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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r 14. 2019

포르투갈의 남쪽, 바다를 만나다

알가르브. 우리가 모르던 포르투갈

우리나라의 가수들이 갑자기 포르투갈 도시의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한다. 그 낯선 모습도 노래도 좋지만 그들이 노래하던 도시들 역시 관심을 얻었다. 방송에 여러 차례 나오더니 어느덧 포르투갈에 다녀왔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사실 남유럽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물가도 비싸지 않은 이 보석 같은 나라가 이제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게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다정 넘치는 사람들은 작은 체구에 동그란 얼굴, 짙은 머리색이 많아 처음 봐도 괜히 친근한 기분이 든다. 남쪽 나라들의 활기와 포르투갈 특유의 진지함이 묘하게 섞여있는 포르투기즈들은 한 번 친구가 되면 쉽게 손을 놓을 것 같지 않은,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포르투갈이 매력적인 여행지인 숨은 이유다.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이 리스본과 포르투, 그 사이의 몇몇 도시를 바쁘게 돌아본다. 큰 나라는 아니지만 포르투갈은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이다. 북쪽과 동쪽은 스페인으로 막혀 있고, 서쪽과 남쪽은 바다로 이어진다.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남미와 아프리카에 걸치는 제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호령했던 데는 그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세상의 끝',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너머로 나아간 시작이 있었다. 알가르브. 포르투갈의 남쪽, 바다의 지방에서 그들의 꿈이 시작되고 자라났다. 해양왕 엔리케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한 곳도, 비운의 어린 왕 세바스티앙이 그 바다 건너 모로코 정벌에 나섰다 돌아오지 못한 곳도 이 곳, 알가르브였다.



포르투갈의 남쪽 해안지역을 모두 포함하는 알가르브는 가장 늦게 포르투갈이 된 지역이다.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무어인들이 이 곳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다 물러났다. 알가르브라는 이름 역시 아랍어로 서쪽, 안달루시아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남쪽 바다는 유난히 절벽과 해안동굴이 많은 모래 해변이다. 남쪽 해안 전 지역에 백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투명한 바다색과 하얀 모래사장으로 여름이면 모든 해안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요트와 범선들이 파도를 넘고 해변마다 태양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가득하다. 라구스, 파루, 타비라, 알부페이라.. 바다의 도시들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해산물을 즐기고 맥주잔을 기울이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어시장마다 여름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생선인 사르디냐(정어리)를 비롯해서 문어, 아귀, 고등어 같은 인기 있는 해물 재료들이 아침이 지나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다양한 조개류들과 연어, 참치 같은 생선들도 인기다.



알가르브 해안의 매혹적인 풍광에서 잠깐 눈을 돌려 보면 조금 이상한 모습도 보게 된다. 해변에,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일, 영국을 비롯한 중북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다. 거의 모든 상점에는 영어와 독일어가 함께 쓰여 있고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도와 터키 음식점들도 많이 보인다. 유럽이 한 나라처럼 되었다지만 여전히 경제력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아서 돈을 쓰러 오는 나라와 그 돈을 벌어야 하는 나라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알부페이라의 유람선 가이드로 평생 일해왔다는 영감님은 10여 년 전 경제위기 때 이 아름다운 해변의 호텔들과 건물들이 죄다 독일과 스위스 자본들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여름 내내 하루 종일 일하지만 돈은 외국인들이 벌어간다고 하소연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투어 보트의 고객인 부자 나라에서 온 노인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하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 이제 은퇴해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여름을 보내러 온 그들에게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알가르브의 바다를 떠난 지난날의 모험가들은 몇 명만이 성공의 명예를 가졌을 뿐,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소위 ‘황금시절’을 보낸 적도 있지만 그로 인한 긴 전쟁과 그 뒤로 이어진 기나긴 독재. 36년이나 총리 자리에 있던 살라자르는 나이 들어 병들어 죽었다.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는 '사우다드'를 노래한다.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고 했다. 리스본의 바이루 알투나 알파마의 작은 파두 하우스에는 매일 파디스타들의 짙고 진한 사우다드가 언덕 아래로 흐른다. 포르투갈에서 독재를 끝내는 혁 역시 코임브라 파두와 함께 시작되었다. 운이 좋게도 리스본과 코임브라에서 매일처럼 파두하우스들에서 그들 속에 섞여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가수 Mariza와 Ana Moura의 공연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모든 걸 던져 노래하는 가수들과 그 모든 걸 몸으로 받아들이는 포르투갈 사람들 모두 아름다워 차마 늦은 밤까지 거리를 떠날 수 없었다.   



지난날의 영광만을 기억하고 살 수도, 눈 앞의 언제나 팍팍한 현실을 계속 외면하고 살 수도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알가르브의 여름, 어느 해변 카페에 이른 아침 테이블을 옮기고 있는 어린 포르투갈 청년의 뒷모습이 어딘가 애처롭다. 이 반짝이는 햇살이 보라색 자카란다 꽃 사이로 부서지듯 떨어지는데 여름 한 철 장사를 위해 포르투기즈들은 오늘도 새벽잠을 설친다. 저 청년의 겨울이 잠깐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도시 라구스 해변 골목의 작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알가르브 와인을 나눠 마시던 불가리안 알바생 아나스타샤는 북쪽엔 없는 이 바다 때문에 여름이면 이 곳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휴식과 다른 이들의 노동이 만난다. 어디든 사람의 삶이 고단하지 않은 곳이 없다. 여행은 가끔 의외의 순간 내 자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 여행은 이렇게 계속되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거기서도, 옛날과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과정일 테니까.



2018년 7월 어느 회사 사보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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