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모터바이크를 타는 게 처음은 아닙니다.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스쿠터나 소형 모터바이크를 렌트해서 시골길을 많이 달렸지요. 터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 위르굽까지 그 '우주적인' 풍광속에서도 라이딩을 한 적이 있었구요. 유럽에서는 자동차를 빌려 운전한 경험도 여러 번이고 좌측통행인 나라들에서도 운전을 해보고 일본에서도 자전거로 도로 주행은 여러 번 해본 터라.. 사실 운전 자체를 많이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면 하는 거지 뭐. 자, 출발~. 드디어 모터바이크 시동을 걸고 세관 건물을 빠져 나와 좌측차선으로 진입하고 첫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저는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서 버렸습니다. 한가한 시간대라 마주오는 차가 없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르르 왼쪽으로 가긴 했지만 섬뜩했지요. 뭐.. 좌측통행은 곧 다시 익숙해졌습니다. 몇 주 지나서 카마쿠라의 에노시마에서는 뻔뻔스럽게 중앙선을 넘어 우측통행을 하고 마주오는, 서양청년이 운전하던 자동차에 대고 클락션을 울려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좌우 구분도 못하고 말이야. 쯧.
요즘은 외국에서 차를 빌려 다니는 분들이 워낙 많고 일본에 아예 거주하는 분들도 많아서 사실 제가 뭐 설명하거나 할 내용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자세한 자료가 넘치기도 하구요. 다만, '모터바이크'를 일본에서, 그것도 작고 작은 길들을 많이 넘어다니면서 든 기분에 대해 먼저 좀 말을 꺼내 놓고 갈까 합니다. 이게 정작 가서 모터바이크를 가지고 '운전'을 해보니 또 다른 점이 생각보다 많더란 말이지요.
나고야에서 교토로 가는 현도(縣道) 제방길
노토반도로 올라가는 노토 사토야마카이도(里山海道)
와카야마 현 유아사(湯浅) 해변도로
아시는 대로, 일본은 한국과 반대로 좌측통행입니다. 그냥 오른쪽 말고 왼쪽으로 주행하는 건 신경만 쓰면 어렵지 않더군요. 조금 큰 길들은 중앙분리대 같은 게 있고 다른 차들의 방향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처음에 헛갈리는 건 교차로. 이게 직진일 땐 잘 가다가도 우회전을 할 때 다른 차들에 신경쓰다 잠깐 방심하면 유유히 오른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가 없을 때 오히려 실수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것도 몇 번 지나면 익숙해 집니다.
오히려 적응이 쉽지 않은 건 교차로에서의 신호체계지요. 우리나라도 비보호 좌회전 구간이 많지만 일본은 우회전 신호(화살표)가 있는 구간이 더 적습니다. 큰 도시 시내나 국도나 현도(지방도)의 통행이 많은 교차로엔 화살표 신호가 있지만 오래된 길, 작은 도시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알아서' 회전을 해야 하는 거지요. 우회전 차선으로 진입해서 대기하다가 파란 신호가 되면 맞은 편에서 오는 직진이나 좌회전차에 방해되지 않게 '잘' 우회전해야 합니다. 차선이 많은 교차로인 경우는 그래서 우회전 대기 차선이 조금 길게 뻗어 나와있는 경우가 많지요. 이게.. 초보시절 깜빡이를 켜도 언제 옆차선으로 끼어들지 감이 안생기는 것처럼 언제 가야 되는지 첨에는 잘 모르겠더군요. 이것 역시.. 다른 일본 차들이 하는 걸 보고 배워서 하다보면 아, 이렇게 하는 것도 장점이 있구나 싶습니다. 어지간한 일본 운전자들은 교차로에서 양보하는 분위기도 있구요.
화살표가 아닌 그냥 파란불 신호일 때 좌,우회전을 하면 보행자 횡단보도 역시 파란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역시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회전해도 됩니다. 오히려 안하고 있으면 뒷차에 민폐가 되지요. 대신 화살표 신호가 있는 교차로에서는 녹색이 켜진 화살표 방향으로만 회전이 됩니다.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응'하려는 자세와 조금의 눈치. 그게 필요하지요.
