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으로 보는 드라마 '속도'의 이해
처음 운전면허 학원에서 도로주행 연습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걱정이 참 많았다. 키도 작으면서 1종 면허를 따겠다고, 발이 겨우 닿는 트럭에 앉는 것도 힘든데, 도로라니.
유턴도, 깜빡이 키는 것도 다 떨렸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심장 벌렁벌렁 하던 구간은 얼마 이상 달려야 하는 구간이었다. 내 기억에는 70이상으로 달려야 했던 것 같은데, 좀만 발가락에 힘을 줘도 너무 빨리 나가서 앞 차를 박아버릴 것만 같았다.
운전을 할 때 최고 속도 제한만 있는 게 아니라 최저 속도 제한도 있다는 걸 아시는가? 모두가 함께 달리는 길에서는 혼자 빨리 달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혼자 천천히 달리는 것도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드라마판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빨리 빨리 변하는 세상에, '속도'는 꽤 중요한 주파수다.
<초콜릿>의 이경희 작가님은 멜로의 대가시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작품이 수두룩하고, 많은 이들의 인생작일 작품을 다수 집필하신 작가님이시기도 하다. 내 인생작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다. <고맙습니다>와 <함부로 애틋하게>도 재밌게 봤고.
이경희 작가님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특장점은 운명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 사랑해서는 안 될 두 주인공을 붙여놓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래서 시청자가 더 애닳게 만들고, 결국엔 "저 둘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외치게 만드는 것. 일반 로코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게 친구관계나 집안 문제 정도라면 이 작가님의 스케일은 남다르다. 사랑하는 연인이 사실은 우리 아빠를 죽게 만든 사람이라거나, 최소 집안은 망하게 한 사람이다. 재벌도 싫고, 삼각관계도 싫다고? 괜찮다. 작가님은 그런 거 다 상관없이 빠져들게 하는 특허가 있으신 분이다.
지난한 역경을 딛고 이뤄진 사랑은 눈부시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속도. 계속 나오는 방지턱을 넘다보면 고속도로는 커녕 어린이보호구역 빠져나가기도 힘든, 그런 속도.
요즘 애들의 사랑은 빠르다. 타미랑 모건이는 처음 만난 날 함께 밤을 보냈고(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용식이는 동백이를 처음 보자마자 쫓아다니기 시작했고(동백꽃 필 무렵), 진주랑 범수의 시작도 밤을 보내고 나서였다(멜로가 체질). 드라마만 그런가? <연애의 맛> 정준-김유지 커플의 속도를 보자. 장난이 아니다.
드라마나 예능이나 이제 마음을 감추고, 재고, 아끼는 건 오히려 어색한 시대가 왔다. 솔직하고, 당당한, 그래서 아낌없는 사랑을 꿈꾸는 그런 시대가.
넷플릭스 광인 내 친구는, 한국 드라마를 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무슨 나이를 30씩이나 먹어가지고
맨날 연애 처음 해보는 것처럼 질질 끄는 거
답답해서 안 봄."
그렇다. 시청자는 리얼을 원하고, 한국 최신 드라마만 빨리 달리는 게 아니다. 외국 드라마는 더하다. 진작에 육지를 떠났다. (비행기랄까?) 할리우드식 쿨한 연애를 소비하는 요즘 세대에게 이 속도, 적응이 안 될만도 하다.
8화까지 진행된 <초콜릿>은 지금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는 중이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방지턱과 '목숨을 건 집도(ft.본인 뇌손상)' 방지턱은 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9화 예고를 보니 이준 선생까지 새로운 방지턱이 될 예정인가보다. 8화가 지날 동안 차영은 혼자 애끓는 마음을 감추는데 급급했고, 강은 이제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며 혼란스러운 상태다. 드라마의 반이 지나는 동안, 이 다 큰 남녀들이 서로의 마음을 꽁꽁 숨기고만 있으신 거다.
<초콜릿>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는 휴먼 멜로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속도는 또 아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고 있다.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에 위로받고 감동받는다는 시청자들과, 이제 어서 차영이와 강이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로.
적정 속도를 찾을 때가 아닌가 싶다. 최저보다는 높게, 최고보다는 낮게. 한국드라마식 슬로우 전개의 매력은 지키면서, 너무 느려 떨어져 나가는 시청자는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