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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튼 Aug 13. 2024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구남친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어느 한낮의 일이었다. 회사 점심 시간, 밥 먹으러 나가기 전에 무심코 카톡을 열었는데 마주한 빨간 점. 구남친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는 표시였다. 그는 연애사에 가장 오래 만난 사람이고,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었다. 헤어지자마자 모조리 차단해 버렸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왜인지 버젓이 남겨놨던 사람. 잘 바뀌는 일이 없던 그의 카톡 프로필이 웬 여자와의 웨딩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촌스러운 스튜디오지만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그는 날 만날 때보다 살이 좀 찐 듯했지만 내게 자주 지어보이던 사람 좋은 웃음을 다른 여자와 함께 짓고 있었다. 늘 짧은 머리를 고수했었는데 머리도 어느새 길러져 있었다. 내가 아무리 긴 머리가 좋다고 해도 '웨딩사진 찍을 때 기를 거야' 했었는데... 정말 웨딩 사진 찍을 때 길렀네.


그 사진을 보고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와 헤어지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정말 미련이라곤 1그램도 없어서 한 이틀 울었더니 괜찮았다. '우린 어차피 안 맞았어. 차라리 지금 헤어져서 천만다행이야.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생각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금방 잊고 바로 다음 연애도 가능했었다. 그런데 왜, 시간이 한참 지나고 마주한 이 사진이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는 걸까.


그에게 미련이 없었다고 했지만, 그를 미워했었다. 불행했으면 했다.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사람이니까,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하던 꿈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길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빨리, 더 크게 행복해져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잘 사는 것만 같고, 벌써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내 인생은 여전히 비루하기만 하고 아직도 결혼은 멀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래, 그때 느낀 감정은 '패배감'이었다.


그 후로 얼마간은 패배감에 젖어있었다. '나랑은 결혼을 망설이더니, 그 사람이랑은 뭐가 그렇게 확신이 들어서 그렇게 빨리 결정했을까?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뭘까?' '나는 왜 아직 결혼할 사람을 찾지 못했을까? 나도 뒤처지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어.'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인생이 '누가 누가 더 행복하나'를 겨루는 서바이벌 게임도 아닌데 왜 난 항상 남보다 행복해지려고 할까. 그것도 이미 끝난 구남친과 경쟁하려고 하다니.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내가 그보다 먼저, 많이 행복해지면, 그가 나보다 불행해지면 누가 상금이라도 주나.


사실, 헤어질 즈음 그가 이미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는데도 헤어지자고 하지 않고 날 붙들고 있었던 걸 원망했었다. 그 때문에 내 귀중한 '결혼적령기'를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내 선택이기도 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 꺼져가는 불씨일지라도 아주 작은 불씨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온기가 남아있지 않는 불씨에 몸을 쬐며 춥다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과거엔 활활 타던 게 왜 이제 차가워졌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었다. 이제 다 끝난 불씨인 것을. 꺼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했다.


그러니 절반은 나의 잘못이다. 내 마음의 주도권을 모조리 줘버린 채 그의 선택에 맡긴 잘못. 그러니 오롯이 그를 원망할 수만은 없다. 그때 그 사랑은 우리 둘이서 한 일이니 절반은 그의 잘못, 절반은 나의 잘못. 아니, 어쩌면 우리 둘 중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 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마지막엔 힘들었지만 한때 나를 많이 사랑해 주고, 내가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고, 그의 사랑도 행복해질 만했다. 내 하찮은 저주는 애초에 소용이 없었다.


이전엔 구남친을 응원하는 건 가식이라고 생각했다. 끝난 마당에 뭘 얼마나 행운을 빌어주나. 나보다 못됐으면 좋겠고, 망했으면 좋겠는 게 솔직한 거 아니야?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비로소 이 사랑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대사가 떠오른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미워한다'가 아니라 '사랑했었다'라고. 이제 난 정말 그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랑했었다'라고 말할 뿐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심수봉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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