일본 교차로의 우회전 대기 차선
모터바이크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과 '개념'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한국은 모터바이크를 정말 '모터'가 달린 '바이크', 그러니까 차가 아니라 자전거로 보는 느낌이라면 일본은 바퀴가 둘 달린 '차(二輪車)'로 봅니다. 우선 주차. 한국은 어지간한 크기의 모터바이크는 대충 인도 한쪽이나 차도 갓길에 주차하는 게 보통이지요. 물론 교통법규상으론 안됩니다만. 교통경찰이 있어도 별로 신경을 안씁니다. 일본은 자전거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시골마을 아니면 인도나 차도주차는 아예 불가합니다. 무조건 주차장에 세워야 됩니다. 공공주차장이 많기도 하고 역이나 터미널, 대형건물에는 모터바이크 주차장이 따로 있습니다. 문제는 처음 가는 곳에서 전용 주차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요. 모터바이크 주차장을 안내하는 앱이 있는데 이게 영어지원이 안되는 바람에.. 제가 주로 쓴 방법은 편의점입니다. 일본 편의점은 대부분 꽤 넓은 무료주차장을 가지고 있어서 밤을 새거나 하지 않으면 편의점 주차장 가장 구석쪽에 제 바이크를 주차해 놓고 커피나 맥주를 대신 사는 걸로 주차비를 대신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전용도로. 한국은 250cc 이상 모터바이크가 '자동차전용도로'에 진입할 수 없는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자동차'로 보지 않는 거지요. 일본은 도로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25cc 이상이면 대부분의 자동차전용도로에 진입이 가능합니다. 몇몇 큰 고속도로는 250cc인 경우도 있다더군요. 저는 유료도로, 고속도로는 이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시골길, 작은 길 위주로 다니겠다고) 구글맵에 그 옵션을 넣고 경로탐색을 하긴 했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 무료 자동차전용도로나 유료터널 등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가게에서는 신용카드를 안받는 경우가 자주 있는 일본이지만 오히려 유료도로를 이용할 때는 카드사용이 쉽습니다. 직원이 안내도 친절하게 하더군요. 일본 고속도로는 워낙 비싸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카드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매일 긴 거리를 주행하다 보니 신경쓰이는 게 주유더군요. 거의 매일 주유를 해야 했으니까요. 일본은 작은 지방도에도 주유소는 참 촘촘하게 많아서 구글맵에서 주유소 검색을 하면 어지간하면 멀지 않은 곳에서 주유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셀프도 있긴 하지만 직원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 적응하고 나니 주문하는 것 역시 쉽더군요. 세 단어면 됩니다. 레규라. 카도. 만땅. 직원이 오면 일단, 기름의 종류. 고급이냐 일반이냐 디젤이냐를 선택하는 거지요. 레규라(regular). 그 다음엔 지불방식. 현금이냐 카드냐. 카도(card). 그리고 얼마나 넣을거냐. 가득(満タン). '만땅'이라는 단어가 일본어란 생각은 안했었는데.. 이게 '가득 채운 기름땅크(탱크)'의 줄인말이라는군요. 어쨌든, 활짝 웃으면서 레규라. 카도. 만땅. 그러고 나서 카드를 주면 됩니다. 실제로 일본이 한국보다 기름이 조금 더 싸서 부담도 적었구요. 아, 혹시 셀프주유를 하시게 되면, 우리나라처럼 유종별로 주유기 색이 다른데 레귤러는 빨간색입니다. 우리나라 일반유의 컬러인 노란색은 일본에선 '고급유'. 비싼 기름입니다.
모터바이크 운전자에게 일본은 장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독일, 미국, 이탈리아와 함께 대표적인 모터바이크 제조국이기도 하고 자전거를 포함한 라이더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주행 뿐 아니라 국도나 지방도의 정비수준이나 각종 휴게소를 포함한 편의시설 역시 좋습니다. 오래된 길이 많아 깊은 산 속에 있는 현도(縣道)들은 길 자체가 좁고 낡은 길이 많기는 합니다만. 국도에도 미치노에키(道の駅)라고 불리는 휴게소가 심심할 만 하면 나오는데 이게 우리나라 휴게소와는 조금 다르게 그 지자체와 연계해서 만들어지는 터라 여행자 입장에서는 들러볼 만한 구석이 있거든요. 일본 전역의 국도변에 천 개가 넘는 미치노에키가 있는데 기업이 운영하는게 아니라 지자체가 만들고 지역의 농민회 혹은 상인회 같은 곳이 운영하는 느낌입니다. 실제 농민들이 이름을 걸고 지역특산 농산물들과 지역음식과 기념품들을 주로 파는데 슈퍼마켓 분위기라기보다 '파머스마켓' 느낌이 나지요. 그 지역의 맥주(地ビール)와 사케도 팔고 있으니 저로서는 방앗간인 셈이지요. 전국의 미치노에키를 소개한 책자도 많고 랭킹도 있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도장깨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군요. 미치노에키 표지판이 보이면 잠깐 들러서 지역맥주 한두병을 사서 넣고 지역 특산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가는 게 한 달 내내 여행자로서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이시카와 현 스즈 시 노로시마치(狼煙町)의 에키노미치
