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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y 01. 2019

껀떠 Cần Thơ. 메콩 델타의 보석 1

새벽수상시장 & 야시장

껀떠요? 거기 아무 것도 없는데.

껀떠에 간다는 말에 하노이의 어느 한국인 회사에서 만난 베트남 직원이 놀랍다는 듯 얘기하더군요.

행사가 있어서 매년 가는데 볼 거 없어요.

아. 그래요? 그게.. 캄보디아에 가는 길에 있기도 하고, 나름 큰 수상시장도 있다고 해서요. 그래도 큰 도신데.. 사람 사는 거라도 보면 되지요, 뭐. 하하.


껀떠(Cần Thơ)는 호치민 서남쪽으로 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소위 '메콩 델타'의 중심도시입니다. 베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고 알려져 있지만 호치민, 하노이 같은 대도시와도 다르고 하이퐁 같은 항구도시도 아니고 공장이 많이 생긴 신산업도시도 아닙니다. 오히려 베트남의 과거를 상징하는, '농업'을 대표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커다란 강에 합류하는 지류들이 많아 농산물을 실은 배들이 강을 오르내리고 농학이 중심인 큰 대학이 있는 도시입니다. 작지 않은 도시지만 높은 빌딩은 얼마 전에 생긴 빈타워(Vin Tower) 정도밖에 없고 요즘 잘 나가는 베트남 도시들엔 어디나 있는 고층 오피스타워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나지막한 오래된 길과 집들, 그 사이로 베트남 특유의 골목 헴(hẻm)이 얽혀 있는 도시. 아침엔 강 위에 배들이 모여 만드는 커다란 시장에서 농산물들을 사고 팔고 밤엔 도심과 호숫가, 강변의 야시장들이 화려한, 어쩌면 이런 게 베트남다운 게 아니었나 싶은 도시입니다.



굳이 이 곳에서 밤을 지내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새벽의 수상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입니다. 해는 커녕 달이 하늘 복판에 있는 네 시 언저리에 숙소를 출발해서 작은 배를 타고 몇 군데의 수상시장과 쌀국수를 만드는 작은 공장을 둘러보고 수로를 따라 있는 과일농장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리는 투어를 하지요. 시장 자체가 이른 새벽에 열리기 때문인데 강을 가득 메우던 배들은 해가 뜨고 시간이 지나면 다들 사라집니다. 낮이 되면 도심의 시장들이 활기를 띠고 도시의 한쪽을 차지한 대학가에는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강의실도 학교 앞 골목 당구장과 피시방도 대학생 특유의 활기찬 움직임이 가득합니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지요. 해가 지면 야시장들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남쪽 지역 특유의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슬슬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강변의 야시장과 시내의 노점들에 이제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아주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시내의 카페들에 마지막까지 모여 있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다음날 새벽 시장이 다시 가까워집니다. 관광지가 아닌 베트남 지방도시의 얼굴을 제대로 만난 듯한 기분. 껀떠의 제 인상은 그랬습니다.



시내의 선착장에서 출발한 배가 이십 분여 강을 따라 올라가면 큰 수상시장인 까이랑 시장(Chợ nổi Cái Răng)을 만납니다. 이미 어둠 속에 수많은 배들이 모여 다양한 농산물을 주고받고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배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새벽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수나 커피, 과일이나 간식을 팔러 다니는 배지요. 그 모습을 보러 나온 여행자들의 배 역시 그 사이를 오가며 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그 전에도 여러 나라의 수상시장을 본 적이 있지만 이런 거대한 강 위의 대형 도매시장은 또 그 나름대로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더군요. 날이 밝아오자 오히려 새벽시장은 끝물인 듯 보였고 배는 이제 작은 지류를 타고 올라가 남부 베트남의 쌀국수인 후띠어우(Hủ tiếu)를 만드는 작은 공장에 멈춥니다. 후띠어우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거지요. 후띠어우는 쌀가루 반죽을 두툼하게 익혀 만든 둥근 라이스페이퍼를 말린 반짱(Bánh tráng)을 잘라서 면으로 만듭니다. 하노이의 포(Phở)와는 다르게 조금 더 쫄깃한 씹는 맛이 있지요. 원래 캄보디아의 국수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국물을 부어 먹기도 하는데 야채와 소스를 넣어 비벼먹는 후띠어우 코 스타일로도 많이 먹습니다. 호치민의 유명한 쌀국수 '후띠어우 남방 (Hủ tiếu Nam Vang)의 '남방'은 프놈펜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아침식사를 마친 배는 다시 강을 한참 거슬러 오릅니다. 작은 수로 앞에 작은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 시장 격인 곳에 배를 대고 이번엔 사람들 가까이에서 과자나 과일들을 사고팔고 합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배들이 늦게까지 남아있는 거지요. 그들을 뒤로하고 작은 수로를 한참 거슬러 올라 배는 온갖 과일들을 모아놓은 작은 농원 같은 곳에 내립니다. 숙소의 직원이기도 한 가이드 청년은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고 각종 열대과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나 조금 지치기 시작한 여행자들은 이제 농원 한쪽의 식당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기까지 거의 한 시간. 작은 배는 동네들 사이의 수로를 한참 이리저리 돌아 다시 커다란 강줄기로 나옵니다. 여섯 시간에 걸친 투어가 끝납니다. 저를 뺀 나머지 여섯 여행자들이 다 유럽에서 온 커플들이라 가이드 청년은 대부분 배에선 저와 얘기하게 되었지요. 껀떠 근처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대학을 나온 성실하고 친절한 베트남 친구, 배려심도 많고 유쾌한 껀떠 청년은.. 언젠가는 큰 도시에 나가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밝게 웃으며 말합니다. 흠. 뭐라 말해줄 처지가 아니어서 잘될 거라는 얘기밖에 해줄 게 없더군요.


