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먹은 라면에 비례하지 않는 동상이몽
직업 특성상(소방관) 전날 당직 근무를 하고 온 남편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10시-10시 반경이다. 보통의 날은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한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등원을 하면 곧장 수영장으로 달려가 9시-10시까지 수영을 한다. 수영을 마치고, 씻고 집에 오면 그의 퇴근과 맞물린다. 배가 특별히 고프지 않다면 기다렸다가 나와 점심을 먹으려 한다. 그에게는 늦은 아침식사이면서 점심식사이고, 나에게는 좀 이른 점심식사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허기를 때우고, 식사시간을 애써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처럼 일정이 생기는 날이면 각자 움직일 때도 있다. 퇴근을 하면서 치과 예약이 있어 남편은 치과로, 선약이 있는 날이라 나는 작업실(집 근처 나의 아지트 / 여자의 방 301호실)로 향했다. 301호실의 방문자가 돌아가고 남편과 점심을 먹을까 하고 전화를 했더니, 집에서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밥 먹었어?”
”어딘데? 안 와!!!! 기다리다 잤잖아. “
“나올래? 내가 밥 사줄게.” (‘집에 들어가서 챙기는 것도 귀찮고, 딱히 뭘 먹을지 고민하기 싫었다.’)
“일단 집으로 와!!!”
“왜? 먹었어?”
“아니, 일단 와서 정하자!!”
……… ‘아~~ 성격도 진짜~~~~!!!!’ ………짜쯩이 밀려왔지만 ‘자다 깼으니까 나오기가 구찮것지’…….
집에 도착하니 속옷바람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뭐 먹을래?”
고민하는 척하더니,
“그냥 라면 끓여먹고 말자. 내가 끓일게.”
어차피 내가 끓일 생각이 없었다. 아침나절 수영 후, 301호실 방문자와 상담을 해주고 오는 길이었기에 밥상을 차릴 기력이 없었다.
남편은 요리를 아주~~잘하는 편이다. 어쩌면 웬만한 가정주부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본인도 요리부심이 강한 편이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나보다 훨~ 뛰어날 것이라 확신에 차 있다. 라면만큼은 내가 끓인 횟수보다 그가 끓인 횟수가 더 많다.
연애 9년과 결혼생활 13년 동안. 문득 그와 내가 함께 먹은 라면이 몇 개나 될까? 일주일에 작게 잡아 한 번이라 치면 일 년에 50번 정도이고, 22년을 꼬박 붙어 다녔으니 1100번 이상이라 예상된다.
함께 먹은 한 끼의 식사 중, 라면만 따졌을 때 1100번 이상일 텐데….
함께 먹은 횟수와 비례하지 않는 그와 나의 좁혀지지 않는 동상이몽…..
삼시 세 끼를 챙기는 일상을 살면서 내가 알아차린 것 중에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은 항상 거저가 없다. 맛이 없어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맛까지 보장된다면 그것은 축복과도 같은 것이라 여겨야 함을 잊지 않는다. 하물며 그의 라면은 맛까지 보장된 것이니 감사하고, 축복받음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밥상을 차려낼 기력을 외식으로 대처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내가 기력이 없다고 그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었다. 라면을 끓이고 먹는데 그는 계속 피곤하다는 말을 남발하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한 사람의 노고는 치하해야 하는 것이 밥을 얻어먹는 자의 도리인지라,
“잘 끓였네.” 후루룩 거리며, 맛있었지만 더 격하게 맛있는 척을 하였다.
“나가기도 귀찮고, 진짜 피곤하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잤는데도 그래?” 내가 들어왔을 즈음이라면 충분히 두어 시간은 잠을 잘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지라….. 물론, 전 날 당직의 피로도는 이해한단 말이지.
“니 기다리다 잠은 30분 정도밖에 못 잤어!!”
마음의 소리입니다. ‘아니, 내가 기다리라고 했냐고!! 그리고 전화를 하던가!!! 카톡을 남기던가!!!! 뭘 굳이 혼자 먹기 싫어서 기다려놓고…. 잠은 뭐, 나 때문에 못 잔 것처럼 얘기를 하냐고!!!!! 아~~~~~~~악~~~~~~~이건 완전 분리불안증인가? 내가 없으면 뭘… 안 해…. 왜 저래~~‘
“설거지는 네가 좀 해줘. 너무 피곤해서 못 하겠어. “
“내가 할게. “
마음의 소리입니다. ‘이 과정을 하기 싫어서 밖에서 먹자고!!! 굳이 내가 사줄 터이니 먹자고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넓은 아량으로 당신이 힘들다고 하니, 피곤하다고 노래를 부르니 내가 하고 말지.‘
밥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아침에 쏟은 기력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나른해지기도 했고, 그와 대화를 길게 하면 싸울 것 같기도 하고 하여 잠시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고 있었다. 집중해서 읽다 보니 그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는데, 이미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뭐야, 내가 한다니까.”
“냄새나는데 먹고 바로 치워야지.”
마음의 소리로 스킵하려던 인내심이 삐져나왔다.
“사람은 말이지. 설거지를 하든, 공부를 하든, 일을 처리할 때 속도도 다르지만 타이밍을 정하는 것도 다르단 말이야. 당신은 바로바로 치워야 직성이 풀리지만, 나는 기력을 회복시키고, 충전의 시간이 좀 걸려. 좀 기다려!!!!!” 다행히 기분이 상한 듯 쏟아내지 않았다. 아주 정돈된 어투였다.
“어차피 치워야 될 거, 바로 치우고 쉬는 게 낫지 않나?”
“그럴 때도 있지..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쉬다가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22년째 반복되는 일상이다. 집은 항상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이불은 2주에 한 번은 교체하여 뽀송한 상태여야 하고, 청결이 해결되어야 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식사 준비를 할 때도 사용한 도마, 냄비 및 집기류는 바로 세척을 하여 설거지를 해야 직성에 풀리고, 밥을 먹고 널브러져 있다가 설거지를 미루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산다는 것은 조율을 거치고 거쳐야 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부부 생활에서는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고!!!
딱 요정도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칠 줄 안다. 그는 더 나아가 나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면 ‘삐툴어질테야’라고 돌변하여 격하게 말이 오고 갈 것을 알기에 조용히 설거지를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