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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r 18. 2019

일본 소도시 면식여행

日本 小都市 麵食旅行

면을 좋아하는 여행자인가? 그렇다면 일본에선 고민이 많아진다. 소바. 우동. 라멘..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어찌 그렇게 독특한 면도, 오래되고 유명한 면가(麵家)들도 많은지. 도쿄나 오사카처럼 유명 여행지가 아니라 스치듯 지나가는 도시, 작은 마을에도 꽤 괜찮은 국수들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린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차로 사십여 분, 가와타나 온천 근처 한적한 시골마을에 가와라소바(瓦そば)를 만드는 곳들이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가와라(기와) 위에 녹차가루를 섞어 만든 소바와 고기, 계란, 김 등을 올려 먹는 면요리다.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때 병사들이 야전에서 기와에 야채, 고기 등을 올려 구워 먹은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큰길에서도 조금 떨어진 인적 드문 곳에 본관과 별관 몇 채를 가진 소바집이 가와라 소바의 인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가을에는 근처에서 코스모스 축제도 열려 이 작은 마을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든다.



기후 현 북쪽,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히다후루카와(飛驒古川)는 몇 년째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16년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로 쓴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다. 영화의 흔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을은 온통 너의 이름은 상품으로 가득하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영화 속 장소들을 순례하듯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마을을 다니다 눈에 들어온 마을 한쪽의 소바집에서는 영화 제목을 붙인 한정판 소바를 팔고 있었다. 여주인공 미츠하(三葉)의 이름에서 미츠바(일본 파슬리) 잎 세 장을, 주인공들의 연결된 인연을 뜻하는 실곤약을 묶어 고명으로 얹는 식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바에 구현했다. 하루에 단 열 그릇. 한정판 마케팅에 능한 일본답다. 영화 순례를 온 팬들로서는 놓치기 힘든 유혹이다. 영화 마케팅이 아니었어도 인기 있는 소바집인 걸 양복을 입고 묵묵히 소바 접시를 들고 있는 중년 남자들을 보니 알 것 같다.



효고 현 북쪽의 작은 마을 이즈시(出石)는 가히 소바 마을이라고 할 만하다. 기차도 닿지 않는 조그만 옛날 마을에 소바 가게들이 오십여 곳이 넘는다. 관광안내소에서는 소바 집들이 빽빽하게 표시된 지도를 준다. 오래전 소바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신슈(信州-현재 나가노 현)에서 이즈시로 부임하게 된 영주가 소바 장인들을 데리고 오면서 소바 마을이 시작되었다. 이즈시 소바는 사라소바(皿そば)다. 작은 접시(皿)에 소바가 조금씩 올려져서 나온다. 기본으로 5 접시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추가로 주문해서 빈 접시를 쌓아가면서 먹는 식이다. 스무 접시 이상 먹는 사람들은 가게에 명패를 걸어 주기도 한다. 소바로 유명하지만 오래된 성 아래 마을이 예뻐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 지역 특산물로 만드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역시 이즈시는 소바다.(청바지 원단인 데님 생산지로 유명한 쿠라시키는 데님 아이스크림도 있다). 이렇게 소바로 유명한 이즈시지만 도쿄의 친구들에게 이즈시 사라 소바를 먹어봤노라고 자랑했더니 그게 뭐냐는 반응이 많았다.  



시코쿠의 맨 아래, 고치(高知) 현의 아주 작은 마을 스사키(須崎)에는 독특한 라멘이 있다. 나베야키라멘(鍋焼き ラーメン)이다. 세트장 느낌이 날 정도로 작은 마을에 나베야키라멘 식당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그릇이 아닌 토기 냄비(土鍋)에 담겨 뜨겁게 나오는데 간장으로 간을 한 닭 육수에 고기, 파, 치쿠와(竹輪 대나무 모양 어묵), 날계란이 들어 있다. 탄력 있는 가는 노란 스트레이트 면을 쓰는데 특이하게 면을 먼저 먹은 후 남은 국물에 한국처럼 밥을 말아먹는다. 시골 농촌 마을이지만 이 라멘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와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줄을 선다. 고치 시내에도 스사키 나베야키라멘 전문점이 있으니 맛을 보는 건 고치에서도 가능하다.

