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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Aug 03. 2021

알고리즘이 꼬여버렸다

[독서산문]건강 불균형 바로잡기 _ 닐 바너드 지음 / 최가영 옮김

# 도대체,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도 잘 챙겼고, 청소도 빨래도 열심히 했다. 오후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은 주말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말을 꺼낸다. “당신, 나한테 뭐 할 얘기 없어?” 남자들의 평생 난제라는 그 질문이었다. 차분한 말투,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덤덤함.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는 영화 대사고, 나는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생일인가? 기념일인가? 뭘 두고 왔나? 비상금이 들켰나?(아, 맞다. 나는 비상금이 없지.) 뭐지? 대체 뭐지? 마치 에어팟 프로에서 느껴지는 노이즈 캔슬링처럼, 순간 세상은 고요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단 되물어본다. “응? 할 얘기? 뭐?” 그렇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아내가 다시 묻는다. “정말 할 얘기 없어?” 눈이 마주쳤다. 덤덤한 척하려 했지만, 눈빛이 흔들린 것만 같다. 무표정이다. 저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침착하자. 당황하면 끝이다. 이젠 더 이상 질문도,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 알고리즘이 꼬여버렸다.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도대체,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일단은 아내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먼저다. 화가 난 이유를 직접 물어봐도 좋지만, 대답을 듣기 어려울 수도 있다. 화난 이유가 복합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화가 났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이라는 알고리즘 

인간은 유기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유발 하라리’가 한 말이다. 그는 생물학이 발전할수록, 감정은 인간이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생화학적 알고리즘일 뿐이며,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인간은 그저 유기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며, 감각과 감정이라는 것도 사실은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자칫 인간의 존엄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의외로 흔하게 목격된다. 그 예가 바로 월경전증후군(PMS)이다. 건강한 여성은 주기적으로 배란과 월경의 알고리즘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는 사이 식욕이 폭발하기도 하고,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알고리즘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에스트로겐이라 불리는 ‘호르몬’이 자리하고 있다. 

호르몬은 우리 몸의 거대세력이 아니다. 극소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호르몬은 감각과 감정, 그리고 성욕이나 식욕 같은 각종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나 잠재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우리 몸을 암과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리게 만들 수도 있으며, 반대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유발 하라리’가 우리 몸을 호르몬에 의한 ‘알고리즘 덩어리’라 칭했던 것도 수긍이 된다.


이처럼 중요한 호르몬은 일정한 비율로 생성 소멸한다. 때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통해 추가되기도 하고, 이미 만들어진 호르몬이 체지방을 통해 그 힘을 강화하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몸이 이러한 호르몬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간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간은 독소와도 같은 잉여 호르몬을 걸러주며, 이를 통해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 호르몬의, 호르몬에 의한, 호르몬을 위한 알고리즘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효율을 중시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 심지어 초 단위로 작업을 분석하며 최적의 공정을 찾아 나서기까지 했다. 더 이상 이전처럼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 작업자들은 고된 노동에 필요한 충분한 열량을 빠른 시간 안에 먹어치워야 했다. 고열량의 빠른 음식, 치즈가 듬뿍 들어간 햄버거와 콜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조합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열량은 충분한데, 여기에 자본주의의 괴물까지 합세했다. 기업은 각종 첨가제를 개발했다. 더 오래 보관해서 더 많이 팔기 위해, 더 식욕을 자극해서 더 많이 먹게 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먹어치웠다. 그 결과 덩치는 커졌지만, 건강은 약해졌다. 그저 뚱뚱해졌을 뿐이다. 특히, 우유와 같은 유제품, 그리고 치즈는 젖소의 에스트로겐 농축 캡슐을 들이켜는 것과 같다. 다 자란 인간들에게 젖소의 호르몬은 필요하지 않다. 우유는 오히려 각종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뿐이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뚱뚱해진 이유를, 그리고 이렇게 건강이 나빠진 원인을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뚱뚱해진 우리 몸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마치 아내가 화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될 리 없다는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체지방은 호르몬의 좋은 먹이가 되며, 체지방을 먹이 삼아 증식한 호르몬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말썽을 부린다. 이쯤 되면 간도 지친다도움의 손길이 간절하다.


