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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Mar 15. 2024

OOO 전우,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소

전역 기념패 새겨진 아주 특별한 기억의 그를 생각하며

춘분도 며칠 안 남았고 봄은 성큼 다가섰다. 이맘때가 되면 농부들이 농사준비를 하듯 나도 봄맞이 채비를 해본다. 겨우내 입었던 두툼한 옷들을 집어넣고 봄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 서랍  여기저기 열어 본다. 그런데 뭔가가 보인다.


"이게  뭐지, 아 그거구나?"


군 전역 시 내무반(생활관) 전우들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전역 기념품이다. 그래서  내 재산목록 1호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다 차츰 잊고 살았는데 서랍에서 오랜만에 만나보니 감회가 또 남다르다. 그런데 이 기념품 명패에 새겨진 전우들의 이름이 하나하나에 새삼 눈길이 간다.


병장, OOO 

상병, OOO



이름 하나하나에 가물가물 해갔던 그들의 얼굴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이중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문 이름이 있다.


일병, OOO


이전우는 내가 제대를 6~7개월 정도 남겨 둔 상태에서 들어온  신병으로 부대적응을 쉽게 하지 못했다. 폐기도 부족했다. 눈치도 없었다. 전우들과 융합도 못했다. 영화 < 용서받지 못할 자> 허지훈 같은 딱 그런 캐릭터 었다.


그래서 선임병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그였다. 그러다 보니 이신병은 자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어느 날은 이신병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혹시 탈영? 그야말로 부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부대 막사 뒷산에서 그를 발견했다. 발칵 뒤집힌 부대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평온히 자고 있었다. 참 어이없고 기가 막힐 일이었다. 하지만 탈영을 하지 않고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그 큰 위안이었다.


그렇게 신병 실종 사건은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침표를 쉽게 찍지 않는 게 군대 특성이다. 신병을 챙기지 못한 대가로 부대원 전원이 완전군장에 연병장을 수십 바퀴를 돌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아무 죄도 없이 연병장을 돌아야 하는 부대원들의 원성은 신병에게도 돌아가는 등 신병 또한 큰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병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등 최악의 경우 의가사 전역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골치 아픈 존재였다. 


하지만 부대원들의 역발상 의기투합이 그 신병의 의가사 제대를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잘못을 하면 무조건 나무라기부터 했던 기존의 방식을 애정 어린 조언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가 부대원들 곁에 다가오기 전에 먼저 따뜻하게 다가갔다.


이렇게 군대식 채찍대신 진심 어린 당근을 제시하자 그 신병의 모습도 눈에 띄게 변화되었다. 늘 움츠려만 있었던 행동도 활발해졌다. 항상 수심에 차 있었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누가 말을 걸지 않는 한 절대 말이 없던 그도 먼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차츰차츰 변화를 보인 그는 성격까지 쾌활해 결국 부대적응을 완벽하게 했다. 그런 그가 내 전역을 하루 앞둔 날 저녁 파티에서 벌떡 일어나 부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충성!


먼저 신병장님의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아울러 "여기에 계신 모든 선임병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 같아 너무너무 감사하드린다"며 우렁찬 목소리로 거수경례를 한다. 그랬던 그에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어떤 전우보다 특별한 기억의 일병, OOO 전우님!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소,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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