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아군, 가장 가까운 적군
별에게 나의 운명을 묻고, 땅과 하늘에 운명을 묻는 공부에 심취한 나머지 모든 인간관계과 이해가 되는 듯한 착각 속에 살았나 보다. 가장 가까운 아군이자, 가장 가까운 적군인 남편이 유리알처럼 보여서 너무 포용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꾸안꾸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화려한 패션보다는 심플한 멋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외출할 때 화장은 하지 않지만, 액세서리 착용은 빼먹지 않는 편이다. 그중에 특히 시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고가의 명품을 고집하는 편은 아니지만, 귀금속에 쓰는 돈 보다 손목시계에 돈을 소비하는 쪽이었다. 물론 지금은 워치로 대체되어 시계도 서랍 속에 갇혀있다
손목시계가 죄다 멈췄다. 약을 바꿔 끼워야 하는데 동네에 시계방이 없어 내내 시계를 가방에 들고 다녔다. 한 동안 시계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가방을 바꿔 들다 보니 시계도 이 가방, 저 가방 옮기길 몇 번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들고 다닌 사실도 잊어버렸다.
한참 지난 어느 날, 나름 내게는 고가의 시계 3개가 모두 사라졌다. 집에 존재하는 모든 가방을 뒤졌다. 시계가 없었다. 나의 기억을 아무리 끄집어내려고 해도 시계의 행방이 약을 바꿔 끼우기 위해 가방을 바꿔가며 들고 다닌 기억만 생생했다. 긴 연애기간의 비례만큼 남편은 나의 손목시계를 사던 순간부터 공유된 추억이 있다. 하물며 그의 사랑스러운 이벤트를 담아 산 시계도 있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물건을 함부로 하거나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잘 잃어버리니까 잘 포기하는 법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터득하며 살았다. 어차피 애달파봐야 돌아올 물건은 어떻게든 돌아왔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잘 잃어버리는 나를 미치게 고치려 든다. “넌 습관이야. 네 가방 안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해.”라며 참지 못하고 마음의 소리를 내지를 때가 있다. 그의 기준에서는 쓰레기통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딸아이의 손목시계가 멈춰있어 시계를 차고 다니지 못하자, 그는 나의 손목시계를 소환했다. 시계 약 넣는다고 했지 않았냐? 몇 달 전 찾더니 찾았냐고?
헉,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최대한 저_자세로 그에게 말했다.
모든 가방을 뒤졌고, 모든 주머니 속을 뒤졌고, 귀중품을 보관하는 상자라는 상자는 다 뒤졌다.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다. 속상하지만 어쩌겠냐? 매일 속상해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냐?라고 했지만, 그는 못 미더운 얼굴과 인상을 구겨가며 나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다~~ 찾아봤다고!!!!
그는 욱-하는 것을 참는 듯 나에게 화가 나는 감정을 에둘러 추억으로 포장했다. “그 시계는 내가 선물한 거잖아. 그걸 잃어버린 거잖아!!!”
헉~~!! 저_자세로 있었던 나의 감정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가 더 속상해!!! 나도 속상하다고!!! 근데 어째, 찾을 수 있음 찾았지. 이 사람아!!! “
별자리로 그는 게자리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명리학적으로 일주에 유금이 일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잘잘못을 꼭 따져야 되는 성미의 사람이다. 그를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나의 기질적 마음이 좁은 관계로 이성은 통제를 잃어 결국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소위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그와 나는 절제라는 카드를 쓰려고 애쓴다. 그는 추억의 포장으로 선을 넘어보려 하였고, 나는 그의 감정적 기복을 알기에 더 받아주었다가는 죄인으로 전락해 버릴 것을 알기에 전사적 기질로 그에게 맞섰다.
그와 나는 조용히 휴전의 문을 닫고 각 자의 이부자리로 직행했다. 손목시계에 관한 그와 나의 간극은 아직 끝을 맺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시계를 찾아볼 사람이고, 나는 이미 시계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