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9년의 장기연애 커플답게 웬만하면 남녀가 싸울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통과했다고 여겼다. 고속도로 위에서 내려 달라고 고성을 내질러 차를 세운 적도 있고, 화에 못 이겨 물건을 던진 적도 있고, 길거리에서 누가 봐도 싸우는 커플로 보인 적도 있고, 폭력이 오갈 뻔한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오지게 싸우며 정을 쌓아 온 커플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싸웠는지는 지금도 생생한 것들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결혼하면 안 싸우고 살 줄 알았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서 세계가 다시 재정비되었던 것처럼, 결혼은 곧 세계 2차 대전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마주는 것과 같다. 국가대 국가, 대륙과 대륙의 싸움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듯, 남자와 여자의 싸움에서 집안과 집안으로, 나아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모르는 영역의 개입으로 싸움의 양상도 스케일도 달라진다.
연애할 때는 싸우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전시 상황에서도 휴전과 시간을 가질 여유가 마련된다. 결혼을 하니 각자 돌아갈 집이 같은 장소이다 보니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은 휴전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연애 때보다 싸움의 원인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한쪽이 싸움을 너무 싫어해서 져주거나 회피한다면 고요 속에 썩어가겠지만)
살아온 환경, 취향, 지향하는 삶의 모습, 시간의 개념, 식사 패턴, 잠자리 루틴, 자녀 계획, 일과 가정의 균형, 가족의 범주, 가족의 간섭도, 돈의 관점, 생활 습관, 구속과 자유의 한계, 섭섭함의 해소, 서로가 바라는 점의 괴리…… 언제 끝날지 모를 다름이 불쑥불쑥 매일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 또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싸울 거리들이 차고 넘친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여자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예민하다. 이미 몸이 불편한 상황인 데다, 남편과의 대등한 아이템으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맨몸으로 싸우는 느낌이 든다. 자존감이라는 큰 무기를 잃은 상태이고, 경제적으로도 일시적 단절과 소실을 마주하다 보니 이미 기울어진 싸움을 하게 된다.
남편도 나도 처음 아이라는 존재를 통해, 새로운 국면의 싸움이 오고 가던 때가 있었다. 물론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나 어떻게 싸웠는지는 기억이 난다. ^^;;
남편의 주먹이 벽을 치고, 남편의 입에서 처음으로 “그래, 헤어지자. 더는 너랑 못 살겠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9년의 연애와 결혼 2년을 넘긴 시점에서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나의 선택은 “그래, 꼭 헤어지자.”라고 했었다.
남편은 출근을 했고, 나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었다. [반드시 헤어지자]라는 내용을 담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문자를 꽤 오랫동안 보관하리라 마음먹고, 지우지 않았다. 예전에 쓰던 휴대폰(아이폰4)이 아직 있으니 활성화하면 그 문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다음 날, 그가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나를 설득했다. 그 어느 때보다 완강히 그를 내몰았었다. 반드시 [헤어질 결심]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양육문제와 재산분할까지 염두에 두고 나는 현실적으로 헤어지는 과정을 그에게 전달했다. 꽤나 진지한 현실적 이혼절차를 그에게 알렸고, 합의만 하면 된다고 다그쳤다. 결국, 그의 백기로 끝난 ‘그의 이혼위기’였고, 우리 부부의 이혼이 현실이 될 뻔한 사건으로 남았다.
그때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헤어지자”라고 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사는 여자와 사는 남편은 이미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어떻게 부부싸움을 해야 할지? 꽤 진지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잘 살아내는 것 못지않게 잘 싸우는 법을 질문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