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면 벌어지는 일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작년 한 해 동안 '꿀을 빨며' 회사를 다녔다. 신입이라 그런지 원래 대기업은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도 별로 없고 코로나 덕분에 회식도 없고... '9 to 6'만 채우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해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부터 모든 것이 360도 달라졌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때문에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파트너사가 미국 회사인데 코로나로 출장을 가지 못해 미국 시간에 맞춰서 일하게 된 것이다. 파트너사와의 회의는 오전 7시 혹은 오후 8시에 시작했다. 자율출퇴근제와 유연근무제가 도입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오전 7시 회의가 있는 날은 집에 빨리 가도 된다고 생각했고 오후 8시 회의가 있는 날은 출근을 오후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나와도 오후 6시까지는 일을 해야 했고 밤회의가 있어도 오전 10시에는 나와야했다. 이렇게 내 워라밸은 처참히 무너졌고 그런 상태가 4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너무 피곤한 생활이겠다'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회의 일정이 미리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필요하면 회의를 하는 식이라 새벽 출근과 야근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개인적인 약속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개인적인 스터디나 모임에서 날짜를 정할 때도 나 때문에 날짜 잡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졌고 결국 '나 빼고 정해'를 시전하다 보니 많은 모임들에 가지 못하고 있다.
1번과 같은 맥락이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어려우면 개인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어렵다. 특히 많은 시설들이 밤 10시면 닫기 때문에 운동하기가 참 어렵다. 저녁 8시에 시작한 회의는 으레 10시가 넘어야 끝이 나기 때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집에 돌아와서 가볍게 와인 한 잔을 하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 혹은 인스타를 하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처음 한 달에나 했지 그 이후로는...
하루에 12시간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신체적으로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뇌를 절대 아무데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만 한 시간 가까이 내리다가 잠에 드는 일상이 반복된다. 헬스장 가기가 어려우면 집에서 홈트라도 해야 하는데 침대에서 몸을 끄집어 내기가 너무 어렵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어쩌다가 밤 회의가 취소 되어 갑자기 자유시간이 생기더라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한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잠에 드는데 이것만큼 억울하고 분한 것도 없다.
이 정도 강도의 업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감이 오질 않는데 만약 이런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될 예정이라면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여전히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잡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아이쇼핑을 하는 대신 내가 좀더 사랑하는 활동들을 해야겠다. 다음 달부터는 헬스장도 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30분이라도 운동을 하는 것으로 생활에 변화를 줘 봐야겠다.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항상 구비해 두어서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읽고 잘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가만히 향을 피우고 눈을 감고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