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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드 Aug 09. 2024

마늘 찧는 층간


윗집이 마늘을 찧는다.

쿵쿵쿵 절구통이 울린다.


허깨비가 사나.


누군가와 나 사이에

마늘이 끼어드는 날.


걸리적거린다.

면봉으로 귓속을 후빈다.


아무리 파도 파도

이 쪼그만 귓밥뿐이고.


위층에선 공연이 열렸고


퍼커션이거나

드럼이거나

다듬이질이거나

악기 무료 공연이라니.


비-자발적이긴 하나,

여하튼 초대받은 자는

먹먹한 귓속을

잠금해제하는 수밖에 없다.


절구공이가 하던 일을

멈추기도 한다.


음이탈 한 마늘을

도로 주워 담는 모양.


김치를 담그려나

아직 김장철이 멀고

찧어둔 마늘을 그새 다 먹었나

그러기엔 마늘 찧던 날이 엊그제이


무슨 수로 그 많은 마늘을 다 먹을.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

마늘 찧는 소리를 된장국에 풀

휘휘 젓는다.


위층의 저녁 요리가 궁금하고

냉장고와 그의 살림마저 궁금해지다가

찧으면서 고루 잘 뭉개졌을

마늘마저 궁금할 지경.


쿵쿵쿵 쿵쿵쿵


독감에 걸린 날, 종일 누워

마늘 찧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들 발망치를 듣는다.

우리 집 변기물을 듣는다.

고래고래 나의 괴성을 듣는다.


나의 천장이

누군가에겐 바닥일 터.


누군가의 천장이

나에겐 바닥일 터.


우리의 층간이 이리도 가깝다니.

천장과 바닥의 동시성이랄까.

위아래 남사스러운 교감이

끼어든다.


마늘 찧는 소리를

마늘 찧는 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불평의 귀를 막는다.


그리고 윗집과 우리 집 사이에 차려진

콩나물무침이라들지 

된장국 같은

저녁 식탁을 둘러본다.


누군가와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아릿한 층간 마늘이

간이 잘 배어 있다.


우리 집은 필로티 2층이다. 

그래서 아래층이 빈 셈이다.

두두두두 아이들 발망치로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괴성으로

민원 한번 넣지 않은

아래층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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