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이 아닌 이들의 '보통'의 사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by 줄리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미국, 기예르모 델 토로, 2017




인간이 아닌 것들이 하도 많이 등장하는 요즘은,

더 이상 판타지 장르의 작품이 마냥 새롭거나 신기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장르가 이야기를 더욱 동화적으로 담아내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어떤 의도든지 간에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좀 와닿지 않는다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판타지는 바로 그럴 때 쓰기 딱 좋은 장르인 것 같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감독이 숨겨놓은 의미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이질감이 아닌 동질감에서

비인간인 존재와의 사랑을 그리는 판타지 영화의 주요 흐름은 이렇다.

처음 상대를 만났을 때는 거부하고 외면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와 자신이 사실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하게 되는 결말로 끝을 맺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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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남자 주인공이 비인간인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영화를 볼 때 아마도 남자든 여자든 관객은 인간인 주인공에 몰입하게 된다.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관객의 이해수준은 인물과 함께 진행된다. 비인간인 상대에 대한 이질감이 동질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함께 겪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엘라이자는 기존 영화 속 여주인공들과 달리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감상을 쉽게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다. 장애인이면서 노처녀인 그녀는 영화의 어두운 화면 색감과 연결되면 더욱 밝은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울하고 쓸쓸한 삶을 사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사람의 형상이다. 그리고 결국 관객은 엘라이자의 입장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녀를 보게 된다.

이 영화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본래 주인공과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관객은 저 멀리 떨어뜨려 두고 오히려 비인간인 괴생명체에게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동질감'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비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관객이 주인공과 비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관객의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바꾸는 여정을.



단지 말할 수 없을 뿐

엘라이자는 청각장애인도, 시각장애인도 아닌 언어 장애인이다. 감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을 내보내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대화에 가장 중요하게 필요한 것은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다. 엘라이자는 들을 수는 있으나 말은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엘라이자가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한 것은 그녀가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괴생명체 또한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인간과 교감하며 살 수 있는 충분한 지능이 있었음에도, 그는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실험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달걀을 톡톡 치는 것만으로도 그와 소통할 수 있던 엘라이자와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괴생명체는 소통의 시도조차 불필요한 타자일 뿐이었다.

movie_image (6).jpg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 외로워지고 소외되는 상황의 책임을 이 영화는 '보통'의 편을 가른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저들을 온전히 이해하며 바라보았는지, 당신은 저들과 소통하려고 했는지.



나도 마찬가지기에

이 영화에서 또한 독특한 점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또한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비인간인 존재로부터 '보통'의 삶으로 주인공을 다시 구출해내기 위해 회유하고 설득했던 주인공의 주변인물들과 달리 말이다.

movie_image (7).jpg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게이인 자일스와

movie_image (8).jpg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흑인인 젤다는 그들 자신도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엘라이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교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위해 함께 싸우는 조력자가 된다.



결국 영화는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변신하면 왕자가 되는 환상따위 없는, 변함 없이 '보통'의 기준의 가까워지지 않을 존재들이지만, 그래서 나와는 다르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사실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설득에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빠져들고 말았다. 영화 막바지에 가서는 그들의 무사 탈출을 함께 기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제목까지 완벽하다. 물에 모양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마음. 받아들이는 이해의 마음. The Shape of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