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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r 22. 2019

소년 김주열,
짧은 마산 여행을 마치다.

마산.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있는 오래된 항구이자 한 때 전국 8대 도시에 이름을 올렸던 남쪽 고을. 하지만 이번에 마산으로 향하게 된 건 김주열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4.19, 아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면 언급되는 이름.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의 뒷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의외로, 김주열은 전라도 남원의 작은 마을 출신이었다. 지역 농고에 진학했다가 은행원이 되어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고 친척이 있는 마산상고에 다시 시험을 쳤다. 합격을 확인하러 마산에 도착한 날이 60년 3월 15일. 그 날, 부정선거가 자행되었고 마산시민들은 불의에 항거했다. 형과 함께 시위에 나섰던 소년은 행방불명되었고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항 부두 앞바다에 떠올랐다. 소년의 주검을 본 마산시민들을 시작으로 다시 불붙은 정권 퇴진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 곧 4.19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을 하야시키고 역사를 바꾸었다. 소년의 시신은 발견 후 경찰이 빼돌려 남원으로 보내져 소년은 며칠 뒤 고향 남원에 묻혔다. 소년의 마산 여행은 길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마산에 있었다. 거리의 담벼락에서, 부둣가에서, 명예졸업생이 된 학교에서 소년 김주열을 만났다.



야구 명문 용마고(전 마산상고)의 운동장을 따라 걷다 보면 소년의 흉상이 있는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원래 학교 안에 있었는데 확장을 하면서 대로변으로 옮겨졌다. 마산에 오지 않았더라면, 부정선거에 항거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냥 입학했더라면 어쩌면 흉상에서처럼 교복을 입고 김주열은 이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갔을 것이다.



지금은 배도 사람도 드문 마산항 한쪽 작은 부두. 어머니와 마산시민들이 한 달여를 찾아도 발견되지 않던 김주열이 이 곳에서 떠올랐다. 바다 너머로 마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돝섬 유원지가 보이고 그 뒤로 마창대교가 보이는 자리. 그를 기억하는 표지 곁으로 나지막한 벽을 따라 소년의 짧은 생을 그린 벽화가 있고 함께 산화한 사람들의 사진 속에 소년의 얼굴과 이름도 있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타령으로 익숙한 원도심 오동동 통술골목에 3.15 의거 발원지 표지가 있다. 술집들 사이의 벽에도 그의 이름이 보인다. 그 앞을 오가는 마산사람들은 지나간 공화국의 어느 격동의 시대에 낯선 도시의 거리에서 불의에 항거하다 짧은 여행을 마친 열일곱 남원 소년을 기억하고 있을까. 다행히 이제는 그의 고향 남원에서도, 이 곳 마산에서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있어 소년의 이름은 잊히지 않고 여전히 불리고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특별한 유적이나 명승지가 없는 마산은 그래서 음식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오동동과 창동, 어시장을 잇는 원도심 근처에는 아구찜 거리, 복요리 거리, 통술거리, 장어 거리 등이 줄지어 있다. 특히 마산이라는 이름과 늘 붙어있는 아구찜 거리는 60년대 쓸데없어 버려지던 아귀를 지금의 전국구 요리로 만든 곳이다. 마산식 아구찜은 말린 아귀를 불려 콩나물, 미나리 등과 함께 맵게 볶아내는데 외지인에겐 낯선 식감이라 요즘은 생아구찜도 함께 내기도 한다. 미더덕찜을 내는 곳도 많다. 어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속풀이 복국과 매운탕을 팔던 복요리 거리의 백 년 노포엔 오늘도 백발의 주인이 손님을 맞는다. 통영 다찌집, 진주 실비집처럼 마산 통술집도 여전히 찾는 이들이 있다. 예전 같은 영화는 이젠 없지만 술꾼에게 안주가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지나간 세월과 추억을 소환하기엔 통술집만 한 곳이 없다.



오동동에서 창동예술촌을 지나 부림시장까지 오래된 골목을 지난다. 시장 한쪽에 6.25 떡볶이가 있다. 시장 길가의 작은 노점이 인기를 얻어 이름난 맛집이 되었다. 테이블도 없이 손에 그릇을 들고 먹다 흘리는 경우가 많아 꽃 모양 화분받침을 받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화분받침이 상징처럼 되었다. 어묵이 80, 떡이 20인 데다 국물이 많아 떡볶이라기보다 고추장 어묵 찌개 같기도 한데 싸고 독특한 맛에 여전히 줄을 선다. 마산역 앞 새벽시장인 번개시장에도 줄 서는 노점이 있다. 뜨끈하고 진한 콩국에 기다랗고 쫄깃한 튀김을 잘라 넣어 준다. 단돈 이천 원. 대신 새벽부터 오전까지만 문을 여니 부지런해야 맛볼 수 있다. 


마산역 대합실엔 새하얀 해군복의 어린 수병이 여자 친구와 붙어 앉아 달콤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전의 어느 시인의 시비 옆엔 그의 친일행적을 잊지 말자는 작은 비석이 함께 있다. 마산. 영조 때 대동법 시행을 위해 조창(漕倉)이 설치되었고 일제가 물자를 수탈해 가던 항구였으며 한 때 자유무역지역의 굴뚝 연기가 가득하던, 근현대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한 남쪽 도시를 떠나는 마음은 왠지 모를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들러 통술집 구석에 앉아볼 일이다.



2018년 10월, 어느 회사의 사보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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