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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드 Aug 15. 2024

루돌프 서향집


루돌프 사슴코

우리 집은 서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북향이다.

아침 햇살이 부엌의 작은 창을 차지할 뿐

아침이라고 해서 딱히 환해지지 않는 저층이다.


한 마디로 향이 별로라는 말.

이 아파트에서  년째 살아가고 있다.

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


아침 볕이 창을 통과하는 시간. 

부엌 바닥에는  뼘 정도

햇살 건조대가 펼쳐진다.


나는  바닥 속옷이나

작은 빨랫감을 설렁설렁

뉘어 놓는다.


매일매일 새 옷을

갈아입는 

태양.


세제로 때를 지우면서

새로운 때를 기다리는

빨래들.


태양과 수건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KBS 클래식 라디오를 켠다.

연주곡명은 어렵고

나의 아침 기도는

이보다 짧다.


빨래야, 잘 익거라.


습기를 머금은 내 마음도

바삭바삭 잘 마르거라.


우리 집 거실과 마주한 아이 초등학교 쪽에서

태양빛이 하얗게 넘실거리

해질녘이 왔다는 신호다.


이때다 싶은 시간,

나는 통기타를 집어든다.


이제 막 배운 루돌프 사슴코 악보를 펼치고

A와 E7 코드를 번갈아 짚는다.


서향집에서는

매우 반짝이는 태양이 보인다.

나도 저리 늙어갔으면 좋겠지, 싶다.


손가락 끝이 기타 줄을 찾는 동안

햇살이 거실 창을 통과하여

내 몸 구석까지 파고든다.


기타 연습은 족히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허나 석양만큼은,


이 무더위에 성탄절을 기다리는

내 마음마저 들춰낸다.


딴 딴딴 딴딴딴,


아이 콧바람이 

하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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