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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Jun 14. 2021

아직도 가끔 엄마인 내 모습이 낯설다


"이은0 들어오세요~"


첫째가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때 병원에 예방접종을 하러 가면,


"어머니, 꽉 잡으세요. 아기 움직이면 다쳐요."


애는 울고불고 나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진땀이 나는데 보호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다 서툰 내가 버둥대는 아이를 조금 놓치기라도 하면, 엄마라는 사람이 자기 아이 하나 어찌 못 하냐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혼자 속으로 부끄러워했다.


내가 엄만데 이런 것도 잘 못해..

뭐 비록 엄마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날 엄마라 부르는 말이 익숙지도 않지만..




특히 성장앨범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가면 직원분들이 쌩글쌩글 웃으며,

"엄마, 애기 잠은 잘 자고 왔어요?"

"엄마, 엄마가 아기를 뒤에서 잘 받치고 계셔야 해요."

나에게 계속 엄마, 엄마 부르는 말이 참 친근하면서도 무척 낯설었다.


내가 엄마구나...

늙어버린 기분이 들어..


길에서도 종종 듣는다.

"애기 엄마, 양말 좀 신겨. 애기 춥겠어"

"어머니~~ 이것 좀 먹여보세요"

"00엄마, 같이 가요"


첫째가 지금은 10살이 되어 그러니까 햇수로는 9년째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내 입에서도 "엄마가.."를 달고 사는데도 여전히 '내가 엄마라고? 그래, 내가 엄마지, 엄마가 됐네?' 하는 놀라움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제 학교나 학원, 학습지 선생님이 나를 "어머니!" 하고 부르면 학부모의 무게까지 느껴져 더욱 진지해지고 때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다.


심지어 재작년 둘째낳아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임에도..


내가 이 생명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나도 힘들면 아직 엄마 찾는 입장인데?


가끔 한숨도 난다.




사실 난 집안일 중에서도 특히나 요리가 취약한 사람인데...

결혼 전 자취를 오래 했지만 그때에도 가장 관심 없던 게 요리였다. 원룸 건너편의 한* 도시락과 온갖 냉장, 냉동식품을 데워주는 전자레인지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그랬는데 이유식과 유아식을 시작으로 커가는 아이에 맞춰 먹일 반찬을 만들다 보니 놀랍게도 이제 어지간한 음식은 대충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물론 맛은 별개의 문제.....)


우엉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 볶고..

얼갈이를 다듬어 데치고.. 

갖은 야채와 고기를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일날에는 잡채를 만들어주고..

소풍날엔 김밥도 싸고..

그러다 문득 놀란다.


'내가 칼질을 한다고? 요리를 한다고?'


낯선 자각이 드는 그 순간들마다 친정엄마의 모습이 교차해서 떠오른다.

내가 늘 올려다보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도 이제 그 자리에 서 있구나..'


솔직히 금방 배워서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엄마가 하는 일들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닌 줄 알았다.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기를 낳기만 하면 금방 익숙해지는 줄 알았다.

엄마라는 것에...

 말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긴 줄 몰랐다,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다.


가끔 엄마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은 문득 그 단어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들인 것 같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안에는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깊은 감정들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삶은 더욱 다채로워졌고 풍요로워졌다.

지쳐 허덕일 때도 있고, 극심하게 후회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부딪치고 넘어설 힘이 생겼다.


돌봄 받던 입장에서 돌봐주는 입장으로..

누군가의 책임에 기대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책임지는 어른의 입장으로..

엄마가 되면서 변화된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 온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누군가 나를 '엄마'라고 부를 때,

내가 나를 '엄마'라고 칭할 때,

온 세상이 멈춘 듯 어지러운 순간이 오고야 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또 생겨났다.

만약 어떤 것들이 달라졌냐고 물으면..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 바로 엄마가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는 오묘한 기쁨도 행복도 같이 들어있다.

"엄마! 안아줘"

"엄마 사랑해!!"

"음마 조아~"

삶의 빛나는 순간들에도 그 말이 함께 한다. 나를 더욱 자라나게 하는 말이고, 기운 나게 하는 말이고, 내 삶을 긍정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 들어도 낯설지만 그 단어가 좋은 걸 보면..

나는 어느덧 '엄마'에 중독되었나 보다.



(작년에 썼던 글입니다. 아이들 나이가 올해는 11살, 4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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