이렇게 8가지 정도의 과목을 통과해야 했다. 연병장에 과목별 시험장을 부스 형식으로 차려두고 조별로 부스를 돌아다니며 시험을 보는 방식이라고 했다. 대학생 때 과학 캠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어린 학생들이 내가 있는 부스로 오면 간단한 과학 이론을 가르쳐주고 적당히 도와 과제를 성공시켜 스탬프를 찍어주곤 했다. 그때 그 아이들에게 언젠가 군대에서도 비슷한 것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적당히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강의실에 모여 교육영상을 시청한 후에는 실제 총기를 가지고 연습을 진행했다. 분해도 직접 해보고 탄알집에 탄알을 장전해보기도 하며(연습 시에는 화약이 없는 탄피를 사용한다.)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동기들은 총기 분해를 특히 즐거워했다. 시험 자체가 시간 내에 총기 분해를 완료하는 것이다 보니 서로 경쟁이 붙어 더 열심히 연습했다. 조준 법, 영점 조절법, 기능 고장 시 대처법 같은 과목은 이론적인 내용이 주여서 암기력이 좋은 친구들이 먼저 외워 다른 친구들을 가르쳤다.
훈련병들의 원성을 가장 많이 산 과목은 PRI였다. PRI는 총을 쏘는 기본자세를 연습하는 과목이다.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의 줄임말로, 사전 총기 교육 정도의 의미이지만 훈련병들에게는 (P)피나고 (R)알배기고 (I)이가 갈리는 시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병장에 모여 ‘서서 쏴’, ‘엎드려 쏴’, ‘무릎 쏴’, ‘쪼그려 쏴’ 네 개의 자세를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전환하다 보면 무릎과 팔꿈치가 까지고 허리가 아파온다. 땡볕 아래 흙바닥에 구르며 땀과 흙먼지가 섞이는 서러움을 견뎌야 하는 훈련이었다. 그렇게 못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조교는 계속해서 자세를 지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세 훈련이라기보다 체력단련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쑤셨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뭐라도 도움이 되리라 스스로를 달래며 지시에 순응했다. 훈련병들에게는 어디까지가 정당하고 필요한 교육인지, 어디부터가 과한 지시인지 구별할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각각의 과목을 숙달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시험의 평가 방식이 훨씬 큰 문제였다. 시험과 평가는 조 단위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내가 잘하더라도 다른 조원의 성적이 부진하면 통과를 못하고 재시험을 봐야 했다. 조원들이 서로 돕고 이끌어주며 최고의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며 정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동기들은 평소 가깝지 않거나 감정이 좋지 않은 동기가 잘 못하면 가르치기보다 다그치기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잘 못하는 친구들은 계속 지적을 받자 짜증이 나서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학과 함께 드디어 졸업한 줄 알았던 조별과제의 폐해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7년도 더 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동기들을 달랬다. “다 같이 잘해보자.”, “이미지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 시험 때는 훨씬 잘하게 될 거야.” 과연 잘하게 될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말이라도 희망차게 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숙달된 실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전략은 뒤쳐지는 인원은 몇 안되니 포기하고, 나머지가 전부 합격하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으니 다들 신이 났다. 조교인 척 근엄하게 지시를 내리고 누가 더 정확한 자세를 취하는지 시합도 해가며 자기 성과를 뽐냈다. 사격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훈련병들도 많아 보였다. 20발을 전부 맞춰 포상 휴가를 받겠다며 아직 쏴 본 적도 없는 총으로 자세를 잡았다. 군대에 가자는 제안은 단칼에 거절하더라도 총 쏘는 법 배울래? 총기 분해해볼래? 수류탄 던져볼래? 했으면 졸졸 따라왔을법한 친구들이었다. 험난한 전체 과정에도 즐길 거리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비스킷 통에 비유한 인생처럼 모든 과정에는 맛없는 비스킷이 있고, 맛있는 비스킷도 분명히 있다. 매일 시무룩하게 지내던 나도 오늘은 호기로운 훈련병들의 장난에 동참해 함께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황인숙 시인의 시가 있다.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문학과 지성사, 1998)에 실린 제목과 같은 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라는 시이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화자는 비 오는 날이 기쁘다. 비가 온다고 ‘너’에게 전하고 싶은 너무도 설렌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비가 되어 ‘너’에게 갈 테니 유리창을 열어두라고 여러 번 말한다. 이마에 부딪히고, 눈썹에 부딪히며 ‘너’에게 닿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제목의 바로 그 ‘침울한, 소중한 이’이다.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나는 이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걸어두기도 했었다. 침울한 이에게 비 오는 날은 얼마나 우울한 날이겠는가. 하늘이 어둡고 습한 날이 계속되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에서 말하듯, 내리는 빗방울이 창가에 튀기는 상상, 내가 비가 되어 ‘너’의 이마와 눈썹에 부딪히는 경쾌한 상상도 비 오는 날에는 있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너’를 떠올리며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화자도 비 오는 날에는 있다.
이 시의 말투는 산뜻하고 가볍다. 시에서 말하는 ‘기쁨’은 ‘그렇지만, 저렇지만’ 같은 말들로 반전을 주어야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침울한 날씨에 손님처럼 따라 들어온 기쁨이다. ‘하지만’의 문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시는 ‘하늘은 어둡지만 빗방울은 경쾌해.’가 아니라 ‘하늘은 어둡고 빗방울은 경쾌해.’로 읽을 때 더욱 와닿는다. 시는 침울함과 기쁨 두 대상을 나란히 두고 관조하며 둘은 당연스레 함께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는 말과도 닮은 점이 있다. 맛없는 비스킷 다음에 맛있는 비스킷이 반드시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맛없는 비스킷만 연달아 먹게 되는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비스킷 통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맛있는 비스킷이 분명히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불행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면, 시인의 말처럼 유리창만 열어두면 된다. 하강하는 빗방울을 눈으로 좇다가 빗방울이 창틀에 튀어 피부에 닿을 때 ‘앗 차거!’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온 감각으로 살아가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연습을 마치고 총기를 총기함에 넣으며 우리는 서로서로 잘하자고 다짐했다. 배우는 게 더딘 동기 역시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에 포기할지 전략을 설명하자 나름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면 미리 불행해진다. 그 전에 몸으로 움직이고, 받아들이면 될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침울한 훈련소에 즐거운 훈련병들이 각자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