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퀘스트를 통과하라
공간유목민 S와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어를 시작했다. 요일을 정해 동, 서, 남, 북(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중심에 두고)으로 위치를 정해 부동산을 다녀 보기로 하였다. 중심축이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답게 빌라와 상가 지구가 나뉘어 있다. 학교 인근의 빌라들은 대부분이 1층은 상가이고, 2층은 원룸 혹은 투룸으로 브랜드의 학습지를 중심으로 교습소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천을 중심으로는 카페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그곳의 빌라들의 대부분은 1층은 카페이거나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2층부터는 대부분 주거를 목적으로 한 크고 작은 원룸과 투룸, 쓰리룸이 있었다.
수 없이 지다 다니던 길에 이런 건물과 요소들이 있었는지 낯설게 느껴졌다. 이미 자리 잡고 있었음에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풍경들이었다.
첫날, 부동산 방문은 지인 찬스로 소개받은 부동산에 방문했다. 10년 전 이 동네에 터를 잡고서는 부동산 방문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도 나 없이 진행되었다. 당시 임신 중이었고, 병원에서 임신중독으로 중환자실에서 고군분투할 때였다. 하여 남편과 시댁어른의 주도하에 지금의 집을 매매했었다. 신혼 때 전셋집을 구할 때를 제외하고는 부동산 계약은 처음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자발적, 주도적 부동산 방문이라는 게 사뭇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싶기도 했다.
마치 부동산 퀘스트를 통과하여야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비장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아는 분 소개라 속지 않을 것 같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믿을 만한 곳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S는 확실히 나와는 달리 부동산 거래를 해 본 경험치가 있어 노련하고 든든한 모습이었다. 적재적소에 맞게 질문하고 체크를 하였다.
두 중년의 아줌마가 원룸을 구하니 의아했을 터, 당연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음에도 당황스러웠다.
“뭐 하시려고 원룸을 구하시나요?”
웬만해선 주눅 드는 스타일이 아니며, 말발이라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던 내가 순한 어린양이 된 느낌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얼버부리 듯 말을 했다.
“뭐 그냥…… 책도 읽고, 독서모임도 하고, 글도 쓰고……“
부동산 소장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 수도 있겠네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독서모임을 하면 대여섯 명이 한 방에 모여 토론을 할 터이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당연 낯선 사람의 입출입이 될 터였다. 역시 첫 술에 배 부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싶었다.
부동산 소장님 왈, 원룸에서 흘러나오는 소음과 낯선 이의 방문은 되도록 주인 입장에서 싫어할 수 있다고 하였고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와 있는 원룸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자 어차피 보유한 원룸이 한 곳 밖에 없어 보여 주셨다. 3층 건물에 2층에 위치한 원룸은 제법 그럴싸한 주거형태를 띠고 있었다. 작은 방 하나와 주방이 분리되어 있었고, 하물며 베란다도 있었다. 아쉽게도 방은 너무 작아서 긴 책상이 들어갈 수 없을 듯 보였고, 베란다는 옆 건물과 마주하고 있어 조망권이 차단된 상태였다.
여러모로 임대인이나, 임차인이나 만족할 만한 곳이 못 되었다.
부동산 소장님은 이왕지사 시작하는 거, 1층에 가게로도 사용하면서 쓸 만한 장소를 한 군데 더 보여주셨다. 부동산이었던 아주 작은 상가였는데, 금액이 나쁘지 않다며 권했으나 영업이 목적이 아니고서야 우리에게 맞는 공간이 아니었다.
겨우 한 군데 부동산을 거쳤을 뿐이었는데 첫 부동산 퀘스트는 통과를 못한 기분이 들었다. S에게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음 부동산 퀘스트 통과를 위해 우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첫째,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야 한다. (원룸을 구하려는 목적을 임대인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둘째, 독서모임과 지인들의 방문이 낮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고지해야 한다. (교양 있는 모임이지만, 목소리가 새어 나갈 수 있음을 고지)
셋째, 원룸에 방과 부엌이 분리될 경우 긴 책상이 들어갈 수 없다.
넷째, 창문이나 베란다가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곳은 지양한다.
어쨌든 우리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찾기 위해 첫 발걸음을 뛴 하루였고, 제법 많은 정보와 다음 발걸음을 위한 아이템들이 비축된 하루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