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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6. 2019

금융 센트럴 월가로 가는길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한가한 것보다 바쁜 걸 즐기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뉴욕으로 유학 와서 정말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의) 스펙을 쌓았다. 미국에서 자란 친구들은 대부분 뚜렷하게 원하는 진로를 가졌었는데 나는 확실하게 해보고 싶은 일이 없어서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비즈니스 / 경영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즈니스 관련 전공은 인턴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여 무조건 뉴욕에 있는 대학들을 지원했고 전액 장학금을 제안한 뉴욕시립대로 진학했다.


금융도 종류가 너무 많아!

많은 비즈니스 수업을 들으며 금융에 가장 흥미가 생겼지만 막상 금융을 시작해보니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수많은 개인 펀드들부터 다양한 기관들, 세계적인 은행들 안에서도 크게는 front office*와 back office*로 나뉘고 그 안에도 다양한 일을 하는 수많은 부서들이 있었다.

*Front / Back office: 보통 회사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부서를 front office라고 부르고 회사 내 업무를 처리해주는 (내부 회계 등) 부서들을 back office라고 부른다.


원래 실전에서 하면서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일단 뭐라도 해보자, ' 하는 마음이었지만 1학년은 써주려고 하는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등바등 2학년 1학기 때 무보수로 자그마한 펀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나의 주 업무는 데이터베이스 정리, (엄청난 양의) 구글링, 비즈니스 카드 컴퓨터 주소록에 옮겨 적기 등이었다. 학기 중에 무보수 인턴을 하면 항상 시간이 부족해 여러모로 서러운데 기차값, 점심값이 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돈을 내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교통비라도 어디서 긁어모아보겠다고 괜히 학교 과제를 칼라 프린팅하고 냉장고에 있는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을) 공짜 음료수들을 매일 마셨다. 그렇게 탄산에 절여지고 백인 아저씨 몸매가 되기 일보직전 인턴십이 끝났고 일단 이력서 "work experience" 란에 몇 줄이 생겼다.


다행히도 그 해 여름, 한국에서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고 sales & trading (주식 관련) 부서에서 세일즈 인턴이 되었다. 옛날에 넓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풋볼을 던지고 골프를 치며 주식을 거래하는 분들을 보며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해보니 순식간에 큰돈이 왔다 갔다 하고 주변 사람들이 큰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심했고 항상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S&T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절대로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인턴은 아침 일찍 나와서 밤새 나온 기사들을 다 읽은 후 상사들이 7시에 출근하시기 전 중요한 뉴스를 다 정리해놔야 했다. 때문에 새벽 4시까지 회식을 하고 5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신문을 읽어야 했는데 야행성인 나는 계속 이 시간에 일어나다간 병원에 실려갈 것 같았다.


여태껏 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뭐가 나한테 잘 맞을까 고민하던 중 investment banking division (IBD)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보통 하나의 일이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서 진행되고 출근시간도 아침 10시 정도라는 말을 듣고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었다) 조금 더 알아보며 네트워킹을 시작했다. 이렇게 은행이 많은데 뭐 하나 안 되겠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많은 명문대 학생들도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며, 금융계 안에서도 IBD라는 부서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률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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