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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y 10. 2019

그 해 가을은 따뜻했네

모터바이크를 배에 싣고, 일본에 가기로 했다.

2013년 이른 봄, 2종 소형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 전부터도 스쿠터를 타고 다닌 건 오래되었고 한국의 이상한 면허 시스템(자동차 면허가 있으면 125cc 미만 이륜차를 탈 수 있다는) 덕분에 스쿠터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진짜’ 모터바이크를 타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지요. 굳이 딱 한 순간을 들자면 2007년 봄, 거짓말 같이 밝고 맑은 날씨의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도로에서 파란색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던 빨간 두카티를 봤을 때부터일 겁니다. 언젠가는 나도 모터바이크 이 길을 달리겠어. 버킷리스트가 생긴 거라고 해도 되겠지요.


면허를 따고 얼마 있다가 혼다의 PS250을 중고로 구했습니다. 가끔 눈에 보이지만 흔한 차종은 아니지요.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지도 않았고 일본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팔리지 않고 단종되었으니. 아마.. 그 언저리부터 조금씩 시작되었을 겁니다. 일단, 이 녀석을 데리고 일본에 한 번 가는 거야. 이미 모터바이크로 세계를 일주한 사람들의 황홀한 여행기는 여러 번 탐독했지만 당장의 저한테는 조금 먼 얘기 같았지요. 2007년식인 제 PS250에게 고향 구경이나 한 번 시켜주는 걸로 일단은 목표를 정했습니다. 한국은 일종의 섬나라인 관계로 모터바이크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아주 제한적이기도 합니다. 배에 싣고 나가야 하는데 중국은 면허나 자동차 반입 자체가 어렵고 결국 일본이나 러시아로 가는 배 정도가 있는 거지요. 해서 세계일주를 하는 한국 라이더들은 우선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싣고 가서 거기서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유럽으로 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지요. 아, 물론 화물로 특정지역으로 모터바이크를 실어 보내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2년 전, 계속 마음에 담아 두었던 모터바이크 여행을 지르기로 했습니다. 10월로 날짜를 정한 건 날씨 때문이었습니다. 가을. 비도 거의 오지 않을 테고 주로 시골마을들을 달릴 텐데 하늘이 푸르고 낙엽이 붉은 길을 달리면 좋겠다 싶었지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 기대는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한 달 일정 중에 거의 절반 이상 비가 쏟아졌고 태풍도 두 번이나 지나갔지요. 낙엽.. 은 나무에 있을 땐 아름다운데 비에 젖어 산길 바닥에 쌓여 있으면 모터바이크에겐 위험 그 자체더군요. 아. 지금 생각해도 무섭네요. 어쨌든..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던 두 달 정도는 정말 설렜습니다. 날짜를 정한 다음부터 조금씩 자료를 찾아 모으고, 일정을 이리저리 짜고 실제 서류 준비부터 부족한 장비들을 인터넷으로 하나씩 사면서 매일매일 행복했지요. 여행은 늘 준비할 때의 두근거림이 절반이니까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카페리 노선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오사카로 가는 세 노선과 동해와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境港)를 잇는 노선. 서울에서 이동하기에는 동해가 가깝긴 하지만 의외로 운임이 훨씬 비싼 데다 동일노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제한조건 때문에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釜關)페리를 타기로 했습니다. 이번 제 일본 여행의 테마는 ‘시골길’과 ‘전국시대’, ‘메이지유신’이었으니 시모노세키가 그 노선을 따라가기엔 조금 더 나은 출발지가 될 테니까요. 거기다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었던 몇몇 도시를 넣어 동선을 촘촘하게 짰습니다. 시모노세키에서 북쪽으로는 가나자와 위의 노토(能登)반도 끝까지, 동쪽으로는 도쿄까지 가서 남서쪽으로 돌아 나와 와카야마(和歌山)현 남쪽, 시코쿠에서는 남쪽 끝 도사(土佐)까지 갔다가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는 한 달 간의 일정. 혼슈의 남쪽 절반 정도와 시코쿠의 절반 정도를 아우르는 루트입니다. 지금 다시 짜라면.. 어휴. 절반으로 줄였겠지요. 거의 한 달 내내 평균 300km 이상, 매일 너댓 시간을 라이딩을 하는 피곤한 일정입니다. 실제 날씨와 이런저런 이유로 루트가 좀 바뀌긴 했지만 일본에서 달린 전체 거리는 6천 킬로미터를 넘었으니까요. 도쿄와 오사카에서 한 3일씩 정도 머무른 걸 빼면 거의 매일 이동을 하고 거의 매일 다른 도시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날씨 좋은 가을날 시골길을 느긋하게 달리는 건 매일 해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요. 하.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 하면 지칠 텐데 실제론 비를 뚫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통 긴장하고 달려야 했으니. 뭐, 지나고 나면 다 재밌는 경험이긴 합니다만.^^


1년 반이 지난 여행의 이야기이고 여행 중에 일기처럼 페이스북에 기록과 사진들을 올려놓긴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설렘과 고난의 여정을 다시 돌아보며 여행자이자 라이더로서의 저를 정리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실은 이 여행 이후로 작은 트라우마 비슷한 게 생겨 모터바이크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 제게 다시 라이더 재킷과 장갑을 꺼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있구요.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 집 대문을 잠그고 바이크 뒤에 짐을 묶던 출발의 그 순간과 부산항에서 모터바이크를 배에 싣던 순간부터 한 달간 남의 나라 길 위에서 겪었던 별의별 일들이 패스트 포워드 영상으로 지나갑니다. 그립네요,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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