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일상 기록'
2024년 새해 첫 책으로 김익한 작가의 <파서블>을 읽었다. 그냥 눈으로만 본 게 아니라, 온몸으로 읽으려 애를 썼다. 밑줄을 긋고, 책 여기저기에 메모를 했다. 어떤 내용은 옮겨 적기도 하고, 따로 내 생각을 적어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달라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일상 기록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동안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써보기도 했고, 벌써 수년째 일기를 쓰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의 메모와 기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을 통해 좀 더 성장해 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처럼 일상의 기록을 통해 '가슴 뛰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그동안 다이어리와 플래너는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찾은 것 같다. 기록의 양이 너무 적었던 탓이다. 다이어리 적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로 작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 역시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쓰는 게 귀찮아서 쓰기를 포기하는 건데, 기록의 양이 적어서라니.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기록을 지속하려면 기록 자체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루에 한두 페이지를 적는 것으로는 습관 형성이 어렵다는 논리였다. 작가는 이에 덧붙여서 하루에 적어도 4페이지는 적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일상을 기록할 수 있고, 그래야, 그 기록이 나를 꿈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가 어째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책은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한다. 왜 기록하는가? 저장하려고? 나중에 보려고? 작가는 딱 잘라 말한다. 기록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또한 기록은 '생각하는 행위'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그냥 기록만 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들춰보는 것 역시 무언가를 생각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유'로서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기록을 강조한다. 목적 없이 그저 시간 순서로 나열된 기록이 아니라, 그 속에 생각이 존재하고, 꿈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록이 생각하는 행위가 되어 습관적으로 반복될 때 비로소 기록은 삶 속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베껴 쓰는 것, 일상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한 번 더 생각한 뒤 자기화한 기록을 남기는 편이 낫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을 그냥 소유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한 번 더 정제하는 게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내 안에 존재하게 된다. 독서 감상문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독서감상문은 책을 전부 옮겨 적는 게 아니다. 당연히 책의 모든 내용을 담지 않아도 된다. 어느 한 구절, 어느 한 내용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덜컥' 나를 멈춰 세웠다면,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시작하면 된다. 책을 통해 얻은 질문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독서감상문이 되는 셈이다. 운 좋게 결론을 얻었다면, 그건 축하할 일이다.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답을 얻지 못해도 좋다. 언제나 성장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하니까. 그러니, 필사가 아닌 생각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
기록은 생각하는 행위이다. 그냥 적지 말자. 마냥 베껴 쓰지는 말자.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보태고, 내 삶으로 가져와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라야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쓰인 한 줄 한 줄은 한낱 '소유'한 죽은 기록이 아니라, 펄떡펄떡 살아 숨 쉬며 내 삶에 '존재'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록해야 기록이 생각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작가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의 변화를 예민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상 기록'을 해보라고 권한다. 일상이라니. 일상은 늘 같아서 일상이 아니던가?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러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저 반복되는 지루함이 일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작가는 일상에서 작더라도 변화와 성장을 예민하게 찾아내는 사람이 결국 꿈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반복되는 일상 속 변화와 성장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그 시작은 '일상 기록'에 있다.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오늘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를 돌이켜보며, 내가 느끼고 생각한 감각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충격적 감정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감각들은 쉽게 휘발된다. 이별, 죽음, 사랑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굳이 적지 않아도 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감각은 ‘일상 기록’이 아니라면 사실상 다시 기억해 내기 어렵다. 기록이 없다면, 오늘 하루 대체 뭘 했는지, 이번 주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올 한 해 인상적인 일은 무엇이었는지 사실상 기억해 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모든 것을 촬영하듯 기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상을 시간대별 키워드로 적어 두면 도움은 된다. 이 또한 소중한 자료가 되어, 업무 일지나 일기처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상 기록에서 유의할 것은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을 적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대별 단순 사실보다는 당시의 감각을 적어보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자면, 늘 가지고 다니며 언제라도 적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작가는 디지털 다이어리보다는 종이와 펜을 추천한다. 아날로그는 온전히 기록에 집중할 수 있으며, 오감을 통해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종이에 만년필로 기록하게 되면, 기록하는 순간 만년필이 종이와 닿은 감촉뿐 아니라 사각사각 글자가 새겨지는 소리까지 함께 저장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딱딱한 자판을 툭툭 쳐낸 글보다 조금은 온기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일상 기록은 나를 보듬어 준다. 일상을 기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늘 외부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언급했듯 지금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했다. 그들은 허구를 믿는 상상력 덕분에 살아남았다. 신을 상상하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을 신이라 칭한 왕을 섬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강력한 왕권 덕분에 거대한 조직과 관계 속에서 지금껏 진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안정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모두가 내 편일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위로와 응원은커녕 비난과 원망에서 벗어나고자 '자발적 외톨이'를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발적 외톨이'가 진정으로 고독을 바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도망쳐 도착한 곳 역시 또 다른 관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익숙함이 아닌 낯선 이의 친절을 기대하는 것만 다르다. 그들은 SNS와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곳에서 또 다른 인정과 존경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만 선별적으로 자랑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왜곡된 자신으로 살던 이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존경과 인정, 응원과 사랑을 바랐기 때문이다.
작가는 <파서블>에서 '일상 기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 기록을 통해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외부로 눈을 돌리는 대신 내부에서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일상 기록을 통해 매일 아침 잘 잤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어봐 주고, 하루를 마쳤을 때는 고된 하루를 잘 살아내 준 자신을 칭찬해 주면 된다. 이를 통해 외부에 의해 휘둘리는 삶이 아닌, 자신이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삶이라면, 고난과 역경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내는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할 것이며, 성장과 변화를 즐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진정 <파서블>한 삶일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좀 더 체계적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이 적고, 좀 더 많이 남기고 싶었다. 그리하여 먼 훗날 그 기록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구나.’ 하고 자랑하며, 위로받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내 생각은 틀렸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내 삶을 더 많이 ‘소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일상 기록을 통해 나는 좀 더 풍성하게 ‘존재’하고 싶어졌다. 내 꿈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빛이 나기를, 아무리 힘들어도 여전히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어쩌면 이처럼 꿈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싶다. 나 역시 일상의 기록으로 당당히 세상 속에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한 줄 기록이 쓰일 때마다 한 칸 더 채워질 내 삶을 내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