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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quniill Mar 13. 2019

회사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제3 일꾼의 말 

제3 일꾼의 말 (10년차 일꾼. 홍보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을 한다) 
"회사엔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다는 이 당연한 말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사람 간의 일이다. 흔히 일꾼들은 '직장생활을 한다'고 표현한다.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구성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꾼들의 일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는 '활동'에 가깝다. 1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제3의 일꾼을 괴롭힌 것도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지지고 볶고 상처받고 속앓이하며 그가 얻은 일사이트는 이렇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는 없다.' 


"너 참 천박하다."


부장의 고함에 사무실에 있던 일꾼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날 오피스룩에 유독 살색이 많이 보이는지 훑었다. 치마를 입긴 했지만, 무릎까지 내려오는 적당한 기장이었다. 


얼결에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그날 부장의 눈에 천박하게 보인 것은 제3의 일꾼이 쓴 글의 문장 배열이었다.(그럴거면 주어에 '너'가 아니라 '문장'이 들어갔어야지.) 


부장은 유독
제3의 일꾼을 싫어했다


이유는 없었다. 매 점심시간 2000원을 던져주고 두유와 단팥빵을 사오라고 했다. 일하는 중 담배를 주문하기도 했다. '더 섹시한 사진을 찾아달라'는 등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화가 난다는 이유로 물건을 던졌다. 기가 막혔다. 물건에 맞았으면 노동부에 신고라고 했을텐데, 어디서 투포환을 배웠는지 부장의 분노가 실린 물건은 항상 그녀의 코 앞에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회사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내리며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었다. 그렇게 첫 직장에서 부장과 3년을 보냈다. 


당시에는 답이 환생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장이 만들어놓은 지옥을 빠져나왔다. 부장에 대한 감정은 부서 이동 후 무더졌고, 이직 후에는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자 별 거 아닌 일이 됐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어려웠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회사엔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다는 이 당연한 말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이후 총 세 곳의 직장을 옮기면서 수많은 일꾼이 제3의 일꾼 곁을 스쳐갔다. 공을 가로채는 선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동기, 말을 비꼬아 듣는 후배 등등.   


"처음에는 '대체 이 사람이 왜 나를 싫어할까' 이유를 찾았죠. 어떤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받아들이고 나면 더이상 감정 소모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져요. 일만 하기도 힘들잖아요."


그렇다. 평생을 함께하는 가족과도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는데, 한 직장이라는 이유로 부대끼는 사람들과 갈등이 없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도 사람 탓에 직장생활의 위기를 겪어왔다. 


세 번째 일꾼의 부장처럼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는 상사도 있었고, 내 아이디어를 비판하고는 빼앗아가는 동기도 있었다. 이들 때문에 주저앉았으면 내 직장생활과 커리어는 엉망이 됐을 것이다. 내 곁을 스쳐간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질 뿐이고, 나는 내 일을 하며 성장해 나가면 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에 다 큰 성인들에게 인성과 도덕 교육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 듯하다. 사람의 마음은 비례한다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수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덜 상처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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