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노트>
공허하다. 오늘도 쉽지 않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좁디좁은 원룸에도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온종일 열심히 일 했다. 고된 날이었다. 퇴근 무렵에는 입에서 단내가 났다. 어느새 자정이 되어간다. 씻고 잠을 청했다. 그래야 또 내일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깊은 한숨 때문에 좁고 낡은 침대가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더라..? 하루를 돌아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어제는? 지난주에는? 어휴, 지난달에 내가 정말 존재하긴 했었나? 텅 빈 마음처럼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 외롭고 쓸쓸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잔잔한 물결 위에 돌이라도 던져진 듯 일렁인다. 마음도 물결처럼 어지럽다. 그렇게 뒤척이는 밤이 늘어만 갔다.
이번 책 <거인의 노트>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읽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떠다니는 질문들, 그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외톨이 같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인간은 모두 머릿속에 작은 우주를 가지고 있다. - <거인의 노트(김익한 저)> 중에서 -
그렇다. 내 머릿속에도 작은 우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 역시 실제 우주처럼 대부분은 텅 빈 공간인 것만 같다. 때때로 가느다란 별빛이 보이는 것 같지만, 이내 사라져 버린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찌나 빨리 사라지는지 막상 적으려 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생각’이라서 그럴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생각은 흐리멍덩한 경우’가 많으니까.
생각이란 명료한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은 흐리멍덩할 때가 정말 만다. 상반되는 생각이 머릿속에 동시에 있기도 하다. - <거인의 노트(김익한 저)> 중에서 -
작가는 이 책 <거인의 노트>를 통해 기록의 필요성과 중요성, 방법과 효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기록을 통해 우리 인간은 성장과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집중을 통해 생각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부와 대화, 생각과 일상, 그리고 일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당장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기록의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작가는 고민, 욕망, 독서, 공부 등 어떠한 상황을 마주했다면,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기록하라고 얘기한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 말고, 이를 다시 들춰보고 또다시 생각하며 기록하는 행위를 반복하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러한 기록의 과정에서 핵심은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 빠진 기록, 요약하지 않은 옮겨 적기는 진정한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이 책 <거인의 노트>를 통해 ‘기록’이 인간이라는 우주를 풍요롭게 채워주고 더 넓게 확장시켜 주는 훌륭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러했다. 요즘 힘들고 지친 내게, 그리고 외롭고 공허했던 내 마음에 꼭 필요한 책이었다. 이번 책은 추운 겨울 읽기 시작했다. 봄꽃도 다 떨어져 버린 지금 나는 이미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보통은 한두 번 읽으면 서평을 써내는데, 이번 책은 너무 오래 걸렸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지만,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우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텅 빈 우주 같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지난 몇 달간 나는 많이 좋아졌다. 어느새 찬바람이 찾아들고, 날이 포근해지듯 내 마음에도 작은 희망이 싹트는 것 같았다. 이 책 덕분이고, ‘기록’ 덕분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 정리했다. 키워드 위주로 다시 읽고 생각하며 내 방식대로 기록했다. 그러는 동안 글감이 될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것 역시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행위 덕분에 이 글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지난겨울 차갑고 텅 빈 원룸처럼 황량했던 일상들, 무질서한 행위들, 흐리멍덩한 생각들은 어쩌면 ‘생각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 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일상에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기록을 통해, 일의 목적과 순서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의 감정을 들여다보려 기록한다. 일이던, 대화던 대상에 집중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조금 더 살펴보고 있다. 나는 오늘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나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 더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노력 중이다. 나는 기록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보듬어 주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기록을 통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면 비로소 자유로울 것 같다. 자유는 불필요한 ‘할 일 목록’을 지우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수선한 생각이 아니라, 잘 정리된 기록이야말로 나를 진정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기록의 효과도, 내 꿈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대답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책에서 알려준 '만능노트'가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기록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그 데이터가 부족해서 추세선을 그리기에는 오차가 클 것 같지만, 조금 더 반복하고 지속한다면,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를 조금 더 해볼 생각이다. ‘생각하기’를 조금 더 시도해보려 한다. 어쩌면, 지금의 텅 빈 삶은 ‘나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 내 안의 우주가 좀 더 빛날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은 기록을 해보려 한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우주를 기록으로 조금 더 채워보려 한다.
잘 살고 있는 걸까? 응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그저 ‘확인’이라도 받고 싶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자신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기록을 돌아보면 된다. 기록은 치열했던 나를 고스란히 기억해 준다.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위로한다. 외롭고 괴로웠던 나를 보듬어 안아준다. 오직 기록만이 삶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고, 불안함에 확신을 주며, 외롭고 쓸쓸한 삶에 위로와 응원을 해줄 수 있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의 기록이 훗날 나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친 내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 전에 기록이 나를 붙잡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록은 단순하다. 매일의 나를 남기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고 겪고 느끼고 만나고 행하는 모든 것을 메모하면 그 메모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요히 여기는지가 드러난다. 그것을 정리해서 남기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 <거인의 노트(김익한 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