이시카와 현 다카마쓰 사토카이(里海) 에키노미치
기후현 시라카와고(白川郷) 에키노미치
고치 현 시만토 후세가사카(布施ヶ坂) 에키노미치
시내의 도로가 아닌 외곽도로나 차들이 많은 지방도로 교차로의 신호대기선 맨 앞에도 모터바이크를 위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정지선 다음에 자동차 한 대 길이 정도의 모터바이크 대기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거지요. 바닥에 커다랗게 '二輪'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뒤에 '四輪'. 신호대기 중일 때 뒤편에 있는 모터바이크들은 갓길 쪽으로 전진해서 이 공간, 그러니까 자동차들 앞쪽으로 모이게 됩니다. 신호가 바뀌면 먼저 나가는 거지요. 이게 모터바이크에겐 아주 유용해서 차가 막히는 시간이나 혼잡한 국도같은 곳에서는 정말 효과적입니다. 야, 이정도면 세금 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대만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저는 맥주를 마시는 게 중요한 여행목적 중 하나여서 주로 숙소를 술집 근처에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에는 모터바이크나 자전거 여행객을 위한 전용숙소들이 거의 모든 도시에 있습니다. 침구를 가지고 다니는 라이더의 경우 주차를 하고 잠을 잘 공간을 반쯤 자율식으로 사용하는 숙소들이지요. 시설과 시스템에 따라 다르긴 한데 대개 1000엔에서 3000엔 사이입니다. 시내보다는 외곽 지역에 많지요. 이런 정보를 포함해서 '모터바이크 라이더' 만을 대상으로 한 전문지도책이 있습니다. 'Touring Mapple'이 대표적인데 지도에 라이더들이 관심을 가질 정보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습니다. '길'에 대한 정보가 제일 많은데 어떤 길이 어떤 상태고 라이딩하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 경치가 좋은 길, 숲길, 러프한 임도 등을 자세하게 소개해 놓았지요. 휴게소는 기본이고 길 주위의 음식점, 특산물 정보에 책 뒤에는 온갖 필요한 정보들과 다양한 숙소정보까지 모아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최신판을 구할 수 없어서 제 루트에 맞는 책을 인편으로 일본에서 공수하기까지 했는데.. 조금의 영어도 병기되어 있지 않아서 결국 실제 라이딩때 보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어를 대충이라도 했으면 이 책 하나만으로도 일본에서 모터바이크 라이딩은 별 문제 없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어디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가노현의 어느 깊은 산길의 미치노에키에 들어갔습니다. 나가노가 고지대다 보니 추워져서 옷을 좀 꺼내 입느라 주차를 해놓고 한참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삐쩍 마른 아저씨 한명이 스물스물 다가오더니 제 바이크를 보고 뭐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앞의 KOR 스티커와 영어번호판을 확인한 담엔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액션을 써가면서 말을 합니다. 대충.. 듣자니 PS250 2007년형을 보게 되다니! 이거 일본에 잘 없는 건데! 이걸 가지고 한국에서 왔다고! 스고이이이~ 뭐 그런 내용입니다. 괜히 기분이 조금 업. 카마쿠라에서 나고야 방향으로 가는 거대한 국도에서 바닷바람과 대형트럭들 사이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다 들어온 휴게소에서 어느 일본 부부의 어마어마한 모터바이크 옆에 주차하다 그 부부와 잠깐 '라이더'끼리의 대화도 있었지요. 아주 아름다운 덕담들이 오가긴 했지만.. 월드 클라스급인 그들의 번쩍이는 바이크들 옆에 초라하게 서있는 제 바이크한테 괜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주인 잘못 만나서. 도쿄에서 오랜만에 만났던 일본인 친구 미츠히로 역시 모터바이크 라이더 입장에서 제 바이크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바이크가) 늙어서 고생이 많다. 일본에서도 레어바이크인데..' 라고 하더군요. 10년된 바이크로 이런 험한 여행이라니 뭐 그런 의미였겠지요. 흠. 뭐.. 어쩌면 그게 이 여행의 숨은 목적이기도 했으니까요. 제 모터바이크 고향방문. 하하.
나고야, 마츠야마 숙소에 주차된 바이크.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촬영지. 다카마츠 시 아지(庵治)
일본의 간장 발상지 와카야마 현 유아사(湯浅)
와카야마 - 도쿠시마 페리
마츠야마 - 고쿠라(키타큐슈) 페리
카마쿠라 - 나고야 국도 휴게소에서 만난 일본인 라이더 부부의 바이크
일본의 대형 바이크 관련 제품 전문 체인 리코랜드 도쿄베이점(ライコランド TOKYOBAY東雲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