이때, 섬유소가 등장한다. 섬유소는 잉여 호르몬 곁에 찰싹 붙어서 장으로 끌고 가 기어이 그것들을 몸 밖으로 보내버린다. 잉여 호르몬이 배출되면서 체내 호르몬은 균형을 잡아간다. 섬유소 덕분에 우리 몸은 호르몬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소중한 섬유소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느냐? 그 원천은 바로 채소와 과일 같은 식물이다. 



# 더 큰 알고리즘 

그렇다고 이제부터 세상 사람 모두가 ‘채식’만을 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육식이 해롭기만 한 것인지, 채식이 이롭기만 한 것인지, 사실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당장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무해한 것은 아니다. 불과 100년 전 감기약에는 알코올, 모르핀, 심지어 클로로포름 같은 물질도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클로로포름은 현재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지정되어 노출기준이 설정된 물질이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약을 시럽으로 만들어, 감기에 걸린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이들은 그 약을 먹고 환각을 경험하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부모들은 그저 아이들이 잘 잔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영양실조로 죽는 아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망원인을 약물중독 때문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걸 마시면 분명 기침은 멈출 것이다. 그보다 먼저 심장이 멈추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채식을 권하고 싶다. 이번 책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에 소개된 채식의 이유와 함께 우리가 채식을 고민해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환경’이라는 더 큰 알고리즘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호르몬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알고리즘이듯,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지구라는 환경은 인간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태초에 인간은 없었다. 오히려 인간이 정착하는 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생물들이 지구 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날 지구 상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오른 인간은 그들이 필요에 의해 ‘지구 환경’을 재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돈이 되는 생물들이다. 인간이 먹기 위한 동식물들, 일을 시킬 가축들, 귀여워하는 반려동물들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젖소에서 언제라도 우유가 생산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젖소도 사람처럼 임신과 출산을 해야만 젖이 나온다. 그리고 역시나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유는 어린 송아지의 몫이다. 오직 인간만이 다 자란 뒤에도 수많은 가축의 젖을 먹는다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젖소의 삶은 끔찍하다. 그리고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나게 되는 송아지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말 끔찍한 것은 우리가 그들의 젖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이 당연시되어 만약에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게 되고, 급기야 젖소가 필요 없어졌을 때, 그들을 지구 상에서 지워버릴 것만 같은 바로 인간들이다. 



# 인간은 정녕 쓸모없는 존재인가 

지구 온난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상이변은 가벼운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이라는 알고리즘에 손을 댄 것은 우리 인간이다. 그렇다고 자멸하는 논리는 아니다. 인간도 생명인데,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사라진 지구가 최선일지 모르겠지만, 차선책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멸하느니, 차라리 바로잡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환경이라는 알고리즘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책할 시간에 조금씩이라도 손을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부터라도 실수를 덜 하려 노력한다면, 조금은 괜찮은, 아니, 덜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조금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 있지 않을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제대로 먹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똑똑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어쩌면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는 '환경 불균형 바로잡기'일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남은 이야기 

부부싸움의 끝은 언제나 그렇듯 남편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마무리된다. 아내는 언제나 옳다. 결코, 잘못하는 법이 없다. 적어도 부부싸움에서 만큼은 그렇다. 마치, 지구가 인간에게 결코 잘못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아내를 탓했는가? 지구를 원망했는가? 그 알고리즘을 찬찬히 뜯어보라. 그들은 언제나 옳다. 정말이다.  


※ 위 글은 책의 내용을 옮겨적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 붙였습니다.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
닐 바너드 저/최가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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