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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Aug 11. 2023

스킵되어 버린 일과 속 타이밍

쓰레기가 뭐라고!!!

부지런씨는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밤 9시 반경에 퇴근을 한다. 부러 버스를 타고 다니기 위해 더 부지런히 아침을 열고, 늦게 집에 귀가한다.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버스정류소를 오가는 도보의 길을 선택했다. 시간을 아끼는 것 대신 기름값도 아끼고, 버스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도 쏠쏠하다며, 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것의 만족도를 어필했다.


그래, 부지런씨 말씀을 들어보니 설득된다.

  


나는 부지런씨의 이른 출근이 안쓰러워 대부분의 날을 5시에 기상을 한다. 간단한 그의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애쓴다. 보통의 날은 밥을 차려주고 다시 눕기도 하지만, 쉽사리 몸을 일으킨 이른 아침은 다시 잠들기 힘들다. 부지런씨와 더불어 부지런한 아침을 맞이한다. 지금은 아이의 방학이라 하루 세끼와 간식준비, 마트 장보기,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픽드롭 매니저, 학습을 위한 학원을 다니지 않기에 집에서 간간히 공부를 봐주고 나면 부지런씨가 집에 퇴근을 해서 온다.


부지런씨가 퇴근해서 올 즈음, 우리 집 풍경은 두 모녀가 씻고 나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주함에 있다. 아직 들 끝낸 집안일, 아직 들 봐준 아이의 공부, 읽다 만 책이 식탁에 놓여 있다.

전지적 시점으로 집에 들어서며 그는 매일 비슷한 패턴의 말을 한다.

이제 막 씻으려고 하면 “아직 안 씻고 뭐 했노?”

다 씻고, 잘 준비가 된 상태이면 ”쓰레기는 버리지 뭐 했노?“

씻고, 쓰레기도 다 버린 상태이면 “뭐 먹을 거 없나? 맥주나 한 잔 할까?”


대부분의 삶이 루틴처럼 흐른다. 그 또한 소중한 일상임을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경험했지 않나? 오늘도 건강하게 잘 다녀온 부지런씨의 일상 존중해 줘야지요. 암요~~~

특별히 어제는 그의 생일이었다.

딸아이와 최대한 그가 오기 전 미리 씻고, 집안 일도 거의 마무리해 놓았고, 단지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을 버리지 못했었다. 좀 걸리긴 했으나 그가 주문해 놓은 옷이 있었다. 혹시 모를 반품이 생길까 쓰레기를 그가 오면 확인 후 버릴 생각이었다.

부지런씨가 씻는 동안 쓰레기를 버리고 온 후,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려  했었다.


아뿔싸,

그는 현관 입구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보는 순간, 의중은 묻기도 전에, 오늘 처음 보는 딸아이의 인사는 보이지도 않은 채, 아내의 인사는 무시한 채,

“쓰레기도 안 버리고 뭐 했냐?”

 


쓰레기를 버리고서야 편안해지는 부지런씨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앞뒤 정황을 알지 못하는 그에게는 쓰레기만 보이는 것이다. 이미 단정 짓어버린 그의 말속에는 수많은 괄호가 있다.

그의 말속에 나는 이미 빈정이 상해 버렸다. 정황을 설명하기 조차 화가 먼저였다.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지금 바로 버리고 오겠다고 하는 사이, 부지런씨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쓰레기가 뭐라고’

‘뭐 했냐니? 저녁나절 뭐 했겠냐? 매일 똑같지.. 밥 해먹이고, 치우고, 정리하고, 그걸 일일이 다 나열이라도 매일 해 주랴.‘


말하기 싫었다. 챙김을 해 주려던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마음이 없으면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사람의 반김보다 쓰레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지런씨가 한없이 밉살스럽고, 고쳐지지가 않는 그의 무례함이다.


9년의 연애와 12년의 결혼생활로 우리는 딱히 설명하지 않고서라도 서로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안다. 더 부지런히 그가 싫어하는 것을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보지 못하고, 싫어하는 걸 알면서 하지 않은 사람만 보이는 것이다.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시간을 살아온 하루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이 보지 못한 시공간에 있다가 저녁 한-두 시간 함께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서로는 알길 없는 스킵되어 버린 일과 속을 다 알아내기는 힘들겠지만, 겨우 얼굴을 마주한 첫마디가 서로의 인사가 되지 못하는 일상을 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하루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던 계획,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던 마음. 그 마음은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고, 싸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소리 없는 싸움을 선택했다. (괄호 속에만 존재하는 수많은 말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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