베트남 남서부 누룽지  Cơm Cháy Kho Quẹt
껀떠 야시장 Chợ Đêm Cần Thơ



선착장 앞 닌끼어우 야시장 Chợ Đêm Ninh Kiều


껀떠의 강변에 있는 야시장(Chợ Đêm Cần Thơ)은 실제로는 시장이라기보다는 먹자골목이라는 게 맞을 듯합니다. 대부분 근처 바다에서 온 해산물과 지역 특산 음식들. 평일이라 그랬던지 시간이 좀 늦어서 그랬던 건지 시장의 규모에 비해서는 한산해 보였지만 베트남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 뭐 어때. 호객도 없고 오히려 느긋해 보이는 게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여행자도 함께 느긋해집니다. 이미 배가 부른 후라 누룽지(Cơm Cháy Kho Quẹt) 정도를 맛보는 걸로 그칩니다. 누룽지와 함께 매운 양념소스를 함께 주는데 후꾸옥의 그린페퍼를 듬뿍 넣어 맵고 단 맛이 가득한 재미있는 음식이지요. 나름 넓은 팬에 밥을 발라 누룽지를 구워야 하고 작은 냄비에 양념도 새로 만드는 수고를 하는데 가격은 25000동. 천삼백 원 정돕니다. 반면에 도심의 선착장 앞 야시장(Chợ Đêm Ninh Kiều)은 의류와 생필품, 야식거리 전반을 파는 커다란 시장입니다. 식당들도 많고 가게들도 많은 데다 거주지에 도심을 끼고 있어서 현지인들과 여행자들 모두 붐비는 곳입니다. 주요 호텔들도 주변에 있어 늦게까지 사람들이 많지요. 껀떠에도 크진 않지만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있지만 여전히 이런 도심의 시장 골목들에 사람이 많습니다. 제겐 그게 참 좋더군요.


오래전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제가 느꼈던 그 '반가움'이 실은 그동안 거의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십 수년 전 만났던 하노이와 호치민, 호이안과 다낭, 후에와 달랏과 무이네는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뭐.. 그와 똑같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 곳, 껀떠라는 이름의 지방도시에서 어쩌면 그때 그 반가움이 조금 다시 생겼습니다. 뭐랄까요. 저처럼 이기적인 여행자들이 늘 바라는, 살고 있는 곳에서는 더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다른 나라에 혹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지방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느긋함이 묻어있지만 오래되어 자리 잡은 안정감 같은 것이라면 맞을까요. 여유가 있었다면.. 그래서 껀떠 외에도 근처의 작은 도시들 -롱쑤언(Long Xuyên)이나 쩌우독(Châu Đốc) 같은 -을 한두 군데 더 들러 봤으면 좋았겠다 생각도 들더군요. 아, 껀떠 시내 한쪽에 프랑스 영화 '연인'을 촬영한 오래된 저택이 있다고 했는데 맛집 찾아다니다 문 닫는 시간이 넘어 못 가본 것도 좀 아쉽긴 합니다만.


다음에 하노이의 그 베트남 직원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얘기해 줄까 싶습니다. 껀떠에는 제가 오래 전 처음 만났던  베트남이 있더라구요. 여전히 차분하고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저한테 얘기하더라구요.

어이, 친구. 오랜만이야. 얼굴이 왜 그래. 그 동안.. 힘들었나 보구나. 그래도, 정말 잘 왔어, 껀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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