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미쉐린 2스타: The Modern
영국에 살면서 한 가지 생긴 습관이 있다면 바로 주기적으로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물론 뉴욕에도 많은 식당들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유럽에서는 파인 다이닝을 조금 더 캐주얼하게, 딱히 특별한 일이 있거나 차려입지 않고서도 다니는 지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접근이 조금 더 쉬웠다. 또한, ‘유럽에서 몇 년 머물게 될지 모르니 더 많은걸 시도해보자’라는 생각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방문한 레스토랑 이름은 “The Modern” - 뉴욕의 유명한 현대미술관 (MoMA: Museum of Modern Art) 안에 위치해있다.
모마의 조각상 정원 (Abby Aldrich Rockefeller Sculpture Garden) 옆 -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조금 지나서 미술관 폐관 방송이 나왔고,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나가자 조용한 하얀 대리석 정원이 햇살을 나른함과 함께 음식점 안으로 따듯하게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The Modren은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코스요리 레스토랑인데, 점심은 3코스 요리로 인당 $138불, 저녁은 6코스 요리로 인당 $198불의 가격이다. 저렴하진 않지만 hospitality*가 포함되어있는, 즉 따로 팁을 낼 필요가 없는 식당이라서 본 가격은 20% 정도 더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는 점심을 먹으면 보통 15%, 저녁을 먹으면 18-20% 정도의 팁을 낸다.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면 20% 이상이 적절하다. 보통은 가격에 팁이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외식을 할땐 메뉴에 나와있는 가격을 보고 그 위에 세금과 팁을 포함한 가격으로 계산해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가족들과 함께 미슐랭 레스토랑에 갈 땐 항상 친숙한 재료를 사용한 요리들이 있는지, 그러면서도 색다른 조합으로 신선하지만 또 너무 실험적인맛의 요리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나 고려한다. (몇 년 전 Eleven Madison이라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 갔는데 엄마가 조금 난해해하셔서 그 뒤로 더욱더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각자 먹고 싶은 게 달라서 모든 메뉴를 하나씩 시켜 볼 수 있었다. 역시 이런 레스토랑은 3인 이상 갈 때 다양하게 먹어 볼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 나온 오르 되브르(전채요리)는 식용 꽃을 가득 올린 미니 타르트. 내가 좋아하는 호스래디시(와사비와 비슷한 맛) 크림이 들어있었는데 꽃들의 새콤한 맛과 잘 어울렸다. 보통 식용꽃을 많이 쓴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식감과 맛이 적절했다.
다음으로는 유명한 eggs on eggs on eggs (달걀 안의 달걀 안의 달걀). 하얀 계란 모양의 세라믹 그릇을 열면 살짝 익힌 노른자, 짭짤한 계란 소스, 듬뿍얹은 캐비아 위에 딜(dill)로 만든 오일이 뿌려져 있는 퓌레 식감의 요리를 튀긴 브리오슈 빵에 찍어먹는,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느끼할수도 있는 부분을 양파피클로 잡아주어서 밸런스가 좋았지만, 위에 올려진 딜은 너무 강한 향이 나서 빼고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애피타이저 시작.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레몬 베이스 소스를 사용한것같은 상큼한 맛이 났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 푸아그라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터/스프레드 형태었지만 딸기 피클과의 조합이 신선했고, 방어 타르타르는 아삭한 식감이 켵들여져 좋았지만 그냥 재료를 읽으면 상상할 수 있는 친숙한 맛이났다.
그리고 프레즐 크루아상이 나오는데 이 식당의 페이스트리 셰프는 김지호 씨라고 한다 (괜히 반가운 한국 이름). 크루아상 식감인데 반죽이 프레즐의 재료를 쓴 것 같았고 겨자를 베이스로 한 소스가 들어있다. 매우 뉴욕스럽고 재미있는 음식이었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한 코스가 더 나오는데 따듯한 애피타이저 느낌이다. 메인 요리로 오리고기를 골랐기 때문에 이번 코스에서는 생선요리를 시켰다. 코스요리를 고를 수 있을 땐 항상 생선과 고기를 하나씩 먹는 걸 좋아한다. 다들 자기가 시킨 게 가장 맛있었다고 좋아했는데 제일 특이했던 음식은 버섯 프리카세였다. 거품크림 같은 식감에 버섯과 치즈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났다.
부모님께서 랍스터가 통통하다며 가까이서 하나 찍으라고 하셔서 상세 컷 한 장. 레몬 타임은 흔한 식재료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렇게 저렇게 맛을 보시며 무슨 맛인지 토론하셨다.
이제 드디어 메인 코스요리. 오리고기가 느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게다가 체리와 같이 플레이팅이 되어있었는데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맛의 조합은 누가 생각하는 걸까, 다시 한번 감탄했다.
돼지고기 요리에는 영국식 아침식사에서도 자주 보였던 조그마한 순대 두 조각도 나왔다. 한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전혀 다른 맛이 나는 여러 부위를 보고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디저트를 먹기 전 또 하나의 pre-dessert가 나오는데 뉴욕의 또 다른 상징인 ‘베이글’을 디저트로 재해석한 요리다. 베이글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디저트의 모토가 된 베이글은 바로 내가 제일 즐겨먹는 ‘Everything Bagel’이다. 말 그대로 모든 베이글의 토핑을 다 합쳐놓은 것인데 재료는 가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 깨, 퍼피 시드 (poppy seed), 어니언 플레이크, 갈릭 플레이크, 굵은소금 등이 올려져 있다.
잘게 썰은 오이 위에 크림치즈맛이 살짝 나는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조그마한 봉지 안에 머랭 같은 베이글이 나온다. (빵같이 생겼지만 식감은 과자처럼 바삭바삭하다)
디저트를 먹기 전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돈을 조금 더 내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치즈 조각을 맛볼 수 있는 치즈 트레이도 있다.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서 바로 디저트를 달라고 했지만 옆에서 정성스럽게 치즈를 덜어주는 모습을 담아봤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디저트. 솔직히 너무 배가 불러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역시 마지막은 달달하게 끝내야지. (마지막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사진을 찍기 전 살포시 숟가락을 올리신 자국이 아이스크림에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모두 만족스러웠던 레스토랑. 원래 사람이 가득 차 있지만, 폐관 후 텅 빈 모마(MoMA)의 정원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하면 특별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또 오게 된다면, 오전에는 미술관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도 좋을 것 같다. 28일, 즉 4주 전부터 예약을 받는데 예약이 어떤 식당들처럼 몇 초 만에 차 버리진 않았지만, 주말에 갈 예정이라면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하는 걸 추천한다.
그럼 이상, 식당을 나서서 집에 가는 길에도 방금 먹은 음식들에 대해서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곳, The Modern.
상호명 (name): The Modern
주소 (address): 9 W 53rd St. New York, NY 10019
영업시간 (hours): 점심: 월-토 11:30am-2pm / 저녁: 월-목 5pm-9:30pm, 금-토 5pm-10:30pm
웹사이트 (website): https://www.themodernnyc.com/
메뉴 (menu): https://www.themodernnyc.com/menus/#dinner-1