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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quniill Apr 15. 2019

내가 '신의 직장'을 그만 둔 이유

제8 일꾼의 말: 일잘러의 태도를 만들어준 말들 

제8의 일꾼 (대기업 법률팀에서 5년간 일하다 퇴사했습니다. 지금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넌 더 좋은 회사에 다닐 능력이 있어. 지금 회사는 너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곳이 아니야."


'일 못한다'는 평가가 정말 그 일꾼을 무능력하게 변화시키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일을 시작한 초반 몇 번의 실수가 연달아 있을 때, 그 일꾼의 주위에서는 '일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고 그 평가는 '일꾼은 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든다. 일꾼은 자기도 모르는 새 프레임 안에 갇혀 정말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신의 직장'을 다녔다. 국가고시 중에서도 특히 높은 경쟁률을 뚫은 이들이 근무했고, 복지와 대우가 모두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의 '장한 우리 딸'이 될 수 있었다. 평생 직장으로 삼을 만한 곳이었지만, 내가 이곳에서 보낸 기간은 고작 2년 6개월. 누가 쫓아낸 것도 아니고 내 발로 걸어나왔다.


이곳에서 나는 자주 혼이 났다. 주요 업무였던 홍보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나대지 말라"는 핀잔을 받았고,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보고시간에는 "윗사람이 지적하면 대꾸하지 말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한 번은 윗분의 해외 출장 소식을 홍보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취재하던 중 "너 때문에 내 기분이 상했으니 네 상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경고를 듣기도 했다. 


당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사와 함께 그 윗분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던 기억이 있다.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런 일들을 겪다보니 어떤 업무를 해도 움츠러들었다. 회의시간에는 점점 입을 열기가 어려워졌고, 업무에 대한 태도는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나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곳 사람들이 덧씌운 프레임에 실제 갇혀가고 있었다.


내 존재감을 스스로 지워가고 있을 때 제8의 일꾼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여덟 번째 일꾼은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하고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아마 모두가 부러워했던 회사를 나와서 후회하고 있는지, 아니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제8의 일꾼의 답은 밤잠을 깨웠던 수많은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담백 명료했다. 


"넌 더 좋은 회사에 다닐 능력이 있어. 지금 회사는 너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곳이 아니야. 네 능력을 알아봐주고 스스로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회사는 많아. 그곳이 너에게 진짜 좋은 회사인 거야." 


그의 말이 맞았다. 이후에 옮긴 회사에서는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 나를 믿고 업무를 맡겼다. 업무 결과물에는 칭찬과 격려가 뒤따랐고,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년간 총 세 번의 이직을 했다. 네 곳의 회사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모두 같지 않았다. 어디에서는 "일 좀 한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매사 오바한다"는 핀잔에 마음을 다쳤다. 흔히 '직장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람 간에 부딪히고, 돌아이가 존재하고, 업무가 힘든 건 어느 직장이나 똑같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날개를 달아줄 회사는 따로 있다.  


우리는 더 좋은 회사에 다닐 능력이 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스스로를 가둘 필요 없다. 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그냥 천 쪼가리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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