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가을의 끝자락에 먹는 김치찌개 애찬론
또, 김치찌개야~
어느 날 저녁 밥상에 김치찌개가 올려지자 식구 누군가가 하는 말이다.'요리하기 쉬우니 편하자고 밥상에 내놓는 거 아니냐'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푸념이다.
사실 김치찌개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김치에 돼지고기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만만한 요리일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탁에도 김치찌개가 올라갈 확률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럴 것이 김치찌개는 특별한 요리비법이 그렇게 필요치 않다. 김치(가급적 묵은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거기에 기호에 맞게 비계가 적당히 섞여 있는 돼지고기나 혹은 살코기만을 듬성듬성 썰어 다진 마늘, 대파 그리고 알싸한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끓여도 고기 자체에서 우러난 담백함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김치찌개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요즘 가정주부들은 김치찌개를 되레 밥상에 내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때 우리 식구 누구처럼 '또, 김치찌개야~'라는 볼맨소리 들을 바에 차라리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부는 밥상에 올린 음식이 식구들에게 환영을 받을 때 기분이 좋고 보람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음식을 밥상에 올릴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찌개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왜 밥상의 김치찌개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길까,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전국 13세 이상 1천777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1위가 김치찌개라고 했다는데 말이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에게 최애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김치찌개는 집밥에서 설 자리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뿐만 아니라 분식집이나 소규모 식당에서 사이드메뉴로 취급을 할 뿐 김치찌개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마저도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 퓨전 음식이 차고 넘치는데 김치찌개를 외식으로 먹기엔 좀 민망해서일까, 아니면 음식이 서민적이어서.. 이것도 아니면 아무 때나 누구나 먹고 싶을 때 해 먹을 수 있는 너무 보편적인 음식이어서는 아닐까,
'그래도 오늘은 왠지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다'
오늘 점심시간, 기온은 15도까지 올랐다. 예년보가 꽤 높은 기온이다. 그럼에도 왠지 몸이 으스스하다. 많은 양의 비는 아니지만 아침부터 몇 방울씩 떨어지는 날씨, 여기에 가끔씩 '횡~'하고 부는 바람결 따라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의 쓸쓸함 때문일까,
어쩌면 기온과 내리는 비가 이가을의 끝자락이라는 계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저절로 움츠리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내려간 기분을 올려 줄 수 있는 음식은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딱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왠지 김치찌개가 그토록 먹고 싶었다.
그렇게 직원들과 찾아간 어느 식당, 넓고 큼직 막 한 냄비 위에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어오른다. 흘러내리려는 군침을 다시며 너도 한 숟갈, 나도 한 숟갈, 새하얀 쌀밥과 함께 입안 가득 채워 넣는다. 담백한 고기와 새콤한 묵은 김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은 개성 강한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렇게 훈훈해진 오늘 점심의 김치찌개는 움츠려든 마음을 활짝 펴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의 점심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