시코쿠의 대표적인 도시 마츠야마(松山)에도 비슷한 이름의 면요리 나베야키우동(鍋焼きうどん)이 있다. 마츠야마의 번화한 상점가 옆에 나베야키우동 노포들이 모여 있는 작은 골목이 있다. 오래된 알루미늄 냄비에 달착지근한 국물과 부드럽게 툭툭 끊어지는 면발 위에 볶은 고기, 가마보코, 파 등이 고명으로 나오는데 한국에서 맛보던 냄비우동의 원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손님들 대부분은 마츠야마 사람들이다. 대개 유부초밥을 곁들여 먹는다.



그래도 시코쿠를 대표하는 면은 역시 다카마쓰(高松)를 중심으로 한 카가와(香川) 현의 우동이다. 옛 이름 사누키로도 불리는 이 지역은 우동투어, 우동버스 등으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우동의 성지 같은 곳이다. 시내에도, 교외에도 이름난 우동집들이 즐비하다. 그중 하나인 야마다야(山田家)는 다카마쓰 외곽 언덕 위 저택을 개조한 대형음식점이다. 시내의 작은 노포들과 다르게 수백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고 메뉴도 다양하다. 가을이 되면 계절 한정 싯포쿠(しっぼく) 우동을 먹을 수 있다. 양념한 표고, 송이 등 다양한 야채와 어묵 등을 푸짐하게 넣고 끓여낸 우동이다. 이 곳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이 미스 우동 출신 일본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에 같은 이름의 우동집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워낙 우동의 종류도 많고 집집마다 각자의 제법이 다르고 계절메뉴들도 있으니 카가와에서는 공부를 하고 순례를 하듯 동선을 짜서 찾아다니거나 그냥 그때 마음이 끌리는 우동을 택하는 게 오히려 방법이다. 실제로 시내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우동집들을 지나다 괜히 공력이 있어 보이거나 메뉴가 끌려 우연히 들어갔던 곳들이 나중에 보니 명가 리스트 앞자리에 있는 카와후쿠 본점, 우돈보 등이었다.



역시 시코쿠의 에히메 현 서쪽 끝에는 오즈(大洲)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오래된 성 아래 작은 골목들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마을은 외국 여행자들은 거의 찾지 않지만 온천도시 마츠야마(松山)에서 한 시간 거리고 요즘 인기 있는 우치코(內子)에서도 가까워서 같이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오즈의 숙소에서 젊은 주인에게 소개받은 ‘오즈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면요리’는 ‘오즈찬폰(짬뽕)’. 오즈의 대표음식인 타이메시(도미밥)을 저녁식사로 먼저 먹고 조금 늦게 찾아간 식당은 의외로 라멘집이나 우동집이 아닌 철판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주점이었다. 조심스레 주문을 하자 주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철판에 고기와 야채를 볶기 시작하더니 밥과 중화면을 그 위에 얹고 소스를 부어 볶기 시작했다. 오즈의 ‘짬뽕’은 다름 아닌 밥과 면을 섞는 것이었다. 벽엔 지역 주류와 일본 각지의 명주들 리스트가 가득했다. 욕심으로 저녁 두 끼를 먹지 않았다면 작정하고 술판을 벌여도 좋을 곳이다. 역시 작은 마을에서는 현지인 추천만 한 곳이 없다.



대도시 나고야에는 우리 칼국수처럼 넓고 얇은 면인 기시멘(きしめん)이 있다. 면의 형태를 부르는 이름이라 기시멘도 국물과 재료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있다. 두꺼운 메뉴를 펼쳐놓고 주인에게 묻자 진한 맛의 미소기시멘을 추천했다. 불 위 냄비에 담긴 강한 된장 맛 가득한 넓은 면이라니.



일본의 면의 세계는 참 다양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도시의 뒷골목, 작은 마을의 한적한 길가에서도 얼마든지 깜짝 놀랄 경험을 선사한다. 면을 찾아다닌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면들만으로도 여행지의 수 몇 배의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도 많고 온갖 정보들이 가득한 인터넷 맛집 정보를 찾아도 끝이 없겠지만 역시 여행자 자신만의 ‘느낌’을 믿어도 좋고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면 집을 소개해 줄 수 있느냐, 아니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면은 뭐냐, 제일 좋아하는 면가는 어디냐고. ( 라멘은 따로 추후에 포스팅하겠습니다.^^ )



2018년 9월 어느 회사 사보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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