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Feb 01. 2024

흰 암탉과 검은 병아리

또 병아리가 태어났다. 백봉 암탉은 야생성이 강해 포란을 열심히 한다고 듣긴 했는데, 파워뱅크도 꺼지는 겨울을 뚫고 병아리가 태어날 줄은 몰랐다. 백봉의 흰 배 아래서 머리를 내민 병아리는 검은색이었다. 턱 밑만 하얀 모습이 얼핏 아델리 펭귄 같았다. 둥지 위에선 병아리와 꼭 닮은 검정 청계가 병아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본래 암탉은 각자 둥지를 틀고 정해진 장소에서 알을 낳고 품었다. 검은 병아리를 품은 백봉은 제 둥지가 아닌 검은 청계 둥지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제 알이 아닌 청계알을 품었다. 어쩐지 둥지와 알을 뺏긴 청계가 백봉 몸을 밀쳐내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청계는 아직 알을 품을 마음이 없어서 백봉에게 알을 맡겼다. 알 입장에선 덕분에 태어날 기회를 얻었고, 청계는 제 유전자를 남겼고, 백봉은 원하던 대로 포란하고 부화에 성공했다.


두 달 전 흰 병아리 두 마리를 낳은 암탉도 제 알이 아닌 남의 알을 품었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장난스레 솟은 병아리 모두 제 어미와 달랐다. 모습은 똑같은 흰색인데 다른 백봉 어미와 쏙 닮았다. 예상으론 검은 병아리를 낳은 암탉네 새끼였다. 병아리와 어미가 어쩌다 마주쳤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생김새나 유전자보다 각인이 앞서는 듯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농담이 떠올랐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거짓인 걸 알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고, 엄마가 짓궂은 표정으로 얼굴을 닦아줬다. 엄마는 농담이라 했지만 이후 거리로 나설 때마다 부모님과 안 닮았다는 주변 평들이 농담이 아닌 진실일 수 있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때 불안했던가, 고민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혈육은 같은 농담에 "그럼 다리에 데려다줘봐요"라고 답했단다. 여러 방식으로 출산이 가능해진 현대에는 먹히지 않을 농담이었다. 어쨌든 지금이라면 각인된 어미를 따르는 게 내게는 잘 맞으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겼을 테다. 본래 가족이란 유연한 개념으로 얼굴도 모르던 타인이 가족이 되기도 하고, 얼굴은 같지만 타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혈육이란 무엇인가를 종종 생각한다. 주변에서 '결국 남는 건 혈육'이라지만, 그 말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하다. 오히려 혈육이 가족이라는 인식은 때로 덫이 된다. 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너무 복잡하게 고민한 건 아닐까, 암탉 검은 병아리를 보며 생각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기온에 병아리와 암탉을 집으로 데려왔다. 한 마리씩 부화하여 네 마리가 되었다. 암탉도 육아 방식이 다양해서 빨간 벼슬 백봉은 병아리보다 자신이 먼저 밥을 먹었다. 좀 거칠게 키우는 듯했지만 어쨌든 잘 자라고 있다. 오히려 백봉보다 날개가 큰 청계라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어미 등으로 날아올랐다. 터프한 어미와 잘 어울리는 튼튼한 병아리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뺙뺙 울기 시작한 병아리를 닭이 제 속에 품었다. 따뜻해지면 병아리가 울음을 그치고 잠들었다. 어미 벼슬을 물고 장난치다 부리를 쪼았다. 암탉과 병아리는 서로의 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짧은 머리로 생각하기에 흰 암탉 아래에는 검은 병아리가 있고, 저 검은 병아리가 언젠가 흰 알을 낳을 수도, 검은 청계가 백봉 알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품어본 적도 낳아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세상에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둑에는 매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