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유월에 포르투갈에 가야 하는 이유
# Lisboa.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도심엔 이미 자동차들은 사라지고 골목마다 사르디냐(정어리) 굽는 연기가 도시를 뒤덮은 화려한 축제 장식들을 넘어 큰길까지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정어리 모양, 화분 모양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서서히 도로와 광장을 메우기 시작하고 리베르다드 거리 양편에 모여들어 빈틈이 보이지 않을 때쯤, 밤을 알리는 어둠과 함께 퐁발 광장 쪽에서 화려한 복장의 사람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여름 축제의 절정, 상투 안토니우 축제(Festa de Santo António) 밤의 시작이다.
# Porto.
포르투 도심으로 향하는 전철 안이 평소와 조금 달라 보인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녀들의 손에 작은 장난감 망치들이 하나씩 들려 있다. 그 옆 중년 여인의 가방에도 장난감 망치의 손잡이가 보인다. 늦은 건 아닐까. 상 벤투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온다. 사람들로 가득한 포르투 언덕 위엔 망치 파는 상인들, 사르디냐와 피망을 굽는 사람들이 반반이다. 이미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청년들의 손에는 커다란 뽕망치들이 양 손에 들려 있다.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여행자가 빈 손인 걸 본 꼬마 아가씨가 천사 같은 미소와 함께 망치를 하나 건네준다. 지금부터 루이스 1세 다리 위로 불꽃이 피어나는 자정까지 이 오래된 도시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손에는 뿅망치를, 다른 한 손에는 맥주잔을 들고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머리를 서로 때리며 몰려다닐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정어리와 피망, 돼지고기를 굽는 골목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 셀카를 찍고 함께 풍등을 밤하늘로 올려 보내면서. 포르투의 여름밤, 상 주앙(São João) 축제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 Lisboa.
국민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포르투갈에서 모든 축제는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 도시마다 수호성인이 있고 그 성인의 축일이 곧 그 도시의 축제일이 된다. 리스본의 수호성인 성 안토니오 축일에는 리스본을 대표하는 여러 동네들, 스포츠 클럽 등의 사람들이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하고 각자 동네의 특징을 담아 행진을 선보인다. 이 하루의 행진을 위해 몇 달 동안 남녀노소 주민들은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한다. 올해는 스무 팀의 행진이 해질 무렵부터 자정이 가깝도록 이어졌다. 점수도 순위도 없다. 행진을 선보이는 사람들도 환호하는 사람들도 그 순간을 함께 즐긴다. 그 한 명 한 명의 환희에 가득한 표정이 바로 축제다. 자정. 마지막 팀의 행진이 끝났다. 리베르다드 거리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알파마, 바이루 알투, 무라리아의 골목과 강변으로 흩어진다. 그곳에서 진짜 축제가 다시 시작된다. 모든 골목은 음악과 술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 찬다. 어떤 집은 마당을 오픈하고 한쪽에 직접 만든 샹그리아 단지를 놓아두고 그 옆에서 정어리를 굽는다. 사람들은 그 마당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다시 다음 골목으로 간다. 갑자기 어느 골목 이층 베란다 창이 열리고 커다란 스피커가 나오더니 흥겨운 음악이 쏟아져 나온다. 지나던 모든 이들은 손에 든 술잔을 들며 환호하며 춤을 춘다. 해가 뜰 때까지 리스본의 골목들은 쉬지 않고 달린다. 아침 해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나서야 도시는 잠이 들기 시작한다.
# Porto.
포르투에서 장난감 망치나 기다란 마늘 꽃대로 사람들의 머리를 치는 건 축복의 의미다. 작은 종이로 만든 풍등 역시 모두의 소망을 담고 밤하늘로 오른다. 풍등에 소원을 쓰거나 하지도 않는다. 한꺼번에 시간 맞춰 올리지도 않는다. 골목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어깨를 걸고 맥주잔을 기울이다 근처에서 누군가의 풍등이 하늘로 오르면 눈으로 풍등을 좇으며 각자의 소망을 함께 보낸다. 자정, 도우루 강 다리 위에서 불꽃이 발화(發花)한다. 오늘 맞은 뿅망치와 꽃대의 축복이라면 평생의 행운으로 쓰고도 남을 텐데. 밝히던 폭죽이 멈추고 나면 포르투의 골목들 역시 해가 뜰 때까지 춤과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 날을 위해 이 오래된 도시를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 역시 숙소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젊은이들만의 밤이 아니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축제의 밤을 함께 한다. 노인이 아이였을 때도 여름의 축제를 기다렸을 것이고 아이는 매년 축제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문에, 골목에 축제 장식을 달면서 여름을 기다리고 축제와 함께 여름을 관통한다. 그리고 또 다음 여름을, 다음 축제를 기다리며 겨울을 보낸다.
도시마다 성인의 축일이 달라 조금씩 다르지만 포르투갈의 도시들은 대부분 5월에서 8월 사이에 축제를 지낸다. 작은 녹색 화분 만즈리쿠(Manjerico)에 마음을 적은 쪽지를 꽂아 누군가에게 건네기도 하고 커다란 인형과 함께 행진하기도 한다. 축일 오후에는 성인을 모신 성당에서 성상을 따라 도심을 돈다. 새벽까지 달리던 사람들이 맞나 싶게 엄숙한 행진이다. 성상이 천천히 앞서 가면 시민들은 그 곁에 장미꽃을 던지고 그 뒤를 따르며 성인의 뜻을 기린다. 성당마다 성인의 상에 촛불이 켜지고 사람들의 참배가 이어진다. 여름이 오고 또 한 번 축제가 지나면서 도시는 또 한 겹의 기억을 사람들의 마음에 쌓는다. 이렇게 수십 년이, 수백 년의 축제가 도시에 축적된다. 오롯이 그 도시의 색깔로 남는다.
한국 역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축제들이 일 년 내내 넘쳐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같은 날에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포르투갈의 축제들을 남으로 북으로 쫓아다니다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사대문 안 모든 길에 차가 사라지고 그 크고 작은 길, 새로 생긴 큰 길들과 오래된 골목들 모두에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의 오늘을 축복하고 친구들과 이웃들이 공들여 준비한 행진을 함께 즐기며 먹고 마시는 어느 여름날. 그 여름날의 기억을 모두가 나누는 즐거운 표정 가득한 그 하루를 기대하게 하는, 그런 축제. 그렇게 해마다 조금씩 쌓인 ‘서울’이 어느 즈음에 분명한 색깔로 드러나게 되는 축제. 언젠가는 그런 하루가 우리에게도 선물처럼 주어질 수 있을까. 포르투갈의 여름을 관통하는 축제의 하루를, 부러워하면서 그 수백 년의 축제 중 어느 한 해의 기억을 나눠가지게 된 행운을 감사한다.
2018년 8월, 어느 회사의 사보에 실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