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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Oct 25. 2023

공간유목민 그녀 S

프러포즈하다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하겠다는 구체적 실행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새벽에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했다.

“공간을 알아보러 다닐 생각이야.”

몇 년째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이라 낯설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남편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어떻게 얻을 거냐? 대출을 알아보더라도 갚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남편의 말 뽐새는 매우 불만족스럽지만 짜증을 애써 참으며, 화를 포장지에 살짝 감싼 듯 최대한 절제하면서 내뱉었다.


확실히 그는 MBTI가 T형 일 것이다. 공간 집착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어 알겠는데!! 실행에 옮긴다고 하니 짐짓 투자를 해달라는 말로, 영업을 하겠다는 말로 해석을 한 듯하였고, 해결을 해줘야 한다는 해결사 모드로 전환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듯 보였다.


뜬금포처럼 얘기하는 와이프의 허무맹랑한 발언들은 그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나로서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고 실행가능한 일들이었다. 충분히 계산적이었고, 안정적으로 밀당을 거친 얘기였음에도 그에게는 나의 말들이 매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아니~ 내 말은 돈을 마련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같이 주말에 부동산을 다녀 달라고 부탁하는 말이야. 돈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

일단, 그는  바쁜 출근시간에  입씨름을 해봤자 답이 없을 것 같았는지 조용히 집을 빠져나갔다.



그의 동의까지는 끌어내지 못했지만, 통보는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간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공간을 찾기에 앞서 조항들을 대략 생각해 보았다.

첫째, 집과 (아이의) 학교와의 거리가 도보 10분 내에 있어야 할 것.

둘째, 500만 원~1000만 원 정도의 보증금 + 월세 35만 원을 넘지 않을 것.

셋째, 6인 정도가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책상과 의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

넷째, 에어컨, 가스, 냉장고 등과 같은 기본 옵션이 있어야 할 것. (전기전자 제품 구입 비용도 문제지만, 향후 내가 포기하고 공간을 내어 놓아야 할 때 대략 난감한 집기류가 될 수 있으니 미리 차단)

다섯째, 장소가 무엇보다 밝고 안전해야 할 것.


모든 충족이 될까 싶겠지만, 생각 없이 부동산에 갔다가 어이없이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내내 찝찝하게 계약 기간을 채워야 하니 미리 정리를 해 두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채워졌는데, 막상 몸이 생각처럼 잘 움직여지지 않고 부동산만 기웃기웃 거리고, 주말 남편을 기다렸다가 다니려니 좀이 쑤셔왔다.



생각이 복잡하게 엉켜있는데, 실마리가 없던 중에 S로부터 톡이 왔다.

[여행 잘 다녀왔어? 어땠는지 여행 썰 좀 듣자. 나는 카페에서 책 읽고 있어]

S는 카페에서 조지오웰 [1984]를 읽던 중에 톡을 보낸 것이었다. 그녀와는 한 달 한 권 고전 읽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냉큼 그녀가 있는 카페로 뛰어나갔다. 사실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곧 아이의 하원이 다가왔기에 망설일 만도 했으나 그날은 무작정 나가고 싶었다.


S와의 인연은 7년 전 딸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책 모임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모임이었다. 나와 같은 갈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는 일주일 한 번 맞는 영양제 같기도 하였다. 삶의 디테일을 공유하는 사이까지는 아니었으며, 애써 만나자고 인연의 끈을 부여잡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만나면 반갑고, 동갑이고, 유쾌한 사이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건강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좋은 책 모임 있으면 같이 읽자고 주고받던 사이였다.



S가 자주 드나드는 카페는 1층이며, 중년을 막 넘긴 부부의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함이 카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곳이었다.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정도를 걷는 듯한 숨결이 느껴지는 카페이기도 하고, S가 애정하는 카페였다. S는 카페 주인아저씨와 카운터에서 뭔가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오늘 그 카페 건물의 2층에 세입자가 이사를 들어오는 중이라, 남는 방이 혹시 있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세가 어떻게 되냐고도 물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얼마 전에 원룸도 투룸도 모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S는 크게 아쉬워했다.

“카페 주인분이 관리하는 건물이니 안 봐도 얼마나 관리가 잘 됐을까? 혹시나 하고 방이 있나 물었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S는 공간유목민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그녀가 독서실을 끊어 다녔다는 말이 생각났다.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그녀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한동안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음악 듣고 오는데 너무 좋았다는 말.




S에게 제안을 했다.

“나랑 원룸 하나 얻을래? 이제부터 구하러 다니려는데!!!! “


S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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