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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개구리 Jun 27. 2022

미안함

문뜩 헤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집에 살게 해주지 못하고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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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기념일에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헤헤와 식사와 함께 칵테일을 마셨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다툴뻔했다. 그렇게 다툴뻔하면서도 나는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헤헤가 하는 말이 다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헤헤 역시 의도와 다르게 내가 받아들인 것에 대해 차근차근 잘 설명해줬다. 하필 결혼기념일에 이렇게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에 대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 역시 하필 결혼기념일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하는 섭섭함이었다. 아무튼 내가 잘못했다. 아니 잘잘못을 떠나서 내가 속이 좁았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점차 우리는 다시 차근차근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드는 생각은, 헤헤에게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나는 참 운이 좋게도 결혼은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분명 7살이나 많지만, 헤헤가 더 어른스러울 때도 많다. 헤헤는 평소 내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굴지만, 이럴 때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나는 감정 고조가 완만하게 큰 곡선을 그리는 반면에 헤헤는 계단식 그래프처럼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어제는 집에 오는 길에 헤헤가 이런 아파트는 얼마나 할까? 라며 길 옆의 새로 지은 나 홀로 아파트를 가리켰다. 

"한 4억 정도 하지 않을까?" 

서울에서 4억이면 저렴한 가격이지만, 4억은 우리에겐 아직 없다. 내 나이 마흔에 4억 도 없다. 나이 들수록 점점 돈이 없다는 게 창피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까지 참 게으르게 살았구나, 나는 놀기만 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나마 재작년에는 주식 투자가 제법 성공적으로 보여서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2022년 6월 27일)은 하락장이 심화되어 많이 내려온 상태다. 그때 팔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 팔고 지금 다시 들어갔어야 했는데...

이렇게 '그랬어야 했는데~'를 연발하는 시기다. 


오늘은 인터넷으로 로또를 구입했다. 어릴 때는 복권은 무능하고 한심한 사람들이 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에 기대하느니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어쩌면 로또가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릴 때는 지금 내 나이쯤 되면 무조건 중산층이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이젠 그게 정말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40대에 하는 표류라니.. 나도 참...

훗날에 오늘을 기억하며 아내에게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미안함 감정을 끝낼 수 있길